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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숙의 Q] 차인표, 배우·감독·제작자의 이름으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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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차인표 씨의 부인, 신애라 씨를 인터뷰하며 그의 근황을 들었다. 올해 초 영화 제작사를 차렸고 미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7월 단편영화 ‘50’의 감독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참석했고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에도 초청받았다. 그리고 이번엔 영화 ‘헤븐퀘스트’의 제작자로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그는 레드카펫이 아닌 아시안 필름 마켓, 그것도 가장 작은 부스 안에 있었다. 화려한 배우가 아닌 제작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듣기 위해 ‘배양숙의 Q’가 차인표를 만났다.

배우에서 배우·감독·제작자로 #부산국제영화제엔 배우 아닌 제작자로 참석 #올해 초 영화제작사 ‘TKC Pictures’ 차려 #단편영화 ‘50’의 감독으로 런던아시아영화제에 초청받기도 #선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 만들고 싶다

배양숙의 Q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겸 제작자 차인표를 만났다. 프리랜서 조현지

배양숙의 Q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겸 제작자 차인표를 만났다. 프리랜서 조현지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종영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드라마 종영 후 가족을 만나러 미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리키김이라는 후배 배우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저에게 킹스트릿 픽쳐스(King Street Pictures)의 대표 댄 마크(Dan Mark)씨를 소개해줬어요. 댄 마크씨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분이었어요. 제가 올해 초 한국에 티케이씨 픽쳐스(TKC Pictures)라는 영화사를 차렸거든요. 그래서 킹스트릿 픽쳐스와 저희 티케이씨 픽쳐스가 합작으로 영화 ‘헤븐퀘스트 : 필그림스 프로그레스(Heavenquest : A Pilgrim’s Progress)’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맷 빌렌(Matt Bilen) 감독이 3~4년 전부터 준비해 왔는데 금전적인 문제로 제작하지 못하고 있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이 원래 출연료의 10분의 1도 받지 않고 재능 기부를 했어요. 지난 7월엔 본 촬영, 9월엔 보충 촬영까지 마쳤고 지금은 그래픽이나 편집 같은 후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맷 빌렌 감독은 어떤 분인가요?
“빌렌 감독은 저와 통하는 게 많은 분입니다. 원래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로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모두 입양아에요. 첫째는 한국 아이, 둘째는 필리핀 아이, 셋째는 에티오피아 아이에요. 저와 제 아내도 두 딸을 입양했잖아요. 그런데 첫째 한국 아이가 부모님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반항을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아이가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아이의 고향, 부산을 보여주는 것이 빌렌 감독의 소망이래요. 저도 입양아를 키우는 입장에서 만약 ‘헤븐퀘스트’가 부산에서 상영하게 되면 꼭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했어요.”
영화 ‘헤븐퀘스트’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헤븐퀘스트’는 영국 종교작가 존 번연(John Bunyan)의 소설 『천로역정』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입니다. 빌렌 감독은 세 아이들을 키우며 항상 밤에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하루는 『천로역정』을 읽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지루해 할까 봐 액션판타지로 바꿔서 얘기해줬다고 하더군요. 그게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된 거고요. 『천로역정』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하늘의 도시에 당도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에요. 인간이 삶이라는 여정을 걸어갈 때 온갖 역경을 겪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한테 돌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희 영화에서는 이 내용을 주인공 벤젤이 남쪽 왕국에서 북쪽 왕국으로 가는 여정으로 비유했고 액션 판타지 요소를 더했습니다. 꼭 저희 신앙을 강조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원하니까요.”
헤븐퀘스트의 감독, 맷 빌렌(맨 오른쪽)과 차인표(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차인표]

헤븐퀘스트의 감독, 맷 빌렌(맨 오른쪽)과 차인표(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차인표]

영화사를 직접 차리고 제작자가 된 계기가 뭔가요?
“사실 우리나라는 상업영화가 많이 발달한 만큼 규모도 점점 커지고 제작비도 많이 들잖아요. 상업영화 쪽에 종사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고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선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우리나라는 워낙 영화 시장 자체가 거대한 자본이 들어와서 대규모로 제작하고 큰 배급사에서 배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다양한 수준의 영화가 만들어질 만한 시장이 없어요. 만든다고 하더라도 상영할 장소와 관객도 없고요. 그런 부분을 고민하다가 미국 시장을 조사해봤는데 미국은 2005~2006년부터 가족 영화, 선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 그리고 믿음을 전제로 한 영화 시장이 생겼더군요. 그리고 그 시장이 10여 년 동안 굉장히 많이 발달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시장이 아예 없는 한국에서 만들 게 아니라 미국에서 만들고 제작비를 회수한 다음 한국에 가져와 상영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배우와 제작자의 입장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제가 이 영화에 제작자로서 참여하면서 결심한 건 ‘낮아지자, 섬기자’ 이 한 가지에요. 독립 영화를 만들려고 모인 30~40명의 스텝과 배우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한국에서 좀 알려진 배우라고 오만을 떨거나 건방지게 굴면 나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 또 제작자로서 이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제 의무니까 성공이 아니라 섬기는 데 목적을 두자고 결심했어요. 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드는 영화인데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깔아뭉갠다면 그 목적이 없어져 버리는 거거든요. 과정이 선하지 못하면 결과도 선할 수 없어요. 그걸 초심으로 잡고 스텝들한테 최대한 낮은 자세로 섬기려고 노력했어요. 워낙 저예산 영화다 보니 개인 돈도 많이 썼고요. 한번은 7월 달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 있는 레딩(Redding)이라는 지역으로 촬영을 갔습니다. 많은 엑스트라들이 필요한 장면이 있었는데 벧엘교회에서 온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왔어요. 그 지역이 여름에 45도까지 올라가는 아주 더운 지역인데, 하루 종일 갑옷 입고 투구 쓰고 뛰어다니면서 촬영했어요. 자원봉사 한다고 온 친구들이지만 그 고생을 시키고 그냥 보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 사비로 100불씩 쥐어줬죠. 제작자가 안 주면 그 돈을 누가 주겠어요. 촬영하다가 너무 힘들면 스텝들 모두 모아서 맛있는 거 사주기도 하고요. 사실 미국에는 그런 문화가 없잖아요. 제가 느낀 건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진심으로 대하면 결국 통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한 달 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헤븐퀘스트 제작진과 함께 찍은 사진. 부인 신애라와 두 딸도 있다. [사진 차인표 페이스북]

헤븐퀘스트 제작진과 함께 찍은 사진. 부인 신애라와 두 딸도 있다. [사진 차인표 페이스북]

제작자로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신 소감이 어떤가요?
“저는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에 3번 참석했습니다. 처음엔 2006년 폐막식 사회자로 저는 턱시도, 아내는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걸었어요. 한번은 임권택 감독님 특별전 사회자로 왔었고요. 과거의 저는 화려함 속에만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작자로 왔잖아요. 어젯밤 텅 빈 부스에 와봤더니 자원봉사 하러 온 청년들이 밥은 먹었는지 헐레벌떡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걸을 수 있었던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때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모습만 봤지 무대 뒤에 있는 수많은 친구들은 보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스에서 상담도 많이 하셨나요?
“저는 영화를 팔기보다는 알리려고 왔어요. 그래서 영화를 팔기 위한 상담보다는 앞으로 만들 영화에 대한 자문을 많이 구했죠. 저희가 이렇게 부스를 차려 놓으면 호스트들이 와서 보잖아요. 그 분들은 다 영화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거나 영화 기자고요. 그러니까 이미 알리려는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을 찾은 리키김(왼쪽)과 차인표. 프리랜서 조현지

부산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을 찾은 리키김(왼쪽)과 차인표. 프리랜서 조현지

지난 7월엔 단편영화 ‘50’의 감독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석하셨지요.
“사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감독이 꿈이었습니다. 당시 영화 ‘ET’를 보는데, 어린 제 마음에 위안이 되더라고요. 저도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거의 40년이 지나서야 그 꿈을 이뤘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거 그렇게 쉽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근데 사실 다 해볼만 한 일이거든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예요. 제가 15분 짜리 단편영화 ‘50’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갔더니 사람들이 저보고 감독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단편영화를 제작하면서 한번도 제가 감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20여 년 동안 남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나도 해보고 싶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만 하고 주저하다가 너무 오래 걸렸어요.”
저는 절대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우로서 촬영현장을 충분히 경험하고 감독을 시작하셨으니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잖아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웃음) 다들 제가 감독을 한다고 하면 왜 이제 와서 감독을 하느냐고 우려했거든요. 사실 단편영화 ‘50’은 이번에 ‘런던아시아영화제(London East Asian Film Festival)’에도 초청 받았어요. 이건 제가 감독으로서 잘 나간다는 게 아니라 시도 했더니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젊은 친구들한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계획을 잘 세워서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결국 우리의 인생은 해봤느냐 안 해봤느냐로 나뉘거든요. 해보는 삶을 살아야 해요.”
차인표는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에 단편영화 '50'의 감독으로 참석했다. 지난 19일 개막한 LEAFF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 차인표]

차인표는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에 단편영화 '50'의 감독으로 참석했다. 지난 19일 개막한 LEAFF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 차인표]

배우와 감독, 제작자의 차이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배우가 꽃이라면 감독은 그 꽃을 심는 사람이고 제작자는 그 꽃을 고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각각의 특성과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저는 계속 세 직업을 병행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이런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지난 4월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라이프(Life)’ 때문이에요. 제작사에서 저한테 오디션을 보러 와 달라는 e메일을 보냈고 두세 번의 오디션 후에 제작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인터뷰까지 했어요. 헐리우드 문턱 앞까지 간 거죠. 그 앞에서 나이 50에 20여 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해 온 제가 덜덜 떨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지 나랑 맞는 영화도 아니고 하고 싶었던 영화도 아닌데 단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이유 때문에 이렇게 떠는 게 정상인가? 이러지 말자. 솔직해지자. 정말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렇게 손을 놓으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 손으로 다른 걸 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배우 생활을 가장 오래 하셨는데, 배우로서 가장 큰 스승은 누구인가요?
“저는 한 분만 스승으로 삼기보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선배에게, 때로는 후배나 동료에게 배웠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2009년 KBS 사극 드라마 ‘명가’를 촬영 하면서 배우 최일화 씨와 나눴던 대화입니다. 최일화 선배는 제 아버지 역할을 맡았는데, 촬영을 위해 좁은 분장실에 둘이 마주 앉은 적이 있습니다. 사극이라 얼굴에 붙인 가짜 수염이 얼마나 가렵던지요. 그런데 최일화 선배는 하나도 안 가려운 듯, 의연하게 앉아있길래 제가 물었습니다.
‘선배님은 수염 분장이 가렵지 않으세요?’
‘가렵지, 많이 가려워.’
‘근데 어떻게 안 가려운 것처럼 의연하게 앉아 계세요?’
‘그냥 가려울 때마다, ‘더 가려워 봐라, 더 가려워 봐라’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참는 거야.’
그 때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배우는 어쩌면 참는 직업이라는 것을요. 무명시절을 참아야 하고, 긴 대기시간을 참아야 하고, 때로는 추위를,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참아야 하고, 가려운 수염도 참아야 하다는 것을요. 똑같이 가려운데 티 안내고 참는 최일화 선배를 보면서 배우로서의 초심을 다잡았습니다.
차인표는 헐리우드를 포기하고 감독이란 꿈을 선택했다. 프리랜서 조현지

차인표는 헐리우드를 포기하고 감독이란 꿈을 선택했다. 프리랜서 조현지

얼마 전 차인표 씨의 소설 ‘오늘예보’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뭔가요?
“1998년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하던 시절 자전거 한 대를 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여의도까지 갔다 오면서 힘없이 있거나 울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IMF가 터진 직후 많은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였거든요.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 분들께 힘내라는 말 한 마디 해주고 피로회복제라도 하나 사주지 못했는지 후회되더라고요. 항상 살아오면서 매일 많은 사람들을 그냥 스쳐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분들께 미안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후배 탤런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연예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이잖아요. 그래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그 전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잘가요 언덕’을 썼는데요, 최근 영화 판권이 팔려 ‘팬 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화 중입니다.”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일단 내년 여름에 ‘헤븐퀘스트2’를 찍을 계획입니다. 또 ‘컴패션(Compassion)’을 설립한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확실히 제작한다고 말씀 못 드리는 이유는 지금 스완슨 목사의 유족 분들께 허락을 맡고 있기 때문이에요. 스완슨 목사는 1952년 한국에서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고아들을 살리기 위해 컴패션을 만드셨습니다. 목사님이 한국 고아들한테 건넨 하나의 손이 지금은 수백만 개의 손이 됐어요. 저는 영화를 통해 당신이 내민 하나의 손이 5~60년이 지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사실 이렇게 훌륭한 분의 이야기가 왜 여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이었어요. 생각해보니 금전적인 문제가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습니다. 만약 영화가 잘 되더라도 모든 이득은 컴패션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누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인생의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더군요.”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한국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컴패션을 설립했다. [사진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한국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컴패션을 설립했다. [사진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컴패션 홍보대사가 신애라 씨죠. 차인표 씨에게 부인 신애라 씨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내성적이고 제 아내는 외향적입니다. 저는 사람 많은 곳에 가거나 말을 많이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기를 빼앗기는데, 제 아내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많은 대화를 해야 에너지를 얻습니다. 한마디로 아내는 저와 정 반대의 성격이죠. 그러니 어찌 안 좋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못 갖춘 것, 저한테 없는 걸 제 아내가 다 갖추고 있으니 저한테 있는 것과 다름이 없죠. 부부는 일심동체요, 둘이 하나로 변한 주체니까요.
또 저는 아내에게 좋은 영향 많이 받았습니다. 입양도 결혼 하기 전에 아내가 꺼낸 얘기고요. 아내는 입양하기 전 약 2년 동안 매주 대한사회복지회에서 갔습니다. 아기에게 밥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안아주는 봉사활동을 한 후 입양했죠. 첫째 딸(예은이)의 입양이 우리 가정에게 주는 행복이 너무나 컸기에, 아내가 둘째 예진이를 또 입양하자고 했을 때 저는 무조건 동의했어요. 군대 문제도 아내(당시에는 여자친구)가 좋은 영향을 미친 사례입니다. 1994년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스타가 된 저는 군대를 갈지 미국으로 돌아갈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여인, 제 어머니와 신애라 씨 모두 군대를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줬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습니다.”  
신애라 씨는 지금 미국에 계시지요?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 보기엔 아이들 유학 시키려고 간 것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본인의 의지로 미국에 공부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 덕에 아이들이 따라가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거죠. 아내는 4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가정사역(Family Ministry)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약 1년 후면 박사 학위를 얻어 귀국할 겁니다. 어찌 보면 화려하고, 쉽게 돈 벌 수 있는 연기자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만학(晩學)을 위해 큰 결정을 한 아내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요.”
1995년 차인표와 신애라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였다. [중앙포토]

1995년 차인표와 신애라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였다. [중앙포토]

좋은 부인과 예쁜 자녀가 있고, 감독이라는 꿈까지 이루셨으니 매우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이별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사별이 힘들죠. 2013년 10월, 제 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려보려고 온 가족이 달려들어 노력했는데, 보내고 나니 많이 허망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온전히 동생을 위해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더군요. 좀 더 잘해줄 걸, 좀 더 사랑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생겼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님의 아픔을 보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들더군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천국에서 다시 만날 거라는 소망을 갖고 살아가지만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동생이 남기고 간 조카와 미망인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이 있기에, 저 역시 부르심을 받는 그 날까지 굳건히 잘 살아갈 생각입니다.”
100세 시대에서 이제 딱 절반을 지나 오셨습니다. 잘 산다는 건 뭘까요?
“인간의 삶에는 오늘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20년 후의 오늘을 저울에 달아봤을 때 그 무게는 같아요. 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너무 미래만 바라보고 행복을 쫓기 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 순간 만나는 사람한테 최선을 다하고 진실을 말해야 하며 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50년을 살아보니 사람이 늙을수록 평소에 생각하는 게 표정이나 행동에 다 나타나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그런 걸 가릴 수가 있는데 젊음이라는 장막이 벗겨지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젠다나 생각이 눈빛과 말 그리고 표정을 통해서 나타나요. 제 모습에는 좋은 것만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게 50번째 생일을 맞은 저의 각오에요. 선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세상을 위로하고 싶어요.”
인터뷰 당일 50번째 생일을 맞은 차인표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프리랜서 조현지

인터뷰 당일 50번째 생일을 맞은 차인표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프리랜서 조현지

20여 년 전 MBC 단막극 '하얀여로'를 봤다. 미군이 된 입양아(주인공)가 한국에 근무하면서 낳아준 부모님을 찾는 여정을 그린 드라마였다. 주인공은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그 신인 연기자의 눈빛이 참 오래도록 남았다.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긴 내용의 팬레터를 손수 적어 방송국으로 보냈다. 드라마를 시청한 소감과 함께 훌륭한 연기자의 길을 잘 걷기를 응원하는 메세지였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차인표 씨는 신인 시절의 눈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운명일까? 첫 단막극 주인공으로 ‘입양아’ 역할을 맡았고 지금은 실제로 2명의 딸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또 이번에 배우 겸 제작자로 참여한 ‘헤븐퀘스트’의 감독 맷 빌렌도 한국인 아이를 입양했다. 

항상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선하게 살고 싶다는 차인표 씨는 삶 자체가 이미 그렇게 점철돼 있었다.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명실상부한 스타로 자리매김 했지만 한결같은 모습으로 감동을 줬던 차인표. '진실'과 '겸손'의 사전적 의미와 동일한 배우, 감독 그리고 제작자 차인표 씨를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신기함이 함께했다. 기분이 좋았다.

배양숙 (사)서울인문포럼 이사장 betterlife65@daum.net
정리 = 장하니 인턴기자 chang.hany@joongang.co.kr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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