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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존엄사 선택 말기암 환자, 합법화 이후 처음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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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 환자가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환자가 존엄사를 택하게 되면 인공호흡기 사용,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할 수 있게 된다. [중앙포토]

한 환자가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환자가 존엄사를 택하게 되면 인공호흡기 사용,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할 수 있게 된다. [중앙포토]

연명의료 중단이 합법화된 후 처음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환자가 나왔다. 또 임종 상황에 닥쳤을 때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37명으로 집계됐다.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해 첫 등록 #심폐소생술·항암제투여 등 안 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37명 작성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하 국생원)은 24일 “연명의료계획서 시범사업기관 한 곳에 입원 치료 중인 여성 암 환자가 이 서류를 작성해 국생원에 등록했다”고 밝혔다. 이 환자는 평소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을 해 왔고, 23일 연명의료 중단 시범사업이 시작되자마자 의료진에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환자의 뜻을 받들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문서다. 의사가 환자를 설득해 작성을 요청할 수도, 반대로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첫 사례자는 환자가 요청한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환자가 임종 과정에 접어들 때 연명의료 행위를 시행하지 않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중앙포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환자가 임종 과정에 접어들 때 연명의료 행위를 시행하지 않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중앙포토]

의료진은 환자에게 ▶질병 상태와 치료 방법 ▶연명의료 (중단) 시행방법 ▶연명의료계획서 변경·철회 절차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등록·보관·통보 절차 ▶호스피스 이용 등을 설명했다. 이를 이해한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고 의료진이 최종적으로 서명해 국생원에 제출했다. 국생원은 정부의 위임을 받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다. 이 환자는 말기에 가까운 암 환자이며 의식이 뚜렷한 상태라고 한다.

이 환자가 임종 과정에 접어들 때 계획서에 따라 의료진은 연명의료 행위를 시행하지 않게 되고 환자는 편안한 임종을 맞게 된다. 임종 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존엄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 [자료 보건복지부]

존엄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 [자료 보건복지부]

연명의료 중단이란 임종 단계에 진입한 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행위를 하지 않는 걸 말한다. 첫 사례자는 연명의료계획서에 이 네 가지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체크했다. 또 사망 전 열람을 허용하겠다고 체크했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물·영양 등은 반드시 공급해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해 공포됐다. 호스피스는 지난 8월 시행됐고 연명의료 중단은 준비를 위해 내년 2월 시행하기로 늦춰졌다. 워낙 복잡한 제도이다 보니 정부가 시행 4개월여를 앞두고 10개 기관을 지정해 23일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성모·고대구로·서울대·세브란스·영남대·울산대·충남대·강원대병원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등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 기간에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도 법적인 효력을 지닌다.

존엄사 시범사업 실시 첫날인 23일 서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상담실에서 한 노부부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존엄사 시범사업 실시 첫날인 23일 서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상담실에서 한 노부부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복지부와 국생원은 23~24일 37명이 사전의향서를 작성해 국생원에 등록했다고 밝혔다. 시범사업 첫날인 23일 15명이었고, 24일에는 22명으로 늘었다. 사전의향서는 주로 건강할 때 작성한다. 임종 과정에 접어들면 언제 어디서나 의료진이 이 의향서를 열람해 환자의 뜻대로 존엄사를 돕게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나 임종 과정의 환자가 작성하게 돼 있다.

복지부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현황을 일일이 알리지 않고 다음달 중 중간 보고서 형태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 때 대법원이 연명의료 중단을 판결한 이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지난해 2월 제정됐다.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20년의 사회적 갈등 끝에 연명의료 중단이 합법화됐다.

◆연명의료계획서

말기거나 임종을 앞둔 환자의 뜻을 반영해 의사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나 호스피스에 대한 계획을 기재하는 문서. 환자의 의사 표현이 가능할 때만 작성할 수 있다. 시범기간 중 작성한 서식도 내년 2월 등록시스템에 정식 등재되며 법적 유효성을 인정받는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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