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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300년 전 조선왕조 분열시킨 의리론 … 2017년 한국에 다시 꺼낸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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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왕인 영조와의 갈등 끝에 비극적으로 숨진 사도세자 얘기를 다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중앙포토]

부왕인 영조와의 갈등 끝에 비극적으로 숨진 사도세자 얘기를 다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중앙포토]

“누구든 네 아비(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숭한다면 이 나라 종사의 역적이다. 이것이 너와 나의 의리다.”(영조)

영조 즉위 전부터 지지했던 노론 #의리 앞세워 ‘붙박이 여당’ 떠올라 #사도세자는 노론의 기득권 부정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 보호한 #소론·남인의 의리를 치켜세워 #정조 죽자 노론 득세, 당파 공멸 #친박계, 출당 파문에 ‘의리’ 내세워 #개인 아니라 국민과의 의리 지켜야

“명심하겠사옵니다.”(정조)

“오늘부터 네 아비의 이름을 입에 담지도 마라. 애통은 애통이고 의리는 의리다.”(영조)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 영화 ‘사도’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영화 ‘사도’에는 유난히 ‘의리(義理)’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 대화는 임종을 앞둔 영조가 왕위를 이어갈 세손 정조에게 당부하는 장면입니다. 영·정조 시대는 말 그대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시대였습니다. ‘의리’는 300년 전 정치를 이해하는 키워드입니다.

①사도세자 비극 부른 신임의리(辛壬義理)=19대 왕 숙종이 사망할 무렵 1700년대의 조선 조정은 세자(경종)를 지지하는 소론과 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지지하는 노론으로 나뉘었습니다.

신임의리는 1721년(신축년)~1722년(임인년)에 경종 대신 연잉군을 지지하다가 곤란을 겪었던 노론 측의 의리를 부르는 말입니다. 노론은 경종에게 연잉군을 왕위 계승자인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고 대리청정(代理聽政)까지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영의정 김창집 등 수백여 명이 죽고 귀양 갔습니다.

덕분에 영조가 즉위하자 노론의 세상이 됐습니다. 이들은 신임의리를 적극 앞세워 붙박이 ‘여당’으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혈기왕성한 세자는 노론의 특수한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양측은 첨예한 갈등을 빚었습니다. 사도세자의 본의와 무관하게 신임의리에 대한 부정이 아버지 영조의 왕위 정통성에 대한 도전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부왕이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하는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비극이 가져올 화근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사도세자를 비판한 신하들의 행동을 ‘대의(大義)’로 평가하고 이를 1762년 ‘임오의리(壬午義理)’라고 규정했습니다. 영화 ‘사도’에서처럼 세손인 정조에게도 향후 임오년의 비극에 대해선 끄집어 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임오년에 대의를 밝히지 않았더라면 윤리가 그때부터 폐지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 내가 있었겠으며 세손 또한 어떻게 오늘이 있었겠는가?”(『영조실록』)

두 가지 ‘의리’는 영조 시대의 ‘독트린’이었습니다. 왕위를 받으려면 신임의리와 임오의리를 수용해야만 했습니다.

②정조의 반격, 임오의리(壬午義理)=약속은 그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792년(정조 16년) 영남 유생 1만57명이 연명해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모함을 풀어 달라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른바 ‘영남 만인소’ 사건입니다.

정조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봉인을 해제했습니다. 사도세자를 장조(莊祖)로 추존하고 경기도 화성 융릉에 사도세자의 묘역을 조성하는 등 아버지의 정치적 복권에 나섰습니다.

임오의리도 뒤집어 수정본을 제시했습니다. 영조의 뜻과는 반대로 사도세자를 보호하려 애쓴 소론과 남인 측을 ‘진짜’ 의리로 포장해준 것입니다. ‘신임의리를 인정해 노론의 지위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나의 임오의리도 인정하라’는 것이 정조의 메시지였습니다. 정조는 노론 측을 상대로 보복은 하지 않았지만 사도세자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노론 측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조의 의리론도 결국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정조가 죽자 노론은 임오의리 수정에 관계된 세력을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당파가 공멸하면서 세도정치가 들어섰습니다.

③친박계의 의리론, 그 앞날은=요즘 자유한국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말하는 의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탈당을 추진하면서입니다. 친박계 김진태 의원은 “이렇게 의리도 없고 비정한 당엔 미래가 없다”고 소셜미디어에 썼습니다. 최경환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출당 추진을 “정치적 패륜 행위이자 배신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배신은 의리와 얽혀 있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배신은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배신은 이미 수년 전 박 전 대통령도 당내 인사를 공격할 때 썼던 말입니다. 유승민 의원을 ‘배신의 정치’로 규정해 버리면서였습니다.

사실 지금은 친박계의 공격을 받고 있는 홍 대표도 한나라당 탈당파인 바른정당 의원들을 겨냥해 “박근혜 공천받고 의리를 저버렸다”고 비난한 일이 있습니다.

‘의리’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말입니다. 사실 의리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치적 의리는 방향에 따라 자칫 변질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의리가 권력(군주)에만 맞춰졌던 영·정조 시대의 갈등은 정치 환경을 극도로 악화시켰습니다. 노론을 남당(南黨)과 북당(北黨), 시파(時派)와 벽파(僻派)로 갈라놓았고 소론도 완소(緩少)와 준소(峻少)로 분열하는 등 당파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치적 조율은 어려워졌고 불신과 갈등은 더욱 심화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선의 정치권이 의리론에 골몰했던 이 기간 서양은 산업혁명에 성공해 동양과 서양의 국력 관계를 역전시켰습니다.

‘의리론’으로 공멸했던 300년 전 조선 정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선출직 정치인의 의리는 개인이 아닌 국민에게로 맞춰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한 민주공화국입니다. 최소한 국민이 지금의 야당 내전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이 ‘의리와 정치’의 잘못된 만남을 피하는 길입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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