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곰돌이 푸' 그린 65년 차 노장 애니메이터가 말하는 디즈니의 저력

중앙일보

입력

BIAF 찾은 디즈니 거장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 & 에릭 골드버그 사진=강경희(STUDIO 706)

BIAF 찾은 디즈니 거장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 & 에릭 골드버그 사진=강경희(STUDIO 706)

 [매거진M]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10월 20일~24일, 이하 BIAF 2017)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마스터 클래스 <디즈니 파트 1, 파트 2>’다. 이를 위해 월트디즈니(이하 디즈니)에서 64년간 몸담고 있는 버니 매틴슨(82)과 ‘알라딘’(1992, 존 머스커·론 클레멘츠 감독) 등 여러 디즈니 작품에 참여한 에릭 골드버그(62)가 부천을 찾았다. 평생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두 노장은 푸근하고 해맑은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견고한 꿈의 공장 디즈니가 긴 시간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인 비결은 뭘까. 살아 있는 두 전설에게 들었다.

BIAF 2017 찾은 디즈니 거장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 & 에릭 골드버그 인터뷰



━BIAF 2017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에릭 골드버그(이하 골드버그) "2012년 BIAF가 PISAF(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였을 때,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그 후 김성일 프로그래머와 돈독하게 지냈죠. 지난해 그가 미국 LA로 출장 왔을 때 우리 집에 머물며, 디즈니 클래식 작품을 관한 강연을 제안했습니다. 여기에 제 아내 수잔이 버니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죠. 디즈니 클래식 작품 설명에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라면서(웃음).”

━매틴슨 감독님은 열여덟 살에 디즈니에 들어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감독, 프로듀서 등 다양한 일을 하셨다고요.
버니 매틴슨(이하 매틴슨) "맞아요. 사실 디즈니는 한 사람이 많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닙니다. 어린 시절 ‘피노키오’(1940, 벤 샤프스틴·해밀턴 러스크 감독)를 보고 그림에 생명이 깃든 듯해 큰 감명을 받고 입사했어요. 처음엔 사내 편지를 관리하는 ‘메일 룸 보이’였죠. 당시엔 월트 디즈니가 아끼는 수석 애니메이터 ‘나인 올드맨’(Disney 9 old man)이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조수 역할뿐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유리천장이랄까. 보조 애니메이터로 오래 일한 후, 애니메이터가 됐죠. 일을 할수록 애니메이션을 향한 애정이 더 깊어졌어요. 작품의 질을 더 향상시키고 싶었고, 맞닥뜨린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즐거웠거든.”

월트 디즈니

월트 디즈니

━월트 디즈니에 관한 전설 같은 일화가 많은데요. 어떤 분이었나요.
매틴슨 "한 작품의 플롯·그림체·색감부터 디즈니랜드 같은 사업까지 모든 걸 직접 결정하는 리더였죠. 존재감이 아주 대단해서 회사 어디에서도 그가 나타나면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출 정도였어요. 애니메이터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 무리를 해서라도 그에게 인정받으려 했지. 개인적으론 막 입사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기억이 나네요. 깍듯하게 “안녕하세요, 디즈니씨”라고 인사했더니, “그냥 월터라고 해”라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웃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어린이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책임을 느끼실 것 같은데요. 좋은 이야기에 관한 디즈니의 원칙이 있다면요.
골드버그 "먼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긍정적인 주제가 뚜렷하게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녀와 야수’(1991, 게리 트러스데일·커크 와이즈 감독)는 ‘겉만 보고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 ‘알라딘’은 ‘지금 있는 모습에 자신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죠. 한 작품의 목표점이랄까요. 둘째는 어떤 관객도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주제를 관객이 마음으로 느끼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곱씹을 수 있게요.”

영화 &#39;모아나&#39;의 한 장면.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영화 &#39;모아나&#39;의 한 장면.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요즘은 수작업보다는 디지털 작업을 더 많이 합니다. 디즈니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매틴슨 "사실 디즈니에선 젊은 애니메이터도 이전 세대와 똑같이, 클래식 작품을 기본 자료로 공부하고 훈련합니다. 표현하는 도구만 손에서 컴퓨터로 바뀌었을 뿐이지, 작품에 깃든 정수나 캐릭터의 움직임 방식 등 핵심 요소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이 점이 현재까지 디즈니 작품이 꾸준히 흥행하는 저력일까요.
매틴슨"그렇죠. 또 항상 최고를 고집하는 태도,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는 정신도 큰 몫을 합니다.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고 혹은 해 온 모든 작업을 갈아엎더라도 가장 이상적인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것. 디즈니엔 이런 완벽주의 문화가 있어요. 그리고 모두를 위한 엔터테인먼트를 만든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든 관객이 즐길 만한 요소를 최대한 넣는 겁니다. 이건 월트 디즈니가 생전에 애니메이터들에게 강조해 온, 지금도 디즈니가 중요시하는 방향이지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을까요?
골드버그 "(일동 웃음) 버니, 내가 대답해도 괜찮겠죠(웃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를 한 인격체로 그리는 겁니다. 그림체와 움직임, 리듬을 통해 영상만 보고도 어떤 인물인지 드러나야 해요. 예를 들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 데이비드 핸드 감독)의 난쟁이들의 생김새는 다 똑같지만, 걸음걸이·입모양·손짓으로 캐릭터를 구별할 수 있잖아요. 이런 드로잉 콘셉트를 결정하면 기술적인 부분은 쉽게 보완할 수 있어요.”

&#39;알라딘&#39;의 지니.

&#39;알라딘&#39;의 지니.

━두 분이 처음 함께한 작업이 ‘알라딘’이었죠?
골드버그 "맞아요. 당시 버니가 그린 스토리보드를 처음 보고 아주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니가 자파의 마법에 걸려 나쁜 짓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어두운 분위기를 잘 살렸을 뿐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는 지니의 속내까지 담아냈더군요. ‘이 사람 누구야? 나 당장 만나봐야겠어!’라며 바로 찾아갔어요(웃음).”

매틴슨 "에릭은 지니의 캐릭터를 디자인했는데, 지니가 첫 등장하는 대목의 초벌 작업을 보고 ‘어떻게 저 짧은 분량에 캐릭터의 모든 특징을 채워 넣을 수가 있지?’라며 혀를 내둘렀어요. 지니만큼 존재감이 큰 조연 캐릭터는 많지 않죠.”

&#39;환타지아 2000&#39;

&#39;환타지아 2000&#39;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요.
매틴슨 "처음 연출을 맡은 단편 ‘믹키의 크리스마스 캐롤’(1983). 스토리보드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했거든. 이 작업은 연출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면의 핵심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에요.”

골드버그 "버니의 스토리보드와 최종 결과물을 비교해 보면 무슨 말인지 와닿을 거예요. 나는 옴니버스 ‘환타지아 2000’를 꼽고 싶네요. 이 작품의 ‘랩소디 인 블루’와 ‘요요를 하는 홍학’을 아내 수잔과 함께 작업했는데, 제28회 애니상에서 상을 받았어요 무척 기뻤어요.”

애니메이터 에릭 골드버그 & 버니 매틴슨 소개 

에릭 골드버그

디즈니에서 맨 처음 만든 캐릭터 지니를 그리는 에릭 골드버그. ’지니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수없이 그렸지만, 그릴 때마다 기분 좋다.“ 사진=김나현 기자

디즈니에서 맨 처음 만든 캐릭터 지니를 그리는 에릭 골드버그. ’지니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수없이 그렸지만, 그릴 때마다 기분 좋다.“ 사진=김나현 기자

버니 매틴슨 & 에릭 골드버그 사진=김나현 기자

버니 매틴슨 & 에릭 골드버그 사진=김나현 기자

1977년 리처드 윌리엄스의 스튜디오의 ‘누더기 앤과 앤디의 모험’(1977) 보조 애니메이터
1992년 ‘알라딘’ 캐릭터 애니메이터
1997년 ‘헤라클래스’(1997) 캐릭터 애니메이터
1999년 ‘환타지아 2000’(1999) 감독 및 애니메이터, ‘쿠스코? 쿠스코!’(2000) 등 애니메이터
이후 ‘루니 툰:백 인 액션’(2003) 애니메이션 감독,
‘곰돌이 푸’(2011) ‘모아나’(2016) 등 애니메이터로 활동.

버니 매틴슨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푸를 그리는 버니 매틴슨. ’나를 닮아서 제일 좋아한다. 목도 안 돌아갈 만큼 뚱뚱한 푸(웃음). 사진=김나현 기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푸를 그리는 버니 매틴슨. ’나를 닮아서 제일 좋아한다. 목도 안 돌아갈 만큼 뚱뚱한 푸(웃음). 사진=김나현 기자

 사진=김나현 기자

사진=김나현 기자

1953년 디즈니 입사
1955~1970년 ‘레이디와 트램프’(1955) ‘잠자는 숲속의 공주’(1959), ‘101마리의 달마시안’(1961) 등 보조 애니메이터
1973년 ‘로빈 후드’(1973) 캐릭터 애니메이터
이후 ‘곰돌이 푸의 모험’(1977) 등의 애니메이터와‘미녀와 야수’‘라이온 킹’(1994) ‘뮬란’(1998) ‘타잔’(1999) 등의 작가, ‘빅 히어로’(2014)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활동.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강경희(STUDIO 706)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