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랩 리포트]다섯 나라 들었다놨다한 전략가는 누구?

중앙일보

입력 2017.10.30 10:42

업데이트 2017.10.30 16:26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북핵의 위협같은 변수들로 한국은 불안한 상황이다. 지금 여기서 다른 나라,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고전 속 지혜...진 나라도 최약체였다
약소국도 이기는 협상의 기술은?
이웃의 인재도 영입하는 나라가 흥한다
자공의 지혜...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이 때, 한국은 어떤 국가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할까. 사기, 논어, 손자병법, 한비자 등 중국 고전을 통해 협상전략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다. 지난 13일 한중우호협회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김 교수는 '중국 고전을 통해서 본 협상전략'강연에서 풍부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다음은 강연 요지.

김원중 교수 [출처: 차이나랩]

김원중 교수 [출처: 차이나랩]

왜 한국은 협상에 강하지 못할까? 한국에선 유교적인 마인드가 여전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협상한다는 마인드 자체가 부족하다. 조직에서도 인재를 쓸 때 협상가 대신에 '뛰어난 업적을 내서 나를 위협할만한 사람이 아닌 사람'을 뽑는 듯 하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들은 '지금껏 선하게 살아왔으니 됐지. 선하게 사는 자는 복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국가 전략도 이렇게 다소 '나이브'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을 한 번 보자. 시진핑 주석이 가장 인용을 많이 한 고전은 논어(12번)였고 2번째가 바로 7번 인용한 한비자였다. 유가와 법가가 적절히 조화된 것이다. 진시황, 조조, 제갈량, 한비자는 법가 라인이고 춘추전국시대, 초한쟁패 시기 등 역사의 전환기에선 관중으로 대변되는 관가(경제 최우선론)나 병가(兵家, 병법을 중시)가 주류를 이뤘다.  

저는 20개 나라 중에서 작디 작은 진나라가 마침내 중국 천하를 통일할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별볼일 없던 진나라가 잘 했던 게 바로 협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인들의 피에 협상의 DNA가 있다는 것이다. 고전 속에 등장한 중국의 기막힌 협상전략을 보자.

 진시황 [출처: 바이두 백과]

진시황 [출처: 바이두 백과]

진목공(秦穆公)의 협상전략을 보자.

당시에 서융(西戎), 즉 융족이 맨날 전쟁을 일으켰다. 진목공이 이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중 융족의 왕을 도와서 전략을 짜는 1인자인 유여라는 사람에 주목하게 된다. 진목공은 유여를 청해 그를 만났다.

진목공 [출처: 바이두]

진목공 [출처: 바이두]

"융족은 문화가 없지 않느냐"면서 목공은 휘황찬란한 것들을 유여에게 보여준다. "우리 진나라야 말로 국력이 있는 것 같지 않느냐고"고 자랑도 했다. 그러자 유여는 목공에게 쓴 소리를 한다.

"요임금은 흙으로 만든 그릇을 썼으나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순임금은 옻칠식기를 썼더니 13개 나라가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우임금은 술잔에 색칠해서 썼더니 33개 나라가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은나라에서는 큰길을 내고 그릇을 조각하며 화려하게 꾸밈을 더하니 53개 나라가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유여

유여 [출처: 바이두 백과]

유여 [출처: 바이두 백과]

유여는 오히려 사치를 일삼을수록 다른 나라들의 마음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진목공의 책사인 요(寥)와 진목공은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뛰어난 인재인 유여가 있는 한 융족은 절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을 듯 하다. 유여는 진목공에게 직언할정도로 강직한 사람이니..."

진목공 측은 꾀를 낸다. 융족 왕에게 무희 16명을 선물로 보낸 것이다. 강직한 유여가 받지 말라고 간언했으나 융왕은 듣질 않고 무희들에만 정신이 팔린다. 자기 군주에게 실망한 유여는 마침내 진나라로 간다. 진목공은 버선발로 뛰어가 적군의 책사였던 유여를 반가이 맞이한다. 진목공은 유여에게 외국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직위인 상경 자리를 준다. 이렇게 진나라 출신이 아닌 인재들까지 끌여들여서 결국 20개 나라를 통합하고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이처럼 인재를 끌여들이는 전략의 첫 번째는 바로 "이웃에 성인이 있게 하지 말라"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유가는 어땠을까. 우리는 유교가 협상을 중시하지 않을 것으로 오해하는데 실제는 다르다. 공자는 '선부후교(先富後敎)', 즉 먼저 부유하게 하고 그 뒤에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이게 공자의 선부론이다. 지금 보면 협상가들이 중요시하는 이익(利益)에 대한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중국 유가에서 최고의 전략가로 꼽히는 자공의 경우를 보자. 공자는 77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자공을 '교언영색의 표본'이라며 그닥 달갑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천은 "자공이야말로 공자의 이름을 천하에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제나라의 전상(田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러 번 반란을 도모하지만 실패한다. 강력한 6개 씨족 세력에 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상은 3개 씨족과 힘을 합치기로 하면서 노나라 공격에 나선다. 이를 본 공자가 제자들을 부른다. "내 선조 무덤이 있는 노나라가 공격받아선 안 된다"면서 공자는 전략에 능한 자공을 전상에게 보내기로 한다. 노나라를 구하라는 특명을 받고 전상을 찾아간 자공은 뜻밖의 말을 한다.

약한 노나라를 치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강한 오나라를 쳐야 합니다.

강한 나라를 치라는 말에 전상은 깜짝 놀란다. 어찌 상식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지 묻자 자공이 답한다.

나라 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강한 적을 공격하라 했습니다. 약한 노나라를 지금 이겨봤자 제나라 왕만 교만해지고 전상님의 공은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반면에 강한 오나라를 공격하면 제나라의 국력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좋고 지더라도 전상님으로서는 강한 적을 공격하다가 진 것이니 용서되지 않겠습니까.

자공은 그러면서 대담한 계책을 낸다. 자신이 오(吳)나라를 잘 구슬러서 제(齊)나라를 치게끔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나라 군대 병력은 제나라로 일부 분산되게 되니 오나라에 남은 병력은 줄어들게 된다. 이 때 본색을 드러내 병사 수가 적어진 오나라 본진으로 쳐들어가 싸우라는 것이다. 제나라 전상을 설득한 자공은 오나라 왕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승 제나라가 천승의 노나라를 끌여들여 오나라와 다투려합니다.  

오왕이시여, 노나라를 구원하고 제나라를 치는 것이 이익입니다.  

거만한 오왕은 원수인 월(越)나라를 언급하며 "내가 월나라를 칠 때까지만 기다려주시오"라고 말한다. 자공을 거만하게 맞이했음은 물론이다. 오왕과는 대조적으로 월왕 구천은 자공이 왔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뛰어나와 자공을 맞이한다. 자공에게는 구천이 또 하나의 '카드'가 된 셈이다. 월왕 구천의 입장은 명백했다. "나는 죽더라도 오왕하고 싸우다 죽는게 소원이오" 이런 구천의 마음을 놓칠리 없는 자공이 천재적인 전략을 내놓는다.

오나라 같은 곳과 전쟁하지 마십시오. 오왕은 어리석고 거만하니 월왕께서 귀중한 보물을 보내서 환심을 사면서 자신을 낮추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오왕은 우쭐하면서 월나라를 치려던 마음을 돌려 제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 때 월왕이시여, 오나라를 공격하십시오.  

이를 위해 구천은 황금과 패물을 자공에게 준다. 구천은 계략대로 "어찌 월나라가 오나라에 음모를 꾸미겠습니까. 패물을 받아주십시오"라면서 오왕을 안심시킨다.

와신상담의 고사에 등장하는 구천(句踐ㆍ勾踐). 그는 오(吳)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고국 월나라로 돌아와서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치욕(恥辱)을 상기했다. 그리고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할 기회를 노렸다. 이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월(越)나라 왕 구천은 마침내 오를 쳐 이겨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굴복시키게 된다. [출처: 997788.com]

와신상담의 고사에 등장하는 구천(句踐ㆍ勾踐). 그는 오(吳)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고국 월나라로 돌아와서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치욕(恥辱)을 상기했다. 그리고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할 기회를 노렸다. 이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월(越)나라 왕 구천은 마침내 오를 쳐 이겨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굴복시키게 된다. [출처: 997788.com]

그리고 월나라 구천은 마침내 오를 쳐서 이기고 오왕을 굴복시키게 된다. 그 배경에는 탁월하고 예리한 전략가였던 자공이 있었다.

사마천은 훗날 이를 두고 "자공이 한 번 나서니 (자기 스승인 공자의 조상이 있는)노나라를 보존하고, 오나라를 멸망케했으며 월나라를 우두머리가 되게 했다"고 말했다. 자공의 말 몇 마디에 설득된 여러 나라들이 그의 '빅 픽처'대로 움직였던 셈이다.    

빼어난 협상가 중 또 하나는 진시황의 천하통일에 기틀을 마련한 이사다.
진시황이 39살에 천하통일할 때 그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2인자였던 이사는 1인자 여불위 밑에서 경력을 쌓은 뒤 진시황에게 진언할 기회를 얻는다. 이사는 진시황에게 "병력을 동원해 전쟁을 일으키면 민심만 거스르게 된다"면서 "첩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각 제후국들의 왕을 매수하고 이간질하며 매수하다 안 되면 죽여버리는 작전으로 사이를 갈라지게 만들면 천하가 진나라 것이 된다는 계략이다. 타국의 내부 분열을 조장해야 이길수 있다는 전략을 통해 이사 자신도 비주류에서 주류로 등극한다. 심지어 제나라는 35만명 병사를 거느리고도 진나라에 항복하기도 했다. '심리전'의 달인이었던 이사의 계략에 빠진 것이다.

손자병법에서도 '협상과 외교'가 상책

가장 하수 중 하수는 막무가내로 전쟁 일으키는 것

법가의 한비자가 말하는 협상 전제는 이해관계다. 인간은 누구나 '호리오해(好利惡害: 이익은 좋아하고 손해는 싫어한다)'하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협상 전략은 일단 강하고 가진 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강한 나라에서는 모략을 도모하기 쉽다. 진나라는 컸으니 거기서는 협상가들이 조금만 일을 꾸며도 일이 잘 됐다. 반면 연나라는 작은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편에 서면 열 번 중에 한 번도 이기기 쉽지 않다.

뒤통수를 치거나 상대를 제거하는 협상전략도 때로는 필요하다. 혜왕의 재상 중에 감무라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혜왕은 공손연이란 자를 유독 총애했다. 위기를 느낀 감무는 몰래 공손연의 주위에 자기 편을 심어둔다. 그리고 우연히 공손연이 승진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한다. 감무는 혜왕을 만나 "어진 재상을 얻으셨다니 축하드립니다. 공손연을 재상에 삼으신다면서요?"라고 운을 띄운다. 이에 놀란 혜왕은 '공손연에게만 이야기한 사실이 새나갔구나'라고 판단해 공손연을 잘라버렸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손자병법의 손자 역시 전쟁보다는 협상을 택했다. 전쟁이야말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손자가 이야기하는 최고 전략은 모략과 외교이며 최하수는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을 보라. 그는 미국, 일본, 베트남에 대해 서로 다른 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일본에게는 위안부 문제 등을 계속 제기해서 외교적으로 고립하고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베트남의 경우는 가차없이 영토, 군사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사실 미중 지도자 둘 모두 상당한 전략가다. 트럼프가 '드러난' 전략가라면 시진핑은 '드러나지 않는' 전략가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계속 '선린우호' 일변도의 방식을 택하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은 체통이나 명분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그렇지만 남 앞에서 고개를 안 숙인다고 딱히 남는 것도 없지 않은가. 또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해서 상대방에 대해 비난하거나 분풀이하는 건 결코 효과적인 협상태도가 아니다. 협상의 세계에선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척질 이유도 없다. 자공이 그랬고 손자가 그랬듯 아첨도, 협박도, 이간질도 하면서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면 된다.

트럼프와 시진핑 둘 모두 상당한 협상가다. [출처: hb.people.com.cn]

트럼프와 시진핑 둘 모두 상당한 협상가다. [출처: hb.people.com.cn]

그렇다고 너무 기죽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다. '굴욕외교'라고 몰아세울 필요도 없다. 중국 고전 사례들을 보면 규모나 국력과 관계없이 작은 나라들도 얼마든지 협상을 잘 할 수 있으니 한국도 성공사례를 늘려가면 된다. 협상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실리 중시의 자세로 냉철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사마천 사기 완역(전 6권), 2010 건양 우수학술 연구자상, 2012~현재 삼성경제연구소 인문학 강연중, 2013~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특별위원, 2015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차이나랩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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