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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피난민 제2의 고향 속초 아바이마을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속초 아바이마을. 박진호 기자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속초 아바이마을. 박진호 기자

“금방 고향에 갈 수 있을 줄 알고 배타기 좋은 곳에 짐을 풀었는데….”

아바이마을 함경도 주민들 모여 사는 국내 유일 실향민 집단정착촌 #아바이순대와 가자미식해·함경도식 냉면 다양한 음식 맛볼 수 있어 #드라마 가을동화·1박 2일 등 방송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로 북적 #200원으로 아바이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 갈 수 있는 갯배도 유명

지난 17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한 음식점.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할머니가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인 김춘섭(88·여)할머니는 1·4 후퇴 때 거제도까지 피난을 갔다가 국군이 북진하는 시기에 배를 타고 속초까지 올라왔다.

당시 국군과 인민군이 남북으로 진퇴를 거듭하던 상황이라 이곳에 잠시 짐을 풀었다. 김 할머니는 곧 고향에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하지만 53년 정전협정으로 38선이 그어지면서 귀향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속초 아바이마을. 박진호 기자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속초 아바이마을. 박진호 기자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맛 볼 수 있는 순댓국과 오징어순대, 함경도식 냉면. 박진호 기자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맛 볼 수 있는 순댓국과 오징어순대, 함경도식 냉면. 박진호 기자

김 할머니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며칠간 노를 저어 속초까지 힘들게 왔는데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며 “고향 땅에 있는 언니와 동생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김 할머니와 같이 북쪽 고향에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실향민과 그들의 후손이 모여 사는 곳으로 국내에서 유일한 실향민 집단정착촌이다.

이곳이 아바이마을이라 불리는 것은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 많아서다. 아바이란 함경도 사투리로 보통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한다.

이곳엔 20여 개의 음식점 등이 있어 다양한 종류의 함경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함경도식 냉면·순댓국·가자미식해 등 다양한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속초 아바이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연결하는 갯배. 박진호 기자

속초 아바이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연결하는 갯배. 박진호 기자

성인기준 200원만 내면 탈 수 있는 갯배. 사람이 직접 줄을 당겨 이동한다. 박진호 기자

성인기준 200원만 내면 탈 수 있는 갯배. 사람이 직접 줄을 당겨 이동한다. 박진호 기자

지금은 오징어순대와 아바이순대가 속초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 됐지만 원래는 함경도지방의 고유음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속초에 정착한 실향민에 의해 속초의 대표 향토 음식으로 거듭났다.

밥도둑이라 불리는 가자미식해의 생산지가 된 것도 함경도 피난민이 속초에 정착한 후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한 집 두 집 담가 먹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이다.

10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해 온 박요섭(65)씨는 “주말이면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 등을 먹기 위해 100팀 넘게 손님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속초 아바이마을 상징 조형물. 동상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고향 생각에 눈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박진호 기자

속초 아바이마을 상징 조형물. 동상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고향 생각에 눈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박진호 기자

속초 아바이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연결하는 갯배. 박진호 기자

속초 아바이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연결하는 갯배. 박진호 기자

아바이마을은 2000년 방영된 KBS TV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어린 여주인공의 집 ‘은서네집’과 사람이 직접 끄는 ‘갯배’가 방송을 타면서 명성을 크게 얻었다.

여기에다 2010년에는 KBS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 소개되면서 지금도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붐빈다.

인천에서 온 안유선(61·여)씨는 “평소 맛볼 수 없는 함경도 음식을 맛볼 수 있고 가까운 곳에 관광지가 몰려있어 이동도 편해 좋았다”고 말했다.

갯배는 청호동의 상징과도 같은 독특한 교통수단이다. 갯배는 일제강점기에 속초항 개발의 필요성을 피력하던 일제가 항만을 건설하면서 청초호를 속초항의 내항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바다에서 청초호로 연결되던 물길을 넓히고 바닥을 준설했다. 이 과정에서 폭이 100m에 달하는 수로가 생겼고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수로를 가로지르는 배를 두게 됐다. 당시의 배는 한국 전쟁 때 소실됐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두 척의 갯배는 1998년에 제작한 것으로 승선 가능인원은 35명이다. 갯배는 아바이마을과 속초 중심가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성인 기준 200원(편도)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이후 관광객으로 붐비는 속초관광수산시장. 박진호 기자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이후 관광객으로 붐비는 속초관광수산시장. 박진호 기자

속초관광수산시장에 가면 맛 볼 수 있는 음식들. 중앙포토

속초관광수산시장에 가면 맛 볼 수 있는 음식들. 중앙포토

아바이마을 주변엔 볼거리도 다양하다. 갯배타고 아바이마을을 나가면 속초의 유일한 전통시장인 속초관광수산시장이 나온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의 과거 이름은 속초 중앙시장이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를 비롯해 다양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 1980년대까지 크게 번성했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대형마트 등이 등장하면서 전통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이후 2006년부터 시장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고 이름이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활력을 되찾았다.

최근에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주말이면 시장 전체가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의 면적은 9420㎡로 점포 수가 500여개에 이른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아바이마을은 속초관광수산시장과 함께 속초를 대표하는 관광지”라며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이후에 수도권과 가까워지면서 점점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속초=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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