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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조 빚 잡으려다 집값 양극화 심화 … 강남 아파트 몸값 더 올릴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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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04면

[긴급진단] 가계부채 대책의 빛과 그림자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 가계 빚 증가 속도를 늦추고 투기를 누를 순 있지만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 등 공급 확대를 통한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권대중 교수, 신민영 부문장, 성태윤 교수. 김경빈 기자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 가계 빚 증가 속도를 늦추고 투기를 누를 순 있지만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 등 공급 확대를 통한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권대중 교수, 신민영 부문장, 성태윤 교수. 김경빈 기자

“빚내서 집 사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번 대책 20~30대 직장인 유리 #집값은 당분간 약보합세 보일 것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 필요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부채 총량 늘었다고 위기 아니다 #가계 순자산 늘고 연체율도 낮아 #금리 인상 대비해 빚 규모 줄여야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경기 침체로 소득 줄어든 게 원인 #빚 대책으로 집값 잡으려면 안 돼 #자산 줄고 원리금 상환 부담 커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가 지난 24일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을 앞세운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은 뒤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14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였다는 것이다. 특히 신DTI는 기존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원금까지 반영해 대출 한도를 평가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 수요 자금줄을 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계부채 대책을 부동산 가격 정책으로만 접근하면 전반적인 시장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고 있어 가계의 빚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중앙SUNDAY는 26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부동산 전문가인 권대중(대한부동산학회장)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금융시장 전문가인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해외 사례를 통해 효율적인 가계부채관리제도를 분석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와 함께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와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가계부채와 정부 대책

가계부채와 정부 대책

가계부채는 얼마나 심각한가.
권대중 교수(이하 권 교수)=최근 주담대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1388조원에 이르는 가계빚 가운데 주담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가계가 은행에서 주담대로 빌린 돈이 약 450조원이다. 연내 국내 금리라도 인상되면 가계빚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대출 규제를 통한 이번 가계부채 종합대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성태윤 교수(이하 성 교수)=과거 통계를 보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거나 경기가 침체됐을 때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2005년 1분기 5.2%였던 가계부채 증가율이 2007년 초반 11%까지 증가했다. 이때가 주택 값이 폭등했던 시기다. 2014년 이후 2년 동안은 부동산 가격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경기가 하락하면서 가계빚이 늘었다. 올해도 부동산 영향으로 가계빚이 증가했다고 보긴 어렵다. 올 2분기까지 전국 아파트 가격을 살펴보면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 울산·충북·충남·경남·경북 지역은 하락세다. 전체적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가계소득이 줄어든 게 빚 규모를 늘리고 있다.

신민영 경제연구부문장(이하 신 부문장)=하지만 가계부채 규모가 1400조원에 달한 게 정말 심각한 문제인지 따져 봐야 한다. 먼저 가계빚이 는 만큼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도 증가했다.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이 늘었다는 얘기다. 더욱이 은행의 가계부채 연체율은 8월 말 기준으로 0.28%다. 사상 최저치다. 2금융권인 저축은행도 찾아보니 4.5%로 지난해보다 낮다. 시장 우려와는 달리 가계빚이 늘어도 갚을 여력이 있다. 단순히 가계부채 총량이 늘었다고 해서 위기로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이번 가계대책은 어떻게 보나.
성 교수=3가지 항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최근 경기 침체로 가계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에 DTI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또 돈을 빌린 차주의 소득·자산 등 상환 능력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분류한 뒤 맞춤형 대책을 내놨다. 소득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차주에겐 최고 금리 인하 등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포함됐다. 전국적으로 확대하지 않았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올 들어 주택 값이 하락한 지역도 있어 일괄 적용하면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계부채 대책은 부동산 가격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가계부채 위험성을 낮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신 부문장=차주를 세분화해 대책을 세웠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금융부처 중심의 가계부채 공급 억제책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 대책은 일자리 문제로 이어진다. 일자리 창출로 가계소득이 늘면 대출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에도 일자리 방안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가계부채와 연관성이 낮다. 예를 들어 다중채무자 등 가계빚으로 어려움을 겪는 차주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선 금융위원회 등 금융 관련 부처는 기본이고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부처가 대책 마련에 참여해야 한다.

권 교수=이번 대책은 연령이 낮을수록 유리하다. 내년 1월 도입하는 신DTI는 장래 소득을 고려해 원리금 상환 능력을 따지기 때문이다. 소득이 안정적으로 늘어날 20~30대 직장인은 대출 규모가 증가하는 반면 50대 이후 장년층은 예상 소득이 줄면서 대출 규모도 쪼그라들 수 있다. 무엇보다 중산층을 위한 대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번 청약제도를 바꾼 뒤 무주택자만 실수요자로 보는 것 같다. 1주택자가 새로운 주택을 구입해 옮기려는 이전 수요까지 청약 2순위로 밀리듯 실수요자 개념이 축소되는 듯하다.

성 교수=자영업자(개인사업자) 부채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중산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소비가 크게 줄면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주요 은행들의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면 한 달 전보다 4조7000억원가량 늘어나 같은 기간 주담대 증가량(4조5000억원)보다 많다. 그동안 주담대로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을 융통하던 자영업자들이 주담대 규제가 강화되자 사업자 대출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자영업자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지 않도록 사회복지 대책과 연결해 줘야 한다.

부동산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권 교수=엎친 데 덮친 격이다. 고강도 부동산 규제인 8·2 대책이 발표된 지 석 달 만에 투기용 돈줄을 옥죄는 대책이 나왔다. 내년 4월 이후 조정 대상 지역 내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2주택자는 기본세율(6~40%)에 10%포인트를 더한 세금을 내야 한다. 파는 것은 물론 다주택자는 빚을 내 투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상가·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까지 대출 이자와 임대소득을 따져 대출을 규제한다. 규제가 늘수록 부동산 경기는 침체되기 마련이다. 당분간 집값은 약보합세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신 부문장=가계대책이 부동산 평균 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하겠지만 양극화는 더 커질 것이다. 소득이 많은 투자자는 서울 강남권 등 인기 지역의 고가 주택을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 빚 부담이 큰 다주택자도 마찬가지다. 미래 자산 가치가 큰 알짜 자산을 남겨 두고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낮은 주택부터 내놓을 것이다. 결국 강남처럼 소비자들에게 인기 많은 지역의 주택 가격만 더 오를 수 있다.

성 교수=맞는 얘기다.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이번 대책을 부동산 가격 정책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가계의 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대수익으로 노후를 살던 베이비부머가 대출 이자 등의 압박을 받으면 핵심 주택만 남겨 두고 서울 외곽 주택부터 정리할 수 있다. 매물이 쌓이면 주택 값은 떨어진다. 문제는 주담대로 서울 외곽의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자산가치가 줄고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계부채의 변수인 기준금리는 어떻게 될까.
성 교수=지난 1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신호를 강하게 보냈다. 반도체 등 수출 실적이 워낙 뛰어나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 3%를 달성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금리 인상시기엔 예대 금리 차가 2%포인트, 인하시기엔 1.5%포인트 차이가 났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가 오르면 예금 금리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지만 예금 금리는 많이 안 오르고 대출 금리만 급증할 수 있다. 특히 가산금리가 올랐음에도 빚을 낸 사람이 많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확 커질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이 예금 금리는 묶어 둔 채 대출 금리만 높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신 부문장=이번 대책으로 금융사는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주기 어려운 구조다. 전체 수입이 줄기 때문에 가산금리를 올리려고 한다. 여기에 기준금리까지 오른다면 예대마진 확대로 수익을 늘리려 할 것이다. 가계빚을 갖고 있는 가구의 부담만 커진다. 이 상황에서 다음달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맞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이 좋다고 하지만 4분기 건설업계 부진으로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당장 인플레이션이나 자금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도 아니다. 뚜렷한 경기 회복세 흐름을 확인한 뒤 금리 인상을 고려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권 교수=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지 사흘 만에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가 연 5% 선을 넘어섰다.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11·3 대책 이후 줄줄이 규제가 쏟아졌는데 금리 인상까지 이어지면 타격이 클 수 있다. 결국 국내외 경제 상황에 맞춰 금리를 올려야 한다면 관행적인 0.25%포인트보다 더 낮춰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부동산 시장이나 가계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중장기 대책은.
권 교수=단기적인 고강도 대책은 부동산 시장을 누르는 데 효과가 있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은 한 정부가 규제하면 두 정부가 규제를 풀어 주는 방식이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결국 부동산 시장은 냉온탕을 오갔다. 기본적으로 서울의 수요 과잉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공급 확대다. 당장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면 수요 분산 정책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2009년 초반 미분양 아파트가 크게 증가했을 때 양도세 5년간 면제, 취·등록세 50%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으로 미분양을 해결했다. 마찬가지로 서울 강남권 등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 대신 수도권에서 주택을 매입할 경우 다양한 세제 감면 혜택을 준다면 수요가 분산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성 교수=철저히 시장경제 원리로 움직이는 홍콩의 부동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콩은 소득이 많다면 여러 채 주택을 매입하더라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다만 빚을 내 임대사업을 하는 것은 부채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규제한다. 실수요자라도 소득을 넘어선 대출로 집을 마련하긴 어렵다. 또 소득이 낮아 집을 구입하거나 빚을 내기 어려운 취약계층엔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한다. 이들은 부동산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순 없지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에 만족한다.

신 부문장=한국은 임대주택에 만족하지 못한다. 일부 지역에서 투기가 늘고 집값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불안하다. 아직까지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 강남권이 지속적으로 수요 과잉으로 문제가 된다면 강남구 세곡동, 서초구 내곡동 등 강남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전국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지하는 건 문제지만 공급이 부족한 곳만 풀면 수요가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권 교수=임대주택도 주택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소득·나이 등 까다로운 입주 자격이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키우는 듯하다. 지난해 기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주택보급률은 103.5%다. 이 중 자가주택보급률은 59.9%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는 집이 없는 무주택자다. 임대주택 공급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5%)보다 낮은 6.8% 수준이다.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대신 민간주택의 임대주택을 양성화해 적극적으로 제도권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계대책 이후 투자자 대응전략은.
신 부문장=가계빚 부담이 커질 땐 ‘빚테크’ 규모를 줄이는 게 현명하다. 빚을 내 여러 채의 집을 사들인 차주는 원리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 가치가 낮은 부동산은 처분하고 미래 가치가 높은 부동산을 보유해야 한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부동산 시장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 있다.

권 교수=맞는 얘기다. 대출이 많은 다주택자는 과도하게 주택을 보유하는 것보다 매각을 통해 빚을 줄이는 게 현명하다. 반대로 자금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는 임대주택사업자로 전환해 취득세·양도세 등 세제 혜택을 누리는 게 안전하다. 단 임대료는 연 5%까지만 올릴 수 있다. 특히 실수요자가 아니라면 앞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주택 구입시기를 뒤로 미뤄야 한다. 대출 규제로 거래가 위축될 수 있는 데다 금리 인상 가능성도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성 교수=정부는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신용상담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또 빚을 못 갚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경제적 취약계층은 빚을 없애 주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맞다.

신 부문장=빚을 탕감할 때는 ‘안 갚고 버티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말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꼼꼼하게 선별해야 한다.

정리=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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