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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또 전주 온다…"'입양아=앵벌이' 혐의 장애인시설 女대표 엄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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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입양한 아이들을 가족이 아니라 '앵벌이'로 여긴 것 같습니다."
지난 27일 오후 3시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법 3호 법정.
'출산장려운동의 일환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 '미혼모로서 입양아 등 5명을 홀로 키우고 있다' 등 거짓말로 수억원의 후원금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불구속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대표인 40대 목사 A씨(여)와 40대 전직 신부 B씨에 대한 1심 3차 공판이 열렸다.

지난주 전주지법서 3차 공판 #女목사와 전직 신부 사기 사건 #"입양아 등 5명 혼자 키운다"는 #거짓말로 후원금 수억원 가로채 #아이들 아파 병원에 입원해도 #아픈 사진 찍어 SNS 홍보에만 #변호인 "금전적 요구 무산되자 #어린이집 원장이 불리한 진술"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도가니』 등으로 유명한 공지영(54)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에 직접 내려와 방청한 바로 그 재판이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 정윤현 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는 A씨가 입양한 아이 3명과 A씨의 친아들 등 4명을 2011년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주·야간 24시간 돌본 어린이집 원장 C씨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왔다.

C씨는 "A씨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는커녕 돈 버는 도구로 삼아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후원금을 모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C씨는 "아이들이 아파서 입원해도 A씨는 병원에 잠깐 가서 아이들과 사진만 찍고 이것을 SNS에 올렸다"고 폭로했다.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C씨 부부가 간호하고, 병원비도 거의 부담했다고 한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이에 대해 A씨 측 변론을 맡은 김하중(57·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는 "통속적인 의미의 '앵벌이'는 아이를 학대하고 거리로 내몰아 돈을 벌어오게 하는 것인데 A씨가 아이들을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긴 것만으로 '앵벌이'를 시켰다고 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아이들이 뇌종양 등에 걸려 수술비가 3000만원 이상 필요하다'는 A씨가 지인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공판검사(기소 이후 공판에서 증인 및 피고인 신문 등을 통해 죄를 입증하는 검사) 1명 외에 수사담당인 형사2부 이승희(37·여·사법연수원 37기) 검사까지 투입했다. 지난 재판에서 재판부에 제출된 C씨의 검찰 진술 조서와 A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서 일부가 검사 서명이 빠져 증거 능력을 잃어버리자 전주지검 측이 공소 유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 검사는 김 변호사와 2시간30분간 공판 내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김 변호사는 "A씨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악의적이고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C씨를 추궁했다. C씨가 지난 4월 전주지검에서 받은 1차 참고인 조사에서 "A씨가 어린이집에 자주 들르고 아이들을 잘 보살폈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5월 2차 조사부터 진술을 뒤집어서다. A씨 측은 "C씨 부부가 '찜질방을 지을 수 있게 땅 200평을 달라' '승합차를 달라' '(장애인 복지시설) 센터장직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지만, C씨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 검사는 "검찰 조사 당시 C씨는 A씨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의 '직원'이자 이 시설에 수천만원을 투자한 '동업자'였다"며 "C씨는 본인의 진술 번복으로 시설이 폐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해를 감수하고 진실을 밝혔다"고 C씨를 감쌌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김 변호사는 "C씨가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않은데도 A씨가 맡긴 아이들 가운데 유독 K군을 달라고 한 것은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부적절하고 이례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A씨와 A씨의 친딸, K군이 땅 소유자로 등록된 사실을 알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K군에게 집착한 게 아니냐"고 따졌다. C씨는 "아니다. 핏덩이 때부터 키워 정이 든 데다 A씨가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면 아이(K군)가 받을 상처가 걱정됐다. 어느 집에서 키우든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답했다.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온 또 다른 어린이집 원장 D(여)씨에 대한 신문도 이어졌다. D씨는 A씨에게 C씨를 처음 소개한 사람이다. D씨는 "지난 5월 A씨 등을 만난 자리에서 C씨 남편이 '아내(C씨)한테 평생 해준 게 하나도 없다. 아내를 위해 200평 정도 되는 땅에 찜질방을 지어주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C씨 부부가 땅 200평을 요구했다'는 A씨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이었다. 이 검사가 '그 땅 주인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자 D씨는 '누구 땅인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 검사는 "그 땅은 C씨 남편 소유의 땅"이라고 했다. D씨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공지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전주지법 3호 법정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이날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목록은 피의자·참고인 진술 조서와 각종 압수수색 및 디지털 포렌식 자료 등 80여 개에 달했다. 변호인 측은 A씨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 강사와 아이들을 새로 맡긴 어린이집 원장, A씨 후원자, 사회복지사 등 4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A씨가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성실히 해왔고, 사심 없이 후원금을 썼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인들이다. 김 변호사는 A씨에 대한 정신 감정 및 심리 검사 결과도 재판부에 참고 자료로 냈다.

한편 A씨 등은 허위 경력증명서를 바탕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을 설립해 기부금 및 후원금 명목으로 3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다. A씨는 정부가 발급한 의료인 면허 없이 2012년 7~8월 자신이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직원 2명의 얼굴과 배 등에 봉침(벌침)을 시술한 혐의(의료법 위반)도 받고 있다.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중앙포토]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장애인 시설 신축 공사와 사단법인 변경 명목으로 후원금 1억6500여만원을 가로채고,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고 1억4600만원을 모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사회복지시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것처럼 허위 경력증명서를 꾸며 전주시로부터 장애인 복지시설 신고증을 받았다. A씨가 2010년 12월 전주에 문을 연 장애인 복지시설에는 장애인 10여 명이 생활해 왔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A씨 등의 비리가 밝혀지자 전주시는 지난 18일 A씨가 설립한 장애인 복지시설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전북도도 지난 23일 A씨가 대표로 있는 장애인 관련 협회에 대해서도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말소했다.

공 작가는 이번 재판을 받는 B씨와 악연이 있다. B씨는 천주교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2015년 7월 신부직을 잃었다. 공 작가는 당시 본인의 SNS에 "B씨가 천주교 교구에서 면직당했으니 후원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일로 B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공 작가는 2년 만인 지난 7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A씨는 B씨의 면직 사유인 성추문에 등장하는 당사자다. 자칭 '봉침 전문가'인 A씨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전직 국회의원 등 유명 정치인을 비롯해 종교인·공무원·장애인 등에게 봉침을 시술하고 일부 남성에게는 성기에 봉침을 놓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공 작가와 평화주민사랑방 등 전북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30일 오후 2시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다음 4차 공판은 내달 24일 오후 3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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