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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거기 어디?]'안전가옥'의 안전하지 않은 책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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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책 읽기에 어디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올라온 한 게시물에 달린 글이다. '책 읽기에 안전한 공간이 따로 있나'라는 의문에 증거라도 내밀듯 글이 달린 사진에는 ‘안전가옥’이라 새겨진 문패가 달린 한 건물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최근 성수동에 문을 연 카페 겸 라이브러리 ‘안전가옥’이다.

SF·판타지·추리 등 장르문학 읽고 쓰는 곳 #성수동 오토바이 수리점 개조해 만들어 #에쁜 공간만큼 책 매니어 배려한 분위기 좋아

안전가옥의 라이브러리 내부. 조명이 설치된 긴 테이블에 커피 한 잔과 함께 판타지 소설 한 권을 골라 앉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안전가옥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윤경희 기자.

안전가옥의 라이브러리 내부. 조명이 설치된 긴 테이블에 커피 한 잔과 함께 판타지 소설 한 권을 골라 앉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안전가옥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윤경희 기자.

안전가옥은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지난 8월 가오픈하고 9월 19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벌써 인스타에는 #안전가옥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580개가 넘었다. 개성 있는 장소들로 가득한 성수동의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될 조짐이 보인다.

성수동 '안전가옥'의 철문에 붙어 있는 문패. [사진 안전가옥]

성수동 '안전가옥'의 철문에 붙어 있는 문패. [사진 안전가옥]

지난 10월 28일 오후 늦게 직접 안전가옥을 찾아 나섰다. 성수동의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대림창고나 서울숲과는 꽤 거리가 있다. 위치는 영동대교 북단으로 이어지는 성수사거리 인근의 공장지대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가려면 3번 출구로 나와 15분 이상 걸어야 한다.

안전가옥의 위치. 성수역에서 15분 정도를 걸어야 나오는 공장지대에 위치해 있다. [사진 네이버지도]

안전가옥의 위치. 성수역에서 15분 정도를 걸어야 나오는 공장지대에 위치해 있다. [사진 네이버지도]

자동차 수리점과 공업사 등을 지나 한참을 걷자 갈대가 우거져 있는 건물 옆 정원이 나타났다. 외형상으로는 인근의 다른 공장 건물과 별다를 게 없어 철문에 붙어 있는 ‘안전가옥’ 문패를 보고서야 이곳이 '거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스타에서 봤던 갈대가 우거진 건물 옆길을 통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비로소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안전가옥의 외부.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사용했던 창고형 건물과 공업사로 사용한 뒤쪽의 3층 건물을 함꼐 사용한다. 윤경희 기자

안전가옥의 외부.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사용했던 창고형 건물과 공업사로 사용한 뒤쪽의 3층 건물을 함꼐 사용한다. 윤경희 기자

안전가옥은 공간 이름인 동시에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책을 포함한 ‘이야기’를 읽고 쓰고 또 창작자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이다. 독특한 이 프로젝트는 삼성전자와 카카오 전략실에서 근무했던 김홍익 안전가옥 대표와 성수동을 기반으로 공간을 기획·운영하는 정경선 HGI 대표의 합작품이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글쓰기 동아리를 함께 한 대학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커뮤니티에서 수익성과 공익성을 만드는 사업까지 이루어진다면 재미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해 초 실제로 구체적인 컨셉트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6월 김 대표가 카카오를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해 올 가을 안전가옥의 문을 열었다.

철문을 통과해 안전가옥으로 들어가는 갈대 길. 인스타에 많이 올라오는 장소다. 윤경희 기자

철문을 통과해 안전가옥으로 들어가는 갈대 길. 인스타에 많이 올라오는 장소다. 윤경희 기자

갈대 길을 지나 들어오면 나타나는 안전가옥의 진짜 입구. 유리문 안쪽이 라이브러리,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맞은편엔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카페가 위치해 있다. 윤경희 기자

갈대 길을 지나 들어오면 나타나는 안전가옥의 진짜 입구. 유리문 안쪽이 라이브러리,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맞은편엔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카페가 위치해 있다. 윤경희 기자

다시 안전가옥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사용했다는 단층 건물 한 채와 뒤쪽의 3층 건물 한 채, 이렇게 두 동으로 구성돼 있다. 3층 건물 역시 기계 수리를 하는 공업사로 사용했던 곳이다. 단층 건물은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라이브러리, 3층 건물은 카페(1층) 겸 입주 창작자들의 작업 공간인 스튜디오(2·3층)로 운영한다. 라이브러리는 누구나 와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커피나 티, 맥주 등 음료 한 잔(7500~8500원)을 사면 무료로 2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이후부터는 30분당 1500원씩의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는 원데이 패스는 평일 1만원, 주말1만5000원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내 전화번호를 템플릿에 찍은 후 '입장' 버튼을 누른다. 지금부터 윤경희 기자

커피를 주문하고 내 전화번호를 템플릿에 찍은 후 '입장' 버튼을 누른다. 지금부터 윤경희 기자

특이한 점은 SF, 판타지, 미스테리, 로맨스 등의 주제를 다룬 ‘장르문학’ 도서만 취급한다는 것. 1700여 권의 책이 차 있는 라이브러리에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부터 ‘영웅문’ 같은 무협소설,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십 트루퍼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등 SF 소설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로버트 하이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등의 소설이 꽂혀 있다. 김 대표가 평소 좋아했던 장르문학만을 다뤄 자신과 같은 장르문학 매니어들과 창작자들이 모이길 원해서 그렇게 방향을 정했단다.
김 대표는 “모든 이야기를 다 다루면 좋지만 공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며 "일단 나와 정 대표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또 사회적으로 '진정한 문학이 아니다'란 시선때문에 자신이 매니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장르문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갈 수 있는 장소, 그들에게 진정한 '안전가옥'을 제공하겠다는 얘기였다.
건물 2, 3층의 스튜디오는 글을 쓰는 창작자들에게만 개방되는 공간이다. 멤버십 서비스를 통해 한 달 25만원의 비용으로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데, 장소만 공유하는 것이 아닌 입주 창작자들끼리 교류하고 서로 함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는 등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안전가옥 라이브러리의 내부. [사진 안전가옥]

안전가옥 라이브러리의 내부. [사진 안전가옥]

SF물부터 판타지, 무협, 추리, 로맨스까지 장르문학 도서들이 비치돼 있다. 또 서가 곳곳에 책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메모로 남기고 공유할 수 있도록 종이와 펜을 준비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윤경희 기자

SF물부터 판타지, 무협, 추리, 로맨스까지 장르문학 도서들이 비치돼 있다. 또 서가 곳곳에 책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메모로 남기고 공유할 수 있도록 종이와 펜을 준비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윤경희 기자

커피를 한 잔 시켜 들고 라이브러리로 들어갔다. 긴 서가와 테이블로 구성된 내부는 조용했다. 라이브러리에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만 것 허용된다. ‘공부금지’ ‘쉿’ 같은 푯말이 이 지침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방문자들 또한 자유롭게 앉아 차를 마시며 오롯이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형서점에서처럼 앉을 자리를 찾아 '매의 눈'을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다. 여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으면 됐다.
커피 한 잔과 읽을 책, 이 두 가지가 이 곳의 전부였다. 공간은 예쁘고 특색 있지만 SNS에서 유명해진 장소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피사체나 메뉴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예쁜 카페나 ‘찍을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특이한 안전가옥의 외형만 보고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나가는 일도 적지 않다. 그날도 두 커플이 갈대에 끌려 들어왔다가 다른 카페를 찾아 떠났다. 하지만 일단 장르문학의 매니어라면, 또는 조용하게 책 한 권을 읽을 여유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SNS를 보고 찾아왔다 하더라고 휴대폰을 끄고 자리를 잡고 앉게 된다. 김 대표 또한 “SNS에서 화제가 돼 많은 사람들이 오기 보다는, 장사가 안 되더라도 장르문학 매니어들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짝 내비쳤다. 책 한 권을 읽은 후에야 왜 이 곳의 이름을 안전가옥으로 지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창작자에게는 영감을, 매니어들에게는 몰입감을 주기 위한 안전한 공간'이란 의미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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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안전가옥, 윤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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