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목소리 변하고, 코 막히고, 심한 입냄새…3주 넘는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건강한 당신] 목소리 변하고, 한쪽 코 막히고, 심한 입냄새 … 3주 넘으면 병원 가세요

편도·후두·혀에 암 ‘두경부암’ 위험 #발병 원인 중 흡연 65%, 음주 20% #낯선 병이라 증세 지나치기 쉬워 #늦게 발견하면 생존율 뚝 떨어져

3년 전 설암 수술을 한 진기수씨가 거울을 보며 목에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 있다. 입안 염증, 목의 혹은 두경부암의 증상일 수 있다. [김상선 기자]

3년 전 설암 수술을 한 진기수씨가 거울을 보며 목에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 있다. 입안 염증, 목의 혹은 두경부암의 증상일 수 있다. [김상선 기자]

35세 여성 직장인 최모씨는 6개월 전 편도암(구인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갑자기 목에 불룩한 덩어리가 만져져 동네 병원에 갔더니 림프절(전신을 그물처럼 연결하는 림프관의 중간중간에 있는 혹 모양의 덩어리)에 염증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항생제를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한 결과 편도에서 암이 발견됐다.

편도암 발병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흡연과 음주다. 편도는 목 안과 코의 뒷부분에 위치한 조직이다. 최씨는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술도 한 달에 한 번 맥주 1~2잔 마시는 정도다. 원인은 따로 있었다. 최씨는 병원에서 실시한 인유두종 바이러스(HPV·Human Papilloma Virus)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HPV 때문에 두경부(頭頸部)암에 걸리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두경부암도 소수 암이어서인지 HPV와의 관련성을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두경부는 눈 아래에서 가슴 윗부분까지를 말한다. 두경부암은 뇌·눈·갑상샘을 제외하고 두경부에 생긴 악성종양을 통칭하는 말이다.

관련기사

정필상(단국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대한갑상선두경부외과학회 회장은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HPV가 편도암을 일으킬 수 있다”며 “남녀 구분 없이 50대 전후에서 많이 발병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세 가지 두경부암(구인두암·구강암·후두암) 세포 표본 5046개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암 역학 및 예방’에 발표한 논문(2005)에 따르면 표본의 25.9%에서 HPV가 발견됐다. 암 종류별로 보면 구인두암의 35.6%, 구강암의 23.5%, 후두암의 24%에서 HPV가 나왔다.

류준선 국립암센터 갑상선암센터장은 “최근 25년 동안 한국에서도 HPV와 관련이 있는 편도암 발생이 매년 5%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궁경부암 원인 HPV도 두경부암 불러

두경부암 환자수 두경부암 구조

두경부암 환자수 두경부암 구조

2016년에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두경부암 신규 환자는 4605명이다. 2009년 3939명의 1.2배다. 2014년 환자 중 구인두암·구강암·후두암 환자는 2124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를 적용하면 550명 정도가 HPV 때문에 암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요즘 의학계에서는 두경부암과 HPV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여성의 질·자궁에 있는 HPV가 어떻게 두경부로 옮길까. 정필상 회장은 “HPV로 인한 두경부암 환자가 느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성관계(주로 구강성교)로 인해 HPV가 두경부암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HPV에 감염되더라도 대부분은 자연 치유된다. 감염자 중 일부에서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해 암이 생긴다. 암 발생까지 10~20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HPV가 두경부암의 새로운 위협 요인이지만 주범은 흡연과 음주다. 두경부암 발병의 65%가 흡연, 20%가 음주와 관련이 있다. 두경부에는 코·혀·입·침샘·입천장·편도·후두 등 여러 장기가 촘촘히 붙어 있다. 이들 기관은 흡연과 음주를 했을 때 직격탄을 맞는다.

김모(59·경기도 안성시)씨는 40년 동안 술·담배를 달고 살았다.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담배 한 갑을 피웠다. 건강이 염려됐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 지난 3월 병원에서 하인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혀뿌리 밑에서 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방사선 치료 30번과 항암 치료 3번을 받고 호전됐다. 그러나 8월 말에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암세포가 다시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하루에 1만 보 이상 걷고 주말마다 테니스를 쳤기 때문에 건강에 자신했다”며 “1년 전부터 목감기 증상이 잦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며 후회했다.

흡연·음주 때문에 발생한 두경부암은 치료가 까다롭다. 불(암)을 다 껐다고 생각했는데 불씨(잔여 암세포)가 되살아나는 경우가 흔하다. 다른 장기 전이 위험도 큰 편이다.

실제로 2013년 후두암 4기였던 52세 남성 박모씨는 후두절제술까지 받았지만 술을 끊지 못했다. 지난해 음식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됐다. 암세포가 식도로 번져 있었다. 식도암 3기였다. 손영익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술이 지나가거나 담배 연기에 영향을 받는 신체기관에서 암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암 치료가 끝나도 다른 두경부나 폐·식도에 암이 생기지 않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6년 이상 금연 유지해야 발암률 떨어져

두경부는 몸에서 먹고 말하고 숨 쉬는 기능을 한다. 암이 위중할수록 기능 손상이 심하다. 늦게 발견하면 치료 결과도 나쁘다. 안순현 서울대병원 갑상선·구강·두경부암센터장은 “초기(1~2기)는 5년 생존율이 80~90%에 달하지만 3~4기는 30%대로 확 떨어진다”고 말했다.

진기수(56·서울 노원구)씨는 2014년 두경부암 중 하나인 설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혀의 절반을 잘라내고 팔뚝 살로 혀를 재건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진씨를 치료한 은영규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진씨는 혀 밑에 난 조그마한 궤양을 무시하지 않고 병원을 찾은 덕분에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며 “대장암·위암 같은 주요 암에 비해 두경부암 인식이 낮아 암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두경부암은 이름이 어렵고 발병 위치가 다양해 질환 인지도가 낮다. 암의 잠재 증상을 인식하지 못해 조기 발견에 어려움을 겪는다. 전문가들은 의심 증상을 알아둬 자주 체크해 볼 것을 권한다.

의심 증상이 가장 뚜렷한 부위는 목이다. 목소리가 변하기 때문에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목에 통증이 있거나 음식을 삼킬 때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나도 의심해 본다. 코는 한쪽만 막히거나 피가 섞인 콧물이 날 때 의심해야 한다. 혀가 아프거나 구강에 생긴 궤양이 오래갈 때, 입속에 희고 붉은 반점이 생기거나 입냄새가 심하면 구강암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하나라도 3주 이상 이어질 경우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 두경부암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흡연과 음주를 줄여야 한다. 6년 이상 금연을 유지해야 암 발병 위험을 떨어뜨릴 수 있다.

두경부암 의심 증세 보이면 이비인후과 의사와 상담을

두경부암은 조기 진단 여부가 생존율과 치료 경과를 좌우한다. 발견이 늦으면 생존율이 줄고 암 치료가 끝나더라도 기능 손상이 오래간다. 두경부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 이비인후과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두경부암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가 의심 부위를 만져보고 눈으로 모양을 살핀다. 그런 다음 내시경으로 직접 부위를 들여다본다. 암이 의심되면 검사 도중 조직검사를 해 악성종양 여부를 판단한다. 암이 퍼진 정도나 림프절 전이 여부는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두경부암은 폐·뼈·식도에 잘 퍼진다. 뼈 스캔 검사나 식도 조영검사, 흉부 X선 검사를 하면 도움이 된다.

김선영·이민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