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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상조 "재벌 혼내느라 늦었다" 김동연 "그런 말 하면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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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단독] 김상조 “재벌 혼내느라 늦었습니다” 김동연 “그런 말씀하시면 안 돼요”

김상조, 경제장관회의 지각 발언 #벤처 대표, 교수 등도 참석한 자리 #공정위 정책, 재벌 혼내기로 읽혀 #참석자 “논란될 말에 모두 당황”

김동연 경제부총리(左), 김상조 공정위원장(右)

김동연 경제부총리(左), 김상조 공정위원장(右)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상도동 숭실대에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였지만 시작부터 분위기는 싸늘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꺼낸 발언이 화근이 됐다.

약속된 시간보다 몇 분 늦게 회의장에 도착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신보다 더 늦게 들어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보자 “저보다 더 지각하셨네요”라며 말을 건넸다. 이에 김 위원장은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고요”라고 말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김 위원장이 갑자기 논란이 될 말을 하는 바람에 참석자 모두가 당황해했다”며 “김 부총리가 ‘에이, 여기서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돼요’라고 그의 발언이 농담인 것처럼 분위기를 수습했다”고 3일 전했다.

이날 회의엔 장·차관 등 관료는 물론 벤처기업 대표, 대학교수 등 민간위원들도 참석했다.

이날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앞서 김 위원장은 5대 그룹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업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의구심이 있다”며 “기업의 자체적인 노력 수준이 시장과 사회의 기대와 괴리가 있어선 안 된다. 좀 더 분발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기업 공익재단 운영 실태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지주회사의 수익구조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계획도 이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결국 김 위원장의 이날 행동과 발언만으로 판단하면 ‘공익재단 의결권 제한’ ‘상생 해법 마련’ 등 공정위가 추진하는 정책이 공정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벌을 혼내기’ 위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사실 김 위원장의 가벼운 언행은 이미 수차례 논란이 됐다. 지난 7월 공정위 신뢰개선 추진방안 브리핑에서는 “나쁜 짓은 금융위가 더 많이 하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먹는다”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9월에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비교하며 깎아내리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로부터 “맨몸으로 최고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

여당 내에서조차 “학교에서 자유롭게 지내시다 보니 먹물이 덜 빠져서 설화에 많이 휩쓸리는 것 같다”(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정부부처 한 고위관료는 “시민단체·학자로 활동할 때는 거침없이 비판할 수 있었지만 권력의 한 축이 된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며 “본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재계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이 내뱉은 반(反)대기업적 발언에 재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심지어 그가 ‘대기업은 악(惡)이고 중소기업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실제 공정위는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린 ‘조사국’을 12년 만에 ‘기업집단국’으로 부활시키는 등 대기업에 칼날을 겨누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대기업이 국가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면이 많은데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대기업은 나쁘다는 편견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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