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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빙속여제 이상화 "평창 덕에 은퇴 미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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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가 1일 오후 인천 영종도 한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가 1일 오후 인천 영종도 한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아마 은퇴하지 않았을까요."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기대되는 선수 1위는 단연 '빙속여제' 이상화(28·스포츠토토)였다. 무려 응답자의 68%가 이상화를 꼽았다. 이상화는 이번 대회에서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에 이어 통산 3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사실 이상화는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을 뻔 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은퇴를 고려했던 그는 주변의 만류로 2014 소치 올림픽에 출전했고, 2연패를 달성했다. 다시 한 번 정상에 오른 그는 개최국 선수로서 다시 한 번 올림픽 무대에 서고 싶어 스케이트화를 벗지 않았다.

지난 1일 성화봉송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만난 이상화는 "사실 난 모든 걸 다 이뤘다. 세계기록도 세웠고, 그토록 바랐던 올림픽 2연패도 했다. 평창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만뒀을 것이다. 이번엔 개최국 선수로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질주하고 싶다"고 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 서는 이상화는 평소에 잘 하지 않았던 솔직한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 얼굴이 좋아보입니다.

"매우 건강해요. 잘 지냈어요. 한국에 온 뒤 그동안 못한 일들을 하느라 요즘엔 잠을 못 잤어요. 못 자면 5시간, 많이 자면 7시간? 자는 게 일이에요. 여가생활이요? 최근엔 영화 범죄도시를 재밌게 봤어요."

- 캐나다에서 훈련을 했는데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나요.

"힘들진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훈련하느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았는데 운동 시간 외엔 푹 쉬었어요. 말 그대로 즐기면서 운동했죠. 영어 실력이요? 먹고 살 수는 있는 정도죠. 케빈 크로켓 코치님이 대표팀을 맡을 때부터 더 열심히 공부했죠. 짧은 영어 실력으론 정확한 소통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물어보고 싶은 걸 정확하게 물어야 하잖아요. 미국 드라마도 자막 없이 보고 들으려고 하죠."

이상화의 훈련을 돕고 있는 캐나다 출신 케빈 크로켓 코치. [뉴시스]

이상화의 훈련을 돕고 있는 캐나다 출신 케빈 크로켓 코치. [뉴시스]

- 본인이 예쁜 거 알고 있죠?

"감사합니다. 여자는 꾸미기 나름인 것 같아요. 평상시에는 피부관리를 받는 정도에요. 운동 없을 때 피부과에 1주일에 한 번씩 가요. 네일아트요? 요즘엔 못 했어요. 선발전 끝나고 바빴어요."

- 이제 곧 올림픽이에요. 성화봉송까지 하게 됐는데.

"'올림픽은 올림픽이구나'라는 걸 느끼는데 사실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 4년마다 올림픽 전에 행사들을 해서 그런가봐요. 우리나라에서 해서 그런지 설레는 마음은 커요. 예전부터 올림픽 개회식 기수와 성화봉송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올림픽을 3번 나가면서 개회식에 한 번도 못 갔어요. 스피드스케이팅은 대회 초반에 열리거든요. 어렸을 때 TV를 보면서 성화를 들고 달리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뤘네요."

- 네 번째 올림픽입니다. 이렇게 많이 나갈 줄 알았나요.

"아니오. 2006년 토리노 대회(5위) 끝나고 '더 열심히 해서 금메달을 따야겠다, 밴쿠버 끝나고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코치님들이 더 하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소치까지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평창 올림픽 개최가 결정됐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참가하는 건 굉장한 영광이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죠. 아마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지 않았다면 그만뒀을 거에요. 저는 모든 걸 다 이뤘다고 생각했거든요. 세계기록도 세웠고, 올림픽 2연패도 했죠. 그런데 사람 욕심은 어쩔 수 없나 봐요. 능력이 있는데 아까운 재능을 버리는 것 같더라구요. 욕심이 생겼어요. 힘들긴 하지만 해내고 나면 뿌듯하거든요. 그 맛을 느끼기 위해서 운동하는 것 같아요."

-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아무래도 기분이 색다르죠.

"다르죠. 소치 때 러시아 선수들이 나올 때마다 정말 큰 환호성이 울려퍼졌어요. 이미 평창 유치가 결정된 상태라 우리도 '4년 뒤엔 이런 기분을 느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우리나라에서 대표 선수가 돼서 많은 관중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잖아요. 생각만 해도 감동적이지 않나요. 전 늘 그런 상상을 했거든요. 전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늘 울었거든요. 이번에도 아마 울 거에요."

'빙속여제' 이상화가 13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메달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전날 이상화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 출전해 1차전 37.42초, 2차전 37.28초를 기록해 합계 74.70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뉴스1]

'빙속여제' 이상화가 13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메달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전날 이상화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 출전해 1차전 37.42초, 2차전 37.28초를 기록해 합계 74.70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뉴스1]

- 오늘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했어요. 이상화 선수의 꿈은 뭐였나요.

"어렸을 때 제 꿈은 국가대표였죠. 태극마크를 달고 제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이번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참 좋아요. 제가 가진 생각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그 친구들이 저를 본보기로 배울 수 있다는 게 뿌듯하죠. 전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5년에 세계선수권(독일 인첼)에서 동메달을 따고 돌아왔는데 엄청나게 많은 취재진이 나와 있었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었다니까요."

(이상화는 이날 교육기회 균등을 위한 활동인 삼성드림클래스에 초대돼 200명의 학생과 교사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 어려운 질문입니다. 스피드스케이팅선수 이상화는 몇 점 짜리 선수….

"(망설임없이) 전 100점이요. 만점요. (왜인가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뛰어난 선수들을 정말 많이 연구했어요. 최고의 속도감을 느꼈고, 세계기록도 세웠죠. 아픈데도 상위권에 늘 머물렀어요. 저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고 싶어요. 너무 쉬운 질문이에요."

- 무릎 상태는 어떤가요.

"지난해엔 무릎보다 종아리 부상 때문에 힘들었어요. 무릎은 고질병이라. 처음엔 아팠는데 지금은 무뎌졌어요. 작년엔 처음으로 종아리가 아팠죠. 얼마나 아팠는지 무릎 통증이 잊혀질 정도였어요. 지난 2월 종목별 세계선수권 나가기 전까지 원인을 몰랐거든요. 근육에 알이 배긴 줄 알았는데 스타트할 때 다리가 안 움직여졌어요. 경기 전에 전 워밍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러지 못했어요. 무리가 가니까. 경기 때 모든 힘을 썼죠. 지금은 괜찮아요. 지난 3월에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한결 가벼워졌어요. 수술한 곳이 조금 당기긴 하지만 괜찮아요. 지난시즌 통증이 10이라면 지금은 1~2 수준이에요."

2014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박승희와 이상화, 김연아(왼쪽부터). [연합뉴스]

2014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박승희와 이상화, 김연아(왼쪽부터). [연합뉴스]

- 이번에도 다른 종목 경기를 보러 갈 건가요.

"쇼트트랙은 무조건 볼 거에요. 피겨도 보고 싶고, 설상 종목을 보고 싶어요. 예전엔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소치 때는 흑해를 꼭 보고 싶었는데 이번엔 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요. (친한 선수가 있나요) 소치 때 모굴스키 (최)재우랑 친해졌어요. 쇼트트랙 (곽)윤기도요. 의지가 되는 동생이에요. 친동생같아요. 윤기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진심 같아서 응원하고 싶어요."

- 지난해 3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평창올림픽에서 만족할 경기를 펼치는 것'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현모양처'가 목표라고 했죠.

"현모양처는 기본이죠. 제가 진짜 깔끔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평창 겨울올림픽이에요. 밴쿠버와 소치에서 금메달을 딴 뒤 '저를 보면서 잃었던 용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취업 준비하느라 힘들었는데 저를 보며 다시 도전했다는 분도 있었구요. 다시 한 번 그런 분들에게 힘과 꿈을 주고 싶어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따낸 빙속 3총사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왼쪽부터). 이상화는 "평창에서도 셋이 다같이 웃을 수 있는 성적을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따낸 빙속 3총사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왼쪽부터). 이상화는 "평창에서도 셋이 다같이 웃을 수 있는 성적을 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 1위입니다.

"큰 행복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죠. 그래도 소치 때보다 부담이 덜 되요. 그땐 2연패를 이미 한 것처럼 기대를 하셔서… 세계기록까지 세워서 기대가 컸는데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 실수하면 어쩌나란 두려움이 있었죠. 밴쿠버 올림픽 때 경쟁했던 예니 볼프(독일)가 그랬거든요. 그 선수가 올림픽 직전에 세계기록을 세웠는데 올림픽에선 2등을 했거든요. 이번엔 부담을 덜고 올림픽을 즐기려고 해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니까 많은 분들이 와서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천=김효경·김지한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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