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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기자의 心스틸러]코미디 처음 맞아요? '복수자들' 이요원

중앙일보

입력

같은 동네에 살지만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던 대학 교수 부인 명세빈과 재벌가 며느리 이요원, 생선장수 라미란이 모여 복수를 도모하는 이야기를 그린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사진 tvN]

같은 동네에 살지만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던 대학 교수 부인 명세빈과 재벌가 며느리 이요원, 생선장수 라미란이 모여 복수를 도모하는 이야기를 그린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 [사진 tvN]

지금 가장 시청률 전쟁이 치열한 시간대는 언제일까. 바로 수목드라마가 방송되는 오후 10시다. 놀랍게도 동시간대 방영되는 4개 드라마의 시청률은 모두 한 자릿수다.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8.9%, 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를 선두로 MBC ‘병원선’(8.4%), KBS2 ‘매드독’(5.7%)까지 모두 고만고만하다.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tvN ‘부암동 복수자들’(5.1%). 40대 시청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단 1%가 아쉬운 상황에서 치열한 접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수목극 '부암동 복수자들'서 복자클럽 이끌어 #명세빈 아역으로 출발, 라미란과 환상 호흡 #도도함 무장한 재벌가 사모님에 신선함 더해 #'환상의 커플' 한예슬 잇는 로코녀 탄생할까

재벌가 며느리 김정혜(이요원 분)를 필두로 재래시장 생선 장수 홍도희(라미란 분)와 대학교수 부인 이미숙(명세빈 분) 등 세 사람이 모여 ‘부암동 복수자 소셜 클럽(복자 클럽)’을 결성하는 이야기를 축으로 하는 ‘부암동 복수자들’에선 여러 드라마가 보인다. 건강상의 이유로 4회를 끝으로 하차했지만 이 드라마의 기획자이자 연출자인 권석장 PD의 ‘결혼하고 싶은 여자’(2004)와 바통을 이어받아 메가폰을 잡은 김상호 PD의 ‘환상의 커플’(2006)이 혼재한달까. 둘 다 로맨틱 코미디로는 정평을 얻은 작품이다. 거기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품위있는 그녀’까지 더해져 재벌가 복수담의 코믹 버전 같은 느낌이다.

극중 재벌가 며느리인 이요원은 난생처음 찜질방에 가서 뜨뜻한 장판의 매력에 푹 빠진다.[사진 tvN]

극중 재벌가 며느리인 이요원은 난생처음 찜질방에 가서 뜨뜻한 장판의 매력에 푹 빠진다.[사진 tvN]

13년 전 ‘결혼하고 싶은 여자’ 3명에서 당찬 여기자 이신영 역을 맡은 명세빈이 주축을 담당했다면 이번에는 모델 출신으로 영화 ‘남자의 향기’(1998)에서 명세빈의 아역으로 데뷔한 이요원(37)이 그 역할을 맡았다. 실제 나이는 5살 차이에 불과하지만 참하고 단아한 이미지의 명세빈과 보다 도도하고 도회적인 이미지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주로 맡아온 이요원이 20여년 만에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13년이란 세월이 흐른 만큼 극중 이들은 모두 꿈에 그리던 결혼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나 술만 마시면 때리는 남편이 밉기는 매한가지요, 남편 죽고 자식만 남은 상황에서 학교만 갔다 오면 괴롭힘을 당하고 오는 아들딸은 서러움을 더하는 탓이다.

그중에서도 이요원의 연기는 극에 생동감을 더한다. ‘선덕여왕’(2009)과 전작 ‘불야성’(2016)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재벌집 사모님부터 진짜 여왕까지 다양한 고고함을 선보였지만 이번엔 ‘환상의 커플’의 한예슬처럼 코믹함이 더해졌다. 가진 게 돈밖에 없는 귀한 집 막내딸이지만 처음 먹어본 소주와 라면에 열광하고, 처음 경험한 찜질방 구들장과 사랑에 빠져 집으로 떼어가고 싶어하는 모습은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세상의 모든 게 신기한 사모님 눈엔 시장에서 먹는 다방 커피가 5만원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 새삼 우리 주위에 당연한 것처럼 놓여진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불야성'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도도한 재벌가 사모님 역할을 소화해온 배우 이요원. [사진 MBC]

'불야성'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도도한 재벌가 사모님 역할을 소화해온 배우 이요원. [사진 MBC]

이요원은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예전의 도도함에 코믹함을 더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tvN]

이요원은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예전의 도도함에 코믹함을 더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tvN]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함께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혼외자로서 엄마를 엄마로 부르지 못하고 언니를 언니로 부르지 못하며 자란 그는 집안에서는 차갑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마음껏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복자클럽 멤버들을 만나면 온몸을 휘감던 차가움이 무장해제되고 와인잔에 소주를 따라마시며 기뻐한다. 후계자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남편이 밖에서 데려온 고3 아들 이수겸(이준영 분)에게는 야속하지만 원망하지 않는 의외의 성숙함을 보인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대한 동질감과 혼외자로 태어난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뒤섞여 묘한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다. 더구나 이준영은 아이돌 그룹 유키스 준의 첫 연기 도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능청스럽게 받아낸다.

이들이 함께 모의하는 생활밀착형 복수도 극에 대한 몰입감을 높인다. ‘품위있는 그녀’의 김선아처럼 몇십 년을 준비한 치밀한 복수는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지만, 커피숍에서 알바생에게 무례하게 구는 아저씨에게 화장실 너머로 물을 끼얹는 정도의 귀여운 복수는 도전해볼 만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철없지만 무대포인 이요원과 생활감 넘치는 라미란과 얌전하지만 한방이 있는 명세빈에 행동대장 이준영이 모인 시너지가 더해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야심차게 꾸민 복수극인 실패해도 시청률은 되려 상승곡선인 것도 이 때문 아닐까.

다만 쓸데없이 늘어지는 장면들은 아쉽다. 1~2회에서 시청자들이 집중하지 못한 이유 역시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과도하게 길어지면서 그래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작인 웹툰에 등장하는 소소한 복수들을 더 많이 실행에 옮기고 물 오른 캐릭터가 제대로 헤엄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벌써 12부작 중 절반이 지난 상태니 말이다. 연기도 잘하고 작품보는 안목도 좋지만 유독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요원에게 심스틸러로 거듭날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해 본다.

민 기자의 心스틸러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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