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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협상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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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뺑소니. [중앙포토]

뺑소니. [중앙포토]

지난해 연말, 뺑소니 가해자와 합의금 협상이 있었다.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8) #형편어렵다 읍소하던 뺑소니 가해자 #카톡 프로필 '나이스 샷' 사진으로 협상결렬 #장소, 협상주체, 연락수단, 체력 그리고 작은 선물 #협상에서 놓치기 쉬운 디테일들

자정 무렵 판교근처에서 피해자 차량 뒷범퍼를 치고 유유히 달아났던 가해자는 경찰에 붙잡혀 수사를 받았다. 다행히 피해자가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차량이 크게 손상되었다.

가해자는 수사단계에서는 합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검찰에서 기소하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공판기일 통지서를 받아보고는 겁이 났는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초동 로펌 사무실로 전화를 해왔다.

전화기 넘어로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해자는 자신이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실수로 피해자 차량에 사고를 일으켰는데 너무 겁이 나서 달아났다고 말했다. 자기가 지금 두 아이의 가장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살아 생활고가 너무나 심하다고 했다. 최대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300만원인데 이 조차도 주말에 주위 지인들에 빌려봐야 한다고 했다.

300만원. 합의 금액 차이가 많이 났다. 피해자측은 가해자가 제시한 금액의 3배 이상을 기대하고 있는데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전화기 넘어 가해자는 숨죽인 흐느낌으로 필자의 감정을 뒤흔들고 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한번 피해자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정이 흔들릴 때는 대화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조금 뒤 카카오톡 메신저에 친구추가가 떴다. 무심결에 어떤 분인가 싶어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았다. 근사한 피니시 자세로 골프를 치고 있는 사진. 그리고 '간만에 필드나가니 가슴이 뻥~'이라는 문구. 가해자의 프로필이었다.

골프. [사진 Unsplash]

골프. [사진 Unsplash]

“아… 속았구나.”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던 흐느낌에 흔들리던 필자의 감정이 배신감으로 변하고 있었다.

“협상, 결렬이다.”

협상은 디테일이 결정짓는다. 프로의 세계에서 결국 디테일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협상테이블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위 사례에서도 자신의 생활고를 이야기하면서 합의금을 낮추려는 가해자라면, 적어도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카카오톡 프로필사진 정도는 상대방이 어렵지 않게 확인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예상했어야 한다. 협상을 시도하면서 협상 준비과정에서 고려해야할 디테일을 다섯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협상 준비과정에서 고려해야할 디테일 (3P2C)

Place. 어떤 장소에서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

본인의 사무실, 상대방의 사무실, 아니면 제 3의 장소. 어디가 좋을까? 일반적으로는 본인의 사무실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본인 사무실의 인적, 물적 자원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을 뿐더러, 익숙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방 사무실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도 있다. 우선 상대방 입장에서는 우리가 상대를 배려하고 있으며 이번 협상의 성사를 위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우호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상대방 사무실을 방문함으로써 평소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여러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처음 거래를 하는 공급업체와 협상을 하는 구매담당자 입장이라면, 첫 미팅을 해당 공급업체 공장에서 진행해 공장가동률, 작업환경, 근무인원, 제품생산과정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협상에서 적절히 활용한다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공장가동률이 60%정도 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저희 거래조건을 맞추어 주시면 1년 내에 공장가동률을 100%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물량을 맞춰 드리겠다'는 제안을 할 수 있다.

만약 서로가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제 3의 장소에서 협상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용한 호텔로비나 까페에서 협상을 한다면 무리없이 협상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전에 독립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너무 시끄러운 분위기는 아닌지, 주차는 가능한지 등을 확인하여 장소를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협상테이블. [사진 freejpg]

협상테이블. [사진 freejpg]

또한 협상테이블 자리배치도 신경을 써야 한다. 예컨대 사각 테이블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느낌을 주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적대적인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원형테이블을 활용하기도 한다. 대화를 주도할 사람, 의사결정권자, 보조자 등의 자리 배치도 전략적으로 잘 고민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People. 누가 협상테이블에 참여 할 것인가?

앞선 뺑소니 가해자와의 협상에서 보듯, 피해자가 직접 협상을 하는게 좋을까, 변호사를 통해서 협상을 하는 것이 좋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위 사례에서 의뢰인인 피해자는 자신이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고 가해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협상 테이블에 누가 참석할 것인지, 혼자 참석할 것인지 동료와 함께 갈 것인지, 함께 간다면 누가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누가 협상 상황을 모니터링 할 것인지,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참여하는게 유리할 것인지, 변호사를 대동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도 협상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협상테이블 전 내부적으로 명확한 역할분담을 정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의사결정권자가 협상테이블에 나간다면 신속한 진행은 가능할 수 있지만, 상대방의 공격적인 제안에 ‘이 부분은 의사결정권자와 상의하여 다음 미팅 때 말씀드리겠습니다’는 식의 방어를 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노출될 수 있다. 또한 협상테이블에 변호사를 대동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고 법률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는 하지만, 자칫 리스크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협상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 수도 있다.

Communication. 어떤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할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어떤 것으로 선택하는지도 협상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어떤 방식을 활용하여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에 따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반응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표님, 지난번에 약속했던 내용을 이번 주말까지는 반드시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고려할 수 있다.
- 카카오톡 메시지
- 핸드폰 문자
- 이메일
- 팩스
- 직접 만나서 의사 전달
- 내용증명

문자. [사진 cjinoo]

문자. [사진 cjinoo]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가진 무게감이 커지고,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상대가 받아들이는 사태의 심각성도 달라진다.

예컨대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는 방식과 내용증명우편을 발송해서 보내는 방식의 간극은 확연히 다르다. 본인이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 판단하더라도 이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달한다면 상대방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는 보다 무게감이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결국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언제 어떤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Condition. 컨디션, 피로도, 체력을 고려하라.

협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본인의 컨디션, 피로도, 체력 등이 협상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특히 며칠씩 이어지는 계약 협상의 경우, 또는 시차가 큰 곳으로 이동하여 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는 이러한 부분을 사전에 감안해 협상 일정을 짤 필요가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며칠씩 계속되는 협상을 할 때에는 체력이 바닥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체력이 고갈되는 쪽은 대개 협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한다. 상대방은 그러한 상황의 변화를 읽어내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한다. 나중에는 협상이 체력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비해 하루에 협상을 하는 시간을 적절히 제한하고, 협상 이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체력이 곧 협상력이다.

Present. 작은 선물을 준비하라.  

생각치 못한 순간에 주는 작은 선물의 효과는 예상외로 크다. 협상 중간 점심과 저녁 식사 장소와 음식의 배려, 공항에 차량 배치, 숙소의 배려, 협상 종료 후의 작은 선물 등은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 협상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만들며 협상의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러한 배려들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지는 상대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와 작은 선물은 언제나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틀림없다. 협상도 결국 디테일이 생명이다!

Negotiation Insight.

준비에 실패하는 자, 실패를 준비하는 자.
디테일한 준비에 실패하는 자는 단 한가지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실패이다.

류재언 글로벌협상연구소장(변호사) yoolbonlaw@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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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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