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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핵심 내용 정리 후 예상문제 제작 … 친구들과 공유하니 ‘일석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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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공부의 신 한마디

이번 ‘전교 1등의 책상’ 주인공은 서울 하나고 2학년 권윤재(17·자연계열)군입니다. 권군이 꼽은 우수한 성적의 비결은 두 가지입니다. 교과서·자습서 등에 흩어진 중요한 내용을 한군데 모으는 ‘단권화’ 작업과 예상 문제지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자신이 직접 출제자가 돼 보면 중요한 내용이 뭔지 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권군은 자신이 만든 요점 정리와 예상 문제지를 혼자 보지 않고 친구들과 공유합니다. 중1 때 반 친구들의 시험 준비를 도우려 시작한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네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 돕기를 좋아했던 권군은 의예과에 진학해 불치병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고 전교 1등 윤재의 공부법 #암기과목은 교과서·필기 등 #나만의 서너 장 교재로 압축

권윤재군이 하나고의 면학실 앞 복도에 마련된 책상에서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권윤재군이 하나고의 면학실 앞 복도에 마련된 책상에서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서울에 있는 자율형사립고인 하나고 2학년 권윤재군은 내신시험이 다가오면 대부분 과목에 대해 예상문제를 만들어본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예상문제지를 혼자만 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친구에게는 모두 보내준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 공유형’ 인재라 할까.

사실 하나고에는 전교 1등이 공식적으로 없다. 여타 고교와 대비되는 교육과정 때문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다. 대학의 수강 방식과 비슷하고,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와도 흡사하다. 학생들의 시간표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전교 1등을 가리기 어렵다. 권군은 “성적·학습 태도 등을 볼 때 타 학교로 치면 전교 1등감”이라고 하나고가 추천한 학생이다.

권군은 ‘융합형 인재’의 특징도 강하다. 지난해까진 경제학자가 되는 게 목표였는데, 올해 의대 진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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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군은 내신시험 기간에 수학·영어 과목을 제외하고는 교과서나 교재를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교재’를 본다. 교과서·자습서 등에 흩어져 있는 필기를 한 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른바 ‘단권화’ 작업이다. 대부분의 전교 1등은 손글씨로 단권화를 하지만, 권군은 노트북을 이용한다. 컴퓨터로 요점 정리를 하고 예상문제도 만든다.

권군이 컴퓨터로 단권화를 하는 것은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권군이 ‘공유’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당시 권군의 담임교사는 학교 시험이 임박하자 그 반 우수생이던 권군에게 예상문제를 내서 친구들에게 나눠줄 것을 권했다고 한다. 권군은 결과물을 공유하는 데는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게 편리할 거라 생각했다.

이런 습관은 하나고에 입학한 후에도 이어졌다. 지난해엔 경제과목 요점 정리와 예상문제지를 전교생이 사용하는 홈페이지에 올렸다. 지금도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e메일로 전송해 준다. 권군은 “시험 대비도 하고, 다른 친구도 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요점을 정리하는 데 2~3일 이상 걸리지만,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게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권군의 면학실 책상 모습. [최승식 기자]

권군의 면학실 책상 모습. [최승식 기자]

그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 공부를 넘어서는 지식도 공유했다. 중2 때는 블로그를 개설해 자신이 공부한 경제학·철학 내용을 올렸다. 철학은 베이컨·데카르트 등 철학자 중심으로, 경제학은 ‘독점적 경쟁의 특성’ ‘차별의 경제학’ 등 개념 위주로 정리했다.

권군의 이 같은 지식 공유는 부모의 영향으로 보인다. 권군 부모는 둘 다 교수다. 아버지 권영균(51)씨는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어머니 조희정(47)씨는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다.

권군 어머니에 따르면 권군은 한 살 때 동요 비디오를 한 시간 가까이 볼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세 살 때 혼자 동요 비디오를 보면서 한글을 깨쳤다. 그렇다고 부모는 권군에게 특별히 영재교육을 시키지는 않았다. 당시 권군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 사이에서 유행했던 유아 대상 영어학원, 이른바 ‘영어유치원’에도 보내지 않았다. 일반 유치원이면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많이 하는 곳에 다니게 했고, 초등학교에 입학 전까진 책도 많이 못 읽게 했다. 유아기에 학습에 몰입하면 성장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교육은 초등 4, 6학년 때 영어·수학 학원을 다닌 게 전부였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대신에 권군은 한 달에 한두 번 부모와 함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다. 이후에 박물관 등에서 본 내용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관심 분야를 넓혔다.

권군이 중학교 때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철학·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이런 환경이 작용했다. 그런데 단순히 호기심을 갖는 정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중2 때 권군이 운영하던 철학·경제학 관련 블로그에는 대학교 중간고사철이 되면 접속자가 많아졌다. 권군 아버지는 “대학생들이 철학·경제학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 우리 애 블로그에 들어와 질문을 남긴 적도 있다. 대학생들이 보기에도 내용이 제법 괜찮았나 보다”고 대견해했다. 권군은 하나고 입학 후 블로그 활동을 그만뒀다.

하나고는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하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 주중에는 학원을 다니기 어렵다. 중학교 때 학원에 많이 다닌 일부 학생은 사교육 단절로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권군은 상대적으로 적응이 쉬웠다고 한다.

권군(가운데)이 활동하는 댄스동아리가 지난 9월 열린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권윤재]

권군(가운데)이 활동하는 댄스동아리가 지난 9월 열린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권윤재]

권군은 자기 스스로 만든 교재로 시험에 대비한다. 교재를 제작하는 방법은 과목별로 조금씩 다르다. 생명과학처럼 암기할 내용이 많은 과목은 시험 2주 전까지 교과서·자습서·인쇄물 내용을 A4 용지 서너 장에 압축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군데군데 지워 예상문제지로 만든다.

내용 이해가 중요한 국어 과목은 요점 정리보다는 문제지와 해설지 제작에 더욱 공을 들인다. 공부하면서 궁금하게 느낀 부분은 전부 주관식으로 문제와 답을 정리한다. 시 한 편당 적게는 7문항, 많게는 15문항 정도 된다. 가령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예로 들면 ‘청포도가 상징하는 것은’ ‘은쟁반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문제를 낸다. 권군은 “예상문제지를 만들다 보면 출제자 관점에서 보게 된다. 중요한 게 뭔지 파악되고 나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더라”고 설명했다.

열려라 공부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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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경제학자에서 의대로 바꾼 데는 엄마의 투병이 영향을 미쳤다. 권군이 중학교에 다닐 때 엄마 조씨는 신경계 이상 질환으로 불편을 겪었다.

권군은 “경제학자를 꿈꿀 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열심히 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의대에 진학해 불치병을 낫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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