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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정권을 넘겨도 걱정 없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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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8일 광화문에 촛불이 다시 켜졌다. 여의도에도 촛불이 밝혀졌다. 촛불시위 1년. 추웠던 1년 전과 달리 축제 분위기다. 그러나 다른 생각들도 드러났다. 청와대 앞 행진 때문이다. 일부는 현 정부가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불만이고, 다른 쪽은 촛불을 독점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해 #‘나는 괜찮다’는 생각은 위험 #촛불은 사람만 바꾼 게 아니라 #국정 운영방식 바꾸라는 명령 #배타적 ‘팬덤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하는 협치로 가야

그건 약과인지 모른다. 촛불에 대해 훨씬 더 멀리 떨어진 생각들이 공존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은) 이념과 지역과 계층과 세대로 편 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쪼개지고 있다. 무엇이, 왜 다를까.

촛불은 구체제에 대한 항거다. 거기에 마음을 모았다. 촛불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이런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지율 70~80%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고 ‘문팬’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국정을 ‘팬덤 문화’로 이끌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1987년 6월 항쟁은 ‘넥타이 혁명’으로 불렸다. 운동권에 소시민들이 가세하면서 둑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 열매는 정치인들이 차지했다. 87년 체제를 집권 구상에 맞췄다. 욕심으로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4·19혁명에서 겪어보고도 같은 길을 걸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이 80% 안팎이었다. 지난 연말 80%를 조금 넘었고, 탄핵 결정 직전인 3월에는 77%.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취임 초 80%를 넘었으니 거의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이 19대 대통령 선거 결과다. 문 대통령은 41.1%를 얻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0%,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1.4%,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6.8%,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6.2%. 홍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 득표율을 합하면 75.5%. 탄핵 찬성 여론과 거의 일치한다.

김진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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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70%대를 웃돈다. 이건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권 담당자만 바꾼 것이 아니다. 과거 국정 운영 행태를 바꾸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폐쇄적이고 독단적이지 않고, 법과 제도를 존중하는 국정 운영. 그것이 ‘협치(協治)’다.

국회에서도 234명의 의원이 탄핵에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121명, 국민의당 38명, 정의당 6명, 무소속 7명. 새누리당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을 모두 합해도 172명이었다. 적어도 새누리당 의원 62명이 가세했다. 공교롭게도 234명은 재적의원 300명 중 78%다. 탄핵을 찬성한 국민 여론과 비슷하다. 국회만 촛불과 다르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국회를 비효율의 원인으로 비난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의석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헌법을 고쳤다. 삼권분립을 묵살했다. 대통령이 초헌법적인 긴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 독재자들은 국회를 무력화했다. 이를 위해 국민의 지지를 동원했다.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국회가 시민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민은 누가 대표인지 불분명하다.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선동꾼의 목소리가 압도한다.

여론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완장과 홍위병이 설치면 여론을 왜곡한다. 합법적인 국민 대표는 국회의원이다. 선거를 통해 선동과 중우(衆愚)정치를 줄이는 게 대의 민주주의의 장점이다. ‘심부름꾼(의원)이 주인(유권자)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주인은 촛불 해석보다 더 다양하다. 국회의 권한을 깎아 내리는 건 권력자에 대한 견제의 끈을 끊어버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더군다나 정치도 연예인의 팬덤 문화를 닮아간다. 팬덤은 배타적이다. 타협하고 나눌 성질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전부다. 그 연예인의 인기에 방해가 된다면 적(敵)이다. 이런 방식은 대화와 타협을 필요로 하는 정치를 왜곡시킬 소지가 충분하다.

문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부가 국회의 권한을 대신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면 국회가 필요 없다. 국회가 거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소장 대행으로 임기를 채우게 하려 한 발상도 마찬가지다. 헌법기관 구성에서도 국회의 동의를 회피하려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구성도 집권 전후 생각이 다르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건 독재자의 논리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나는 괜찮다’는 생각이다. 내가 아니라 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걱정할 필요 없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