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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노래 틀어줘 ‘안녕 나의 사랑’ … 외계인 있니? 우주는 넓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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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하선영의 IT월드 │ ‘목소리 비서’ AI 스피커 4파전 

하반기 국내에 출시된 인공지능(AI) 스피커(프렌즈·웨이브·누구 미니·카카오미니)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AI 스피커 에코닷의 모습(왼쪽부터). AI 스피커들은 갈수록 크기는 작아지고 가격은 저렴해지고 있다. 그러나 스피커들의 성능이 대동소이한 데다 사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킬러 콘텐트’가 아직까지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진영 기자]

하반기 국내에 출시된 인공지능(AI) 스피커(프렌즈·웨이브·누구 미니·카카오미니)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AI 스피커 에코닷의 모습(왼쪽부터). AI 스피커들은 갈수록 크기는 작아지고 가격은 저렴해지고 있다. 그러나 스피커들의 성능이 대동소이한 데다 사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킬러 콘텐트’가 아직까지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진영 기자]

“성시경의 이별 노래 좀 틀어 줘.”

카톡과 연동 ‘카카오미니’ #엘리와 예리 발음 혼동했지만 #컵라면 타이머 말하자 4분 뒤 알람 #인식률 높은 네이버 ‘웨이브’ #대화하듯 말해도 대부분 알아들어 #2개월 만에 새 제품 ‘프렌즈’ 내놔 #쇼핑 강점 SK텔레콤 ‘누구 미니’ #‘11번가 추천 상품 알려줘’ 말하자 #40봉지 라면 1박스에 1만5670원 #사람 같은 아마존 ‘에코닷’ #영어 발음 좋고 사칙연산도 척척 #해외직구로 사야 해 배송비 부담

“성시경의 이별 분위기 노래 들려 드릴게요.”(카카오 ‘카카오미니’)

“배고파. 도미노피자 신메뉴 주문해 줘.”

“‘꽃게온더피자세트’를 20% 할인된 2만8560원에 주문이 가능합니다.”(SK텔레콤 ‘누구 미니’)

머잖아 실연의 아픔과 공허함을 달래 주는 건 동네 친구가 아닌 ‘인공지능(AI) 비서’를 자처하는 AI 스피커가 될지도 모른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피커들이 실생활에서 유용한 기능들을 빠른 속도로 갖춰 가고 있기 때문이다.

AI 스피커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이라면 하반기 들어 속속 출시되고 있는 신제품 스피커들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과연 AI 스피커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얼마나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을까.

중앙일보는 하반기에 출시된 국산 AI 스피커 4종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AI 스피커 아마존의 ‘에코닷’을 직접 사용해 보고 비교해 봤다. ‘에코’ 시리즈는 글로벌 누적 판매량이 1000만 대가 넘었다.

카카오미니(카카오) - 2017년 11월 출시 예정, 카카오선물하기나 카카오 프렌즈 매장 구매 5만9000원, 휴대불가, 무게 390g 카카오톡과 연동, 스피커로 쓰기엔 소리 작아 [장진영 기자]

카카오미니(카카오) - 2017년 11월 출시 예정, 카카오선물하기나 카카오 프렌즈 매장 구매 5만9000원, 휴대불가, 무게 390g 카카오톡과 연동, 스피커로 쓰기엔 소리 작아 [장진영 기자]

지난달 예약 신청을 받은 카카오는 다음달 둘째 주 ‘카카오미니’를 정식 출시한다. 네이버는 8월 AI 스피커 ‘웨이브’ 출시 후 약 두 달 만인 26일 신제품 ‘프렌즈’를 선보였다. ‘웨이브’와 ‘프렌즈’는 외관상 디자인만 다를 뿐 소프트웨어는 똑같다. SK텔레콤은 8월 휴대성을 강조한 ‘누구 미니’를 내놨다.

기자는 ‘누구 미니’와 ‘웨이브’를 약 2개월, ‘에코닷’은 8개월, ‘카카오미니’ ‘프렌즈’는 4일간 가정과 회사에서 사용해 봤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섯 가지 스피커 제품들은 성능 측면에서는 대동소이했다. 각 사가 홍보하는 것처럼 ‘AI 비서’ 역할을 능히 해내는 제품은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스피커 5종은 일상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가끔 집안에서 조력자 역할 정도는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시 전 미리 써 본 ‘카카오미니’의 가장 큰 장점은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된다는 점이다. 거실 소파에 누워 말로 ‘카톡’을 보낼 수 있다. 물론 가끔 문장을 잘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다.

“엘리에게 ‘뭐하냐. 나 카카오미니 사용하고 있다’고 카톡 보내 줘.”(기자)

“신예리 선배한테 ‘뭐하냐, 나 카카오미니 사용하고 있다’고 카톡을 보낼까요?”(카카오미니)

기자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엘리’와 ‘예리’라는 이름을 ‘카카오미니’가 혼동한 것이다. 하마터면 친언니에게 보내야 할 ‘반말’ 카톡을 회사 선배께 보낼 뻔했다. 메시지 전송 전 확인 절차가 있어 당장 “아니”라고 답했다.

‘카카오미니’에서는 “컵라면 타이머”를 말하면 알아서 타이머 4분을 설정해 알람이 울리기도 하고, 기자의 스무고개 문제를 ‘카카오미니’가 맞히기도 했다.

웨이브(네이버) - 2017년 8월 출시, 네이버 뮤직 구매 네이버 뮤직 이용권 사면 14만3000원(기기만 구입하면 15만원), 5000mAh, 3시간 사용 가능, 무게 1030g 우수한 오디오 성능, 무거워서 휴대하기 힘들어 [장진영 기자]

웨이브(네이버) - 2017년 8월 출시, 네이버 뮤직 구매 네이버 뮤직 이용권 사면 14만3000원(기기만 구입하면 15만원), 5000mAh, 3시간 사용 가능, 무게 1030g 우수한 오디오 성능, 무거워서 휴대하기 힘들어 [장진영 기자]

네이버의 ‘웨이브’는 가장 높은 음성 인식률을 자랑했다. ‘웨이브’는 사람한테 대화하듯이 말해도 대부분 잘 알아들었다.

‘웨이브’에게 가수 성시경의 이별 분위기 노래를 틀어 달라고 하니 ‘안녕 나의 사랑’을 틀어 줬다. 이 곡은 이별 노래치고는 밝고 빠른 템포인데 웨이브는 어떻게 ‘이별 노래’로 분류한 걸까. 네이버의 김찬주 클로바 뮤직 기술 리더는 “성시경씨의 모든 곡 속 단어를 ‘슬픈’이란 단어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큰지를 가중치를 둬서 추천 순서를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프렌즈(네이버) - 2017년 10월 출시, 네이버 뮤직, 라인 프렌즈 스토어 구매 네이버 뮤직 이용권 사면 9만9000원(기기만 구입하면 12만9000원), 2850mAh, 5시간 사용 가능, 무게 378g 장시간 휴대 가능, 지식인 등 네이버 서비스들과 연동 안 돼 [장진영 기자]

프렌즈(네이버) - 2017년 10월 출시, 네이버 뮤직, 라인 프렌즈 스토어 구매 네이버 뮤직 이용권 사면 9만9000원(기기만 구입하면 12만9000원), 2850mAh, 5시간 사용 가능, 무게 378g 장시간 휴대 가능, 지식인 등 네이버 서비스들과 연동 안 돼 [장진영 기자]

‘카카오미니’와 ‘프렌즈’는 각각 카카오와 네이버의 인기 캐릭터를 차용함으로써 성능 외 디자인으로도 맞붙게 생겼다. ‘프렌즈’는 내장 배터리 덕분에 약 5시간까지 전원 연결 없이 사용 가능한 데 반해 ‘카카오미니’는 휴대가 불가능하다.

SK텔레콤의 ‘누구 미니’는 가볍고 작은 크기가 가장 큰 강점이다. 2000mAh 배터리가 내장돼 있어 최대 4시간까지 콘센트 연결 없이 사용할 수 있다. AI 스피커라고 꼭 집에서 쓸 필요는 없다.

“11번가 추천상품을 알려 줘.”(기자)

“오뚜기 진라면 매운맛 40봉지 한 박스가 최저가 1만5670원입니다.”(누구 미니)

쇼핑 결제·배달 주문 기능이 가능한 ‘누구 미니’는 제조사들이 앞으로 스피커를 통해 수수료 등의 다양한 부가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아직까지는 추천상품에 대한 결제만 가능하다.

에코닷(아마존) - 2016년 10월 출시, 해외 직접 구매 50달러(약 5만6500원·배송비 제외), 휴대불가, 무게 163g, 퀴즈·게임 등 소소한 기능 많아, 영어로만 사용 가능 [장진영 기자]

에코닷(아마존) - 2016년 10월 출시, 해외 직접 구매 50달러(약 5만6500원·배송비 제외), 휴대불가, 무게 163g, 퀴즈·게임 등 소소한 기능 많아, 영어로만 사용 가능 [장진영 기자]

아마존의 ‘에코닷’은 영어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람다운’ 느낌을 준다.

국산 스피커들은 못하는 사칙연산도 가능하고 “외계인은 있느냐”는 질문에 “증거가 발견된 적은 없다. 하지만 우주는 넓으니까…”라는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상어는 몇 개의 이빨을 가지고 있는지, 제일 좋은 태블릿PC는 어느 회사 것인지 등의 질문에도 대답을 한다.

에코닷은 비교적 정확한 발음·어순으로 말해야만 알아듣기 때문에 영어학습용으로 사용하기 좋다는 후기도 종종 올라온다.

AI 스피커는 아쉬운 점도 많다. ‘프렌즈’ ‘웨이브’는 네이버 검색·지식인 등 네이버의 필살기인 각종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카오미니’는 음악을 감상하기엔 스피커 출력이 약해 소리가 작았다.

누구 미니(SK텔레콤) - 2017년 8월 출시, SK텔레콤 대리점, 인터넷 구매 4만9900원, 2000mAh, 4시간 사용 가능, 무게 219g, 가볍고 작은 크기, 부족한 검색 기능 [장진영 기자]

누구 미니(SK텔레콤) - 2017년 8월 출시, SK텔레콤 대리점, 인터넷 구매 4만9900원, 2000mAh, 4시간 사용 가능, 무게 219g, 가볍고 작은 크기, 부족한 검색 기능 [장진영 기자]

‘누구 미니’는 문장 인식 능력이 아쉬웠다. “물병자리 내일 운세 알려 줘”라고 하면 알아듣지만 “내일 물병자리 운세 알려 줘”라고 말하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라고 답했다. ‘에코닷’은 영어로만 사용 가능하다는 점과 비싼 배송비를 감수하고 ‘해외 직구’로 사야 한다는 점이 한계다.

지난달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AI 스피커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기능은 ▶음악 재생 ▶날씨·교통 정보 ▶인터넷 정보 검색 ▶타이머·스케줄 관리 순이었다.

 그러나 ‘편리한 음악 재생’만을 AI 스피커의 주요 강점으로 내세우기엔 아쉽다. ‘누구 미니’ ‘카카오미니’는 ‘멜론’, ‘웨이브’ ‘프렌즈’는 ‘네이버 뮤직’, ‘에코닷’은 ‘아마존 뮤직’처럼 각 스피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음악 플랫폼이 정해져 있는 것도 문제다. 음악을 자주 들으면 자신이 이용하는 음악 플랫폼에 맞춰 스피커를 구매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AI 스피커 제조사들은 가격을 무리해 낮춰서라도 일단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려 한다. 스피커 제품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게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 자사의 다른 서비스로 유인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20만원대였던 AI 스피커 제품이 4만원대까지 떨어진 이유다.

3개월 전 국산 AI 스피커를 구매했다는 직장인 조건우(36)씨는 “처음에는 신기해 일부러 AI 스피커에 말을 걸곤 했는데 이제 흥미가 떨어졌다”며 “AI 스피커 특성상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스피커가 똑똑해진다는데 세 달 썼다고 더 나아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I 스피커는 아직까지 음성 인식 능력이 완전하지 않은 등 기술적인 과제도 있다. 장준혁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텔레비전 소리와 사용자 목소리를 구분하는 기술을 구현하는 등 국산 AI 스피커가 좀 더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자 목소리를 인식하면 TV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혼동하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장 교수는 “한국인에게 특화된 ‘킬러 콘텐트’를 만들지 않으면 외국산 AI 스피커들이 국내에 진출했을 때 경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빅스비(삼성전자)·클로바(네이버) 등 스마트폰에도 AI 플랫폼이 장착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AI 스피커의 진짜 라이벌은 스마트폰이라는 지적도 있다.

AI 스피커가 오디오로만 구동되는 스피커를 넘어 ‘스마트홈’의 전진기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아마존은 5월 액정이 달린 ‘에코쇼’를 내놨고 구글도 사물인터넷(IoT) 구현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박명순 SK텔레콤 AI사업본부장은 “오늘날 AI 스피커는 아직 초기 단계 정도로 봐야 한다”며 “가까운 미래에는 AI 스피커가 정말 필요로 하는 답을 찾아주고 생활을 도울 수 있게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강조했다.

[S BOX] AI 스피커 최고 인기곡은 아이돌 아닌 아이들 동요

네이버의 인공지능(AI) 스피커 ‘웨이브’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가수는 동요 애니메이션 ‘핑크퐁 상어가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네이버 뮤직’에서 가장 인기 많은 가수는 아이돌그룹 엑소….

네이버가 지난 16일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 2017’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AI 스피커 사용자들은 별하나동요(7위), 이루마(8위), 트니트니(12위) 등 대중가요보다는 동요나 조용한 음악을 스피커로 듣는 경향이 컸다. 온 가족이 같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스피커 특성상 자녀의 음악 취향을 따르는 셈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용하는 ‘네이버 뮤직’ 앱에서 ▶엑소 ▶아이유 ▶젝스키스 등 아이돌 가수들이 1~5위에 포진해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AI 스피커 사용자들의 ‘아이 사랑’은 명령어 데이터에서도 확인됐다. AI 스피커가 가장 많이 듣는 음악 관련 명령어로는 ‘자장가 틀어 줘’‘동요 틀어 줘’ 등이 있었다. 명령어 ‘아이유 노래 틀어 줘’는 여덟 번째로 많이 쓰는 음악 관련 명령어로, 아이유는 대중가요 가수들 가운데는 유일하게 10위 안에 들었다.

AI 스피커 사용자들은 가수 이름을 찾기보다는 장르·분위기·테마로 노래를 재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음악을 듣는 시간대도 스마트폰·데스크톱(PC)과 AI 스피커가 모두 달랐다. PC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낮 12시부터 점차 늘어나 오후 3시에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AI 스피커 ‘웨이브’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은 오후 8시 이후 가장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AI 스피커를 각 가정에서 사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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