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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비행기로 출근? 겁나는 집값이 만든 기이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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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무시무시한 세계 집값.. 차라리 ‘해외서 통근’?!

8.2 대책 이후 정부의 집값 억누르기 대전이 한창입니다. 의식주의 중요한 한 축인 집값이 안정돼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거야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그런데 집값 몸살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금싸라기 땅값을 자랑하는 세계 주요 대도시라면 예외 없이 ‘주거 난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가 세계 집값과 기상천외한 '대안 주거'족(族)을 들여다 봤습니다.

치솟는 집값 이미지.

치솟는 집값 이미지.

880만 인구가 살아가는 영국 런던은 무시무시한 주거비로 악명 높은 곳입니다. 지금이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슈에 따른 파운드화 약세로 집값 상승률이 둔화됐지만 그래도 평균 가격이 10년 전보다 56% 상승했습니다. 10년 전 4억원하던 아파트는 7억원쯤 한단 얘기죠. 이 때문에 아예 출퇴근을 해외에서 하기로 작정한 직장인도 생겨났습니다.

저가항공 타고 바르셀로나~런던 출퇴근 

2015년 당시 32세의 한 소셜미디어 업체 직원 샘 쿠크니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런던의 살인적인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거처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옮겼습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런던 웨스트햄스테드의 방 1개짜리 아파트의 월세는 1505파운드(약 223만원)이고 여기에 세금 75파운드, 그리고 교통비로 116.60파운드가 들어 매달 1697파운드(약 250만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선 방 3개짜리가 580파운드(약 86만원)이고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를 포함한 교통 요금은 778파운드입니다. 총 1358파운드(약 201만원)로 런던보다 매달 300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쿠크니는 이 같이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결국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엘 프랫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500km 떨어진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간 뒤 오전 9시30분까지 회사에 출근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2015년 영국 런던의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저가 항공으로 통근하는 아이디어를 실천한 회사원 샘 쿠크니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2015년 영국 런던의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저가 항공으로 통근하는 아이디어를 실천한 회사원 샘 쿠크니의 트위터. [사진 트위터 캡처]

다만 애초 계획처럼 주 4회 출퇴근은 아니고 월 4~5회 출근으로 조정하고 주로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출근을 하는 데만 5시간 30분이 걸리는 데다 두 도시 간에 1시간의 시차도 있는 등 매일 출퇴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쿠크니가 현재도 이 같은 이중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블로그는 개점 휴업 상태이고 트위터(@Sam_Cookney) 메시지로 연락해 봤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이삿짐 트럭 고쳐 거주 "월급 90% 저축"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 본사가 몰려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집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 때문에 멀쩡한 집 대신 트럭에 살기로 선택한 구글 직원도 있습니다. 2015년 당시 23세였던 브랜든이라는 이름의 직원은 그해 5월 구글 본사에 입사하면서 샌프란시스코 내 아파트를 알아봤습니다. 단칸방 임대료가 월 2180달러(약 244만원)나 됐고 외곽으로 나가 여러 사람과 한 방을 나눠 쓴다고 해도 최소한 월 1000달러가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브랜든은 월세를 내는 것은 돈을 "태워 없애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2006년형 중고 포드 E350 트럭을 8800달러(약 986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원래 이삿짐 차량 용도인 트럭의 내부 크기는 11.9㎡(약 3.6평) 정도. 브랜든은 이 공간을 개조해 침대를 설치하고 옷걸이와 서랍장 등을 들였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구글 직원 브랜든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트럭. 내부를 개조해 침대 등 가구를 들였다. [사진 브랜든 블로그]

지난 2015년부터 구글 직원 브랜든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트럭. 내부를 개조해 침대 등 가구를 들였다. [사진 브랜든 블로그]

지난 2015년부터 구글 직원 브랜든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트럭 내부. [사진 브랜든 블로그]

지난 2015년부터 구글 직원 브랜든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트럭 내부. [사진 브랜든 블로그]

지난 2015년부터 구글 직원 브랜든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트럭 내부. [사진 브랜든 블로그]

지난 2015년부터 구글 직원 브랜든이 주거용으로 쓰고 있는 트럭 내부. [사진 브랜든 블로그]

샤워는 회사 헬스장에서, 식사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세탁은 회사 세탁소에서 해결합니다. 쓰레기는 조금씩 모아 공공장소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합니다. '박스'라는 애칭의 이 트럭은 보통 ‘구글 캠퍼스’로 불리는 본사 내부 주차장에 자리합니다.

자동차 보험료로 월 121달러를 내긴 해도 단칸방 월세의 18분의 1 수준입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월급의 90%를 저축한다”고 자신의 블로그(www.frominsidethebox.com)에 공개했습니다. 블로그를 방문해보니 트럭을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며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네요.

35세 이하 젊은층 자가보유율 사상 최저

해외 통근이나 트럭 거주 같은 극단적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대다수 경우는 집값을 감당 못할 때 다른 도시로 이주합니다. 지난 7월 영국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런던에서 다른 지역·도시로 이주한 사람은  29만1620명, 같은 시기 전입(출생 포함)한 사람은 19만8330명입니다. 한해 동안 순감한 인구가 9만3300명으로 5년 전(5만1710명)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사람들이 런던을 등졌습니다.

고급 주거지가 들어서고 있는 런던 템즈강 남부 배터시파크 인근의 부동산 중개소 안내판. 런던=강혜란 기자

고급 주거지가 들어서고 있는 런던 템즈강 남부 배터시파크 인근의 부동산 중개소 안내판. 런던=강혜란 기자

런던을 떠나는 이유는 집값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런던 평균 집값은 58만 파운드(약 8억6000만원)이고 그들이 이주하는 곳 평균 집값은 33만3000파운드라고 합니다. 주택 소유자라면 이사를 통해 25만 파운드를 절약하게 됩니다. 가장 선호하는 이주지는 버밍엄·브라이튼·서럭 등이랍니다. 런던 유스턴역에서 버밍엄 중앙역까지 기차로 1시간30분이 채 안되니 서울-대전 출퇴근에 견주어볼 만합니다.

우려할 것은 런던 전출 인구 중에 30대가 많다는 점입니다. 30대의 순 전출이 연 3만4500명으로 5년 전에 비해 68% 늘었습니다. 후발주자인 젊은 층이 런던의 치솟는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떠나는 걸로 풀이됩니다.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가 지난 9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35세 이하 연령대의 자가주택 비율은 25%에 못 미쳐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입니다. 65세 이상 가구주의 자가 보유가 1990년 49%에서 2014년 69%로 늘어난 것과 대조됩니다. 우리로 치면 젊은 층 흙수저의 주거 불안이 심각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아름답고 위태로운 이상주의자의 집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 있는 참새집. 신인섭 기자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 있는 참새집. 신인섭 기자

돌아보면 역사상 어느 나라의, 어느 젊은이도 쉽게 척척 ‘즐거운 나의 집’을 마련하진 못했습니다. 주거 안정을 즐거운 도전 과제로 삼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쿠크니와 브랜든 같은 이들이 대단한 이유입니다.

쿠크니는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적인 출퇴근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도 많다”면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내 삶이 좀 더 나아졌고, 또 런던에서 살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듯 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사 트럭에서 살아가는 브랜든은 “여름에 찌는 듯한 온도로 치솟는 트럭에서 살기가 만만치 않다”면서 트럭은 밤에 잠잘 때나 들어가는 곳이라고 솔직히 밝힙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사 트럭을 가진 장점으로 “주변 사람들이 이삿짐을 옮길 때 흔쾌히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그때마다 자신의 짐을 비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말이죠. 이런 자유로운 생각들이 모여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지 않을까요.

아슬한 허공에도 집터는 있다/수백 개의 현(絃)을 물어다가/나뭇가지 위에 집을 짓는 새들을 보라/아름답고 위험한 이상주의자, 한 작곡가가/거기 사는 것 같다”-문정희, ‘집 없는 예술가를 위하여’ 부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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