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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국에서 유독 미약한 #미투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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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뉴욕타임스(NYT)의 다채로운 e메일 뉴스레터 서비스 중 백미는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것(What We’re Reading)’ 시리즈다. 제목 그대로 NYT 기자들이 요즘 자신들이 인상 깊게 접한 콘텐트를 소개한다. 자사 콘텐트만 셀프 추천하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자기 독자들에게 “우리가 쓴 것만 읽지 말고 다른 훌륭한 콘텐트도 보세요”라고 골라주는 거다. NYT와 같은 이념 스펙트럼의 콘텐트만 선정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더 흥미롭다. 소위 ‘NYT스러움’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특성을 벗어난 매체에서 생산한 콘텐트도 등장시킨다. 독자들의 확증 편향성, 즉 읽고 싶어하는 것만 읽는 경향도 줄여 주는 기능도 갖춘 장치인 셈이다.

지난 24일 도착한 뉴스레터도 그랬다. NYT에서 라이브 저널리즘을 담당하는 제니퍼 슈타인하워 에디터는 더 데일리 시그널이라는 매체의 기사를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주류 언론사들이 잘못된 소문을 보도하고 있다”며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출범시킨 온라인 매체다. NYT를 비판하기 위해 출범한 매체의 콘텐트를 NYT가 소개한 것이다. 슈타인하워 에디터가 선정한 글은 최근 미국을 강타한 #미투 캠페인을 다뤘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스캔들이 터지자 여성들이 #미투(MeToo)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의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캠페인이다. 슈타인하워 에디터는 “미투 캠페인의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정치색을 뛰어넘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미투 캠페인의 힘은 실로 놀랍다. 이념 스펙트럼뿐 아니라 국경도 넘었다. 스웨덴에서도 지난 22일(현지시간) 미투 캠페인 지지자 1000여 명이 집회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 캐나다에서도 11월 4일 미투 캠페인 지지 행진이 예정돼 있다.

집회 문화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은 정작 조용한 편. 일부 여성 단체의 움직임은 전국적 세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워낙 양성 평등이 뛰어나고 성폭행 피해자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자기의 경험을 실명으로 표명하는 게 여전히 금기이기 때문이다. 촛불로 정권까지 교체해 낸 한국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미투 캠페인을 보는 건 그래서 더 답답하다.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