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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숙의 Q] 마린보이 박태환, 성숙한 청년이 되어 돌아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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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선수가 전국체전에서 5관왕에 등극, MVP에 선정됐다. 2014년 도핑 사건 이후로 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그는 아직 건재했다.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경험들이 박 선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현재 내년에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박 선수의 경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2017 아레나 마스터즈 수영대회가 열렸다. 수영 꿈나무들이 박 선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만큼 더 성숙해진 박태환 선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배양숙의 Q’가 인천 문학경기장을 찾았다.

전국체전 5관왕, MVP로 돌아온 박태환 #도핑사건으로 사람관계에 대해 많이 배웠다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개인 최고기록 세우고파 #선수로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배양숙의 Q가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박태환 선수를 만났다. 프리랜서 조현지

배양숙의 Q가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박태환 선수를 만났다. 프리랜서 조현지

이번 전국체전 MVP 축하드립니다. 5관왕이신데, 몇 번째이지요?
“2006년, 2007년, 2008년 그리고 올해 5관왕을 했으니 4번째입니다. MVP 수상은 5번째이고요. 첫 전국체전 우승했을 때는 고등학생이었어요. 그때는 떠오르는 샛별이라 설레는 감정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수영을 오래 해서 설레는 감정보다는 감회가 새롭고 너무 감사해요. 아직 5관왕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뜻깊은 것 같아요. 사실 7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 이후 휴식을 취한 탓에 이번 개인기록은 저조했어요. 하지만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수로 뛰는 한 계속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고 싶어요.”
2014년 이후 공백기에 대한 심경이 어떠신가요?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도핑 사건은 제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순간입니다. 공백기는 기억하고 싶지 않고 힘든 시기였어요. 하지만 그때의 일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사건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검토하고 확인하며 사람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할 겁니다. 아직도 많이 어리지만, 도핑 사건 이후로 많이 깨달았고 배웠어요.”
사람관계란 뭘까요?
“사람관계는 인생에 있어서 ‘길’인 것 같아요. 제가 가는 길 속에서 계속 배워나가고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왜냐면 사람관계는 어떤 일을 하든 항상 부딪쳐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관계는 죽을 때까지 배워가는 것 같아요.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참가는 남다른 소감이었을 것 같습니다.
“네, 힘든 점이 매우 많았어요. 이후에도 파장이 커서 굉장히 시끄러웠고요. 사실 그때는 훈련에만 집중하면서 지내고 싶었던 시간이었어요. 오로지 올림픽에 나가게 된다면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은 한국 수영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박태환 선수를 기념하여 명명했다. 프리랜서 조현지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은 한국 수영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박태환 선수를 기념하여 명명했다. 프리랜서 조현지

최근 박 선수의 내면이 한층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인생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냈지만 응원해주신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렸던 안 좋은 일들도 겪었습니다. 그 경험 하나하나에서 느꼈던 것과 깨달음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박 선수의 인스타그램 사진 중 모자를 쓴 사람의 그림자가 그려진 미술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그 작품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자신감도 보인 반면 외로움과 쓸쓸함도 느껴졌어요. ‘혼자’라는 단어가 굉장히 와 닿는 작품이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촉망을 많이 받았고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리더들은 항상 고독한 법이지요. 대한민국 수영선수로서 박 선수는 우리 사회 한 부분의 진정한 리더입니다. 리더가 지녀야 할 자질과 의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 속의 리더는 먼저 타인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며, 소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태환은 독보적인 수영선수로서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다. [사진 박태환 인스타그램]

박태환은 독보적인 수영선수로서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다. [사진 박태환 인스타그램]

박 선수의 이력에는 성공과 실패가 반복적으로 들어있습니다. 그 경험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실패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 경험들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은 연습을 통해 보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해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잖아요. 그 경험 때문에 스타트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수없이 연습하다 보면 거기에 따르는 결과가 있기 마련인 것 같아요. 노력의 결실을 보면 성취감도 느끼고 나름대로 자신감도 상승해 더 좋은 기록을 더 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물론 지금도 계속 도전하고 있는 과정에 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부분들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연습 때도 계속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박태환 선수는 16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정 출발 실격이라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2006년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열린 팬 퍼시픽(Pan Pacific) 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 세계신기록을 2개나 수립했고, 그해 겨울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3개를 포함, 총 7개의 메달을 따며 MVP를 수상했다. 그 기세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자유형 400m)과 은메달(자유형 200m)을 따내며 국민적 영웅이 됐다.  
그 기쁨도 잠시, 2009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노메달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2011 상하이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자유형 400m),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따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2014년 도핑 사건이 터지며 박 선수는 긴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나 이번 전국체전에서 5관왕 등극은 물론 MVP를 수상하며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그는 현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준비 중이다.

제98회 전국체전에서 수영 5관왕을 차지한 박태환 선수는 MVP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제98회 전국체전에서 수영 5관왕을 차지한 박태환 선수는 MVP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박 선수의 대표적인 수식어는 ‘올림픽 영웅, 마린보이’입니다. ‘영웅’이란 표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요?
“‘영웅’이라는 호칭은 아직 제게 과분한 것 같습니다. 계속 도전하는 선수로서 더더욱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 중이고 선수로서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수영선수로서 ‘영웅’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선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생각나네요. 아무래도 개인 최고기록을 세운 대회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400m 금메달을 수상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벅찬 날이었습니다. 제 생에 있어서 가장 빛난 날이지 않았나 싶어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의 데라다 노보루 선수가 자유형 1500m 금메달을 딴 후 72년 만에 아시아 선수로 금메달을 수상했으니까요.”
 개인최고기록을 세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사진 위)과 금메달을 딴 2008 베이징 올림픽. [중앙포토]

개인최고기록을 세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사진 위)과 금메달을 딴 2008 베이징 올림픽. [중앙포토]

박 선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지도자는 누구인가요?
“우선, 노민상 감독님은 제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아주신 분입니다. 이후 저를 맡아주신 마이클 볼 코치는 저에게 선진 호주 수영 방식을 가르쳐 주신 고마운 분이고요. 위의 두 분을 통해 저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선진 수영 기술들을 습득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영 전문가들은 박 선수를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부분이 크다고 하던데요.
“색소폰 연주자이신 아버지의 폐활량과 무용가이신 어머니의 유연성을 물려받았습니다. 부모님이 좋은 부분들을 물려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수영의 시작을 열어주시고 이런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부분은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 감사드릴 부분도 크고, 저를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 많은 분이 계시죠.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박태환은 어린 시절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수영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중앙포토]

박태환은 어린 시절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수영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중앙포토]

박 선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고,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가족은 저의 '인생'입니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항상 같이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부모님은 강하고도 약하신 분이신 것 같아요. 힘들었던 날들이 매우 많았지만, 부모님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이겨내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그런 긍정적인 부분들을 보고 배우면서 선수로서도 많이 도움을 받은 것 같고요.”
가족만큼 중요한 존재가 친구인데요. 지금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면?
“저에게 친구란 옆에서 때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고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한 명을 꼽기엔 힘들지만, 유치원 친구 정성배가 생각나네요. 성배는 동네 친구이다 보니 피자도 맨날 같이 먹으러 가고 어머니들끼리도 아시는 사이라 가족끼리도 자주 만났어요. 제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항상 옆에 있어 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일과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운동선수이다 보니 쉴 때가 가장 편합니다. 집에 있으면 거의 먹고 쉬고 뒹굴어요. 그리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합니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범죄도시’에요. 또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요리도 좋아해요.”
영화 관람과 요리를 좋아한다는 박태환 선수. 프리랜서 조현지

영화 관람과 요리를 좋아한다는 박태환 선수. 프리랜서 조현지

세계대회에서 만난 선수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나요?
“세계대회에서 만나는 선수들은 정말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제가 수영선수 생활을 짧게 한 것이 아니기에 그동안 저의 우상이었던 선수들부터 현재 신예 선수들까지, 정말 너무나 많은 선수를 세계대회에서 만나고 우정을 쌓습니다. 특별히 언급하기에는 저에게는 특별한 선수들이 많아요. 제 기사를 그 친구들이 다 보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 명으로 줄여서 언급하기에는 미안하네요. (웃음)”
카엘렙 드레셀(21·미국) 선수가 제2의 펠프스로 떠올랐습니다. 차세대 강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이번에 카엘렙 드레셀 선수가 경기하는 걸 봤는데 굉장히 힘 있고 몸에 탄력이 좋은 선수라 놀랐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잘했지만 드레셀 선수의 경기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그런 선수들을 보며 저도 더 열심히 준비해서 그 선수들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더 꾸준히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오늘 열린 2017 아레나 마스터즈 대회에 수영 꿈나무들이 많이 왔는데요. 박 선수를 보고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누구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말한다면, 자기 자신이 얼마만큼 노력하는지에 달렸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을 이겨내고 참아가며 하는지에 따라 자기 성적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본인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난 28일에 열린 2017 아레나 마스터즈 대회에서 수영 꿈나무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모습. [사진 프리랜서 조현지, 배양숙]

지난 28일에 열린 2017 아레나 마스터즈 대회에서 수영 꿈나무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모습. [사진 프리랜서 조현지, 배양숙]

한국 수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중요한 건 선수 본인의 노력입니다. 외적으로는 수영 연맹에 관해서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수영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한국 수영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먼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열심히 준비해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그 이후의 계획은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내년 아시안게임의 결과가 저의 선수생활을 결정지을 것 같아요. 언제 수영인생의 마침표를 찍을진 모르겠지만, 선수로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겁니다. 아시안게임이 10개월 정도 남았는데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나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저뿐만 아니라 한국 수영 많이 응원해 주세요.”

박태환 선수는 네이버 지식백과에 ‘올림픽 영웅, 마린보이’라고 등재돼있다. 그 호칭이 주는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영광의 찬란함만큼 시련의 어둠도 깊었다. 억울함도, 깊은 후회도 함께 했을 힘든 시기를 잘 견딘 박 선수는 이번 전국체전 5관왕에 등극하고 MVP를 수상했다. 그는 더 이상 ‘올림픽 영웅, 마린보이’가 아니었다. 겸손과 배려, 성숙함 그리고 강한 눈빛을 가진 청년이었다. 이제는 그냥 ‘올림픽 영웅’이라고 표기해야 할 것이다. 인천 문학 박태환 수영장 정문에서 길고 긴 줄을 기다리는 수영 꿈나무들에게 정성껏 사인을 하며 웃는 박 선수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박태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인터뷰하는 박 선수의 얼굴에 회복된 자신감과 성숙함이 전해져 ‘참 다행이다’ 싶었다.

배양숙 (사)서울인문포럼 이사장 betterlife65@daum.net
정리 = 장하니 인턴기자 chang.hany@joongang.co.kr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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