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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에 수갑찬 하녀가 왜?…상처 분장에 신고하기도

중앙일보

입력

서울 이태원 거리에 30일 핼러윈 복장으로 등장한 사람들. [사진 인스타그램]

서울 이태원 거리에 30일 핼러윈 복장으로 등장한 사람들. [사진 인스타그램]

“왜 외국 명절을 즐기냐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요. 재밌잖아요.”
핼러윈(Halloween) 데이(31일)를 맞아 지난 주말 서울 이태원의 클럽에 놀러 간 이모(30)씨는 핼러윈을 축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클럽이나 술집에 가서 창의적인 옷을 입고 분장을 한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핼러윈 데이의 재미를 설명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일부층에 유입 #최근엔 젊은이들의 '파티문화'로 #노출 복장 경쟁은 해마다 심화

최근 한국의 젊은 층에게도 핼러윈 데이틑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금요일이었던 지난 27일 밤 서울 이태원에는 평소 두 배 이상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핼러윈 고전’이 된 귀신이나 좀비 분장은 물론, 스머프나 아이언맨 등 독특한 캐릭터도 등장했다. 이태원을 비롯해 서울 홍익대 근처나 신사동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에 몰리던 사람들은 최근엔 가까운 동네의 조그만 술집에도 핼러윈 분위기를 즐기려고 모인다.

핼러윈(Halloween)의 유래

핼러윈은 미국과 영국 등 서양 국가들이 10월 31일 귀신분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로 아일랜드 켈트족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유래됐다. 켈트족들은 1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보고,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에 죽은 자들이 사람의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었다. 이를 막기 위해 귀신 복장을 하고 죽은 자를 막으려는 풍습이 핼러윈데이의 시작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도 핼러윈이 큰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귀신이나 만화주인공 등으로 분장한 뒤 “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놀려줄거야)”라고 외치며 사탕을 받아간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도 유입…“유학생과 연예인 영향”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핼러윈 문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에 ‘백화점과 호텔의 서양 귀신 판촉 눈살, 청소년 탈선도 부추긴다’ ‘귀신도 서양 것이 좋더냐’ 등의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영어 유치원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핼러윈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인들에게도 많이 퍼졌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들이 경쟁적으로 본인의 핼러윈 분장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도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핼러윈 데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매년 활발하다. 서울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은 지난 주말 중세 시대를 컨셉으로 한 ‘제이제이 핼러윈 파티-미스터리 캐슬’ 파티를 진행했다. 메종 글래드 제주 호텔은 가족 단위의 숙박객들이 핼러윈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패밀리 파티를 열었다. 신세계 스타필드는 어린이들에게 핼러윈 캐릭터를 얼굴과 몸에 그려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롯데마트는 어린이용 호박망토세트와 뽀로로 LED 파티봉을, 다이소는 다양한 분장 용품과 의상들을 진열했다.

점증하는 ‘선정성 경쟁’

29일 한 BJ가 노출이 심한 핼러윈 의상을 입고 방송을 하고 있다. [사진 아프리카TV 캡처]

29일 한 BJ가 노출이 심한 핼러윈 의상을 입고 방송을 하고 있다. [사진 아프리카TV 캡처]

지난 29일 아프리카TV의 한 여성 개인방송진행자(BJ)는 가슴을 훤히 드러낸 핼러윈 복장을 입고 수갑에 손을 묶은 채 방송을 진행했다. “핼러윈을 맞아 주인님을 기다리는 하녀의 컨셉”이라는 이 방송에는 “움직일 때마다 수갑만 움직이는 게 아니고 다른 것도 움직이네” “좀 더 빨리 움직여봐” 등 선정적인 댓글이 붙었다. 한 남성 BJ는 핼러윈파티의 분위기를 전해주겠다며 서울 강남지역 클럽을 돌면서 여성들을 촬영했다. 이날 이태원과 신사동의 거리에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수 구하라씨는 자신의 SNS에 핼러윈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가수 구하라씨가 본인의 SNS에 올린 핼러윈 기념 사진. [사진 구하라씨 인스타그램]

가수 구하라씨가 본인의 SNS에 올린 핼러윈 기념 사진. [사진 구하라씨 인스타그램]

준비한 핼러윈 의상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사진 인스타그램]

준비한 핼러윈 의상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사진 인스타그램]

자극적 표현 경쟁은 노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김모(30)씨는 지난 주말 한 지하철역에서 얼굴에 큰 상처가 난 여고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롯데월드가 주최하는 핼러윈 파티에 참여하려고 최근 유행하는 ‘상처 분장’을 한 사람이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자기들끼리 즐기는 건 좋지만,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것은 도를 넘은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많아졌다. 29일 경기 고양시 대화역에선 한 시민이 피투성이 분장을 한 사람들 보고 놀라 역 사무실에 신고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핼러윈 바람은 일본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기념일협회가 추산한 일본의 올해 핼러윈 시장 규모는 1305억엔(약 1조 2914억원)이다. 핼러윈을 기념하려는 젊은이들이 몰리는 도쿄의 시부야역 주변에는 의상을 갈아입을 수 있는 임시 탈의실과 쓰레기를 버리는 공간이 설치되기도 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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