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이태원 살인’ 피해자 母 “국가가 아들 두번 죽이고 있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건 우리 중필이를 두 번 죽이는 거에요.”

유족 “수사지연으로 고통…국가책임” # 혹시 아들 살아올까 이사도 못가 # 법조계 의견도 엇갈려…곧 재판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어머니 이복수(75)씨는 사건 발생 20년 만에 살인범에 대한 단죄가 내려졌지만, 여전히 가슴엔 응어리가 있는 듯 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 집에서 만난 이씨는 ”요즘도 이따끔씩 변호사에게 전화해 ‘아들 살해범이 감옥에 있는 것 맞지요’하고 물어봐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도망갔을까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5)씨는 “혹시 이들이 돌아올까 봐, 그러면 ‘우리 집 이사 갔네’ 하고 서운해할까 봐 평생 이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5)씨는 “혹시 이들이 돌아올까 봐, 그러면 ‘우리 집 이사 갔네’ 하고 서운해할까 봐 평생 이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살해된 사건이다.

오랫동안 진범을 밝혀내지 못해 논란을 빚었지만 범죄자 인도요청 끝에 재수사가 이뤄졌고 지난 1월 진범 아더 존 패터슨의 징역 20년 형이 확정됐다.

이씨 등 유족은 이 확정판결을 근거로 지난 3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국가측이 ‘배상 불가’ 입장을 보이면서 다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다음은 이씨와의 문답.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집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씨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초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해 기소했지만, 리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버린 혐의(증거인멸) 등으로 유죄가 인정된 아더 존 패터슨은 복역하다 1998년 사면된 후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

검찰은 2011년 재수사 끝에 패터슨을 사건의 진범으로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해 미국에서 체포된 패터슨은 2015년 9월 도주 16년만에 국내로 송환됐고, 지난 1월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다.

-소송을 낸 이유는.
”잘못된 검찰 수사로 20년 동안 가족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마음 편히 웃어본 적도 없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진범은 패터슨인데 검찰이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잘못 지목했다. 그 사이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망갔고, 다시 잡아 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가족이 겪은 고통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소송 청구액을 10억9000만원으로 산정했다.
 “그동안 눈만 뜨면 서명가방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변호사비도 많이 들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걸 엄마가 해야지 누가 해?’ 그런 생각으로 버텼다. 10억원이 아니라 100억원이라도 청구하고 심은 심정이다.”

-국가 측은 배상 불가 입장인데.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망갔을 때 충격이 상당했다. 그때 국가가 우리 부부에게 각각 1500만원씩을 배상했으니까 이번에는 못 주겠다고 한다.”

-심정은.
“이건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이제 사건도 다 잊혀졌으니 우리같은 사람은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얘긴가.”(눈시울이 불거짐)

아들 조중필씨의 사진을 보여주는 이복수(75)씨. 현일훈 기자

아들 조중필씨의 사진을 보여주는 이복수(75)씨. 현일훈 기자

아들 앨범을 보여주며 이씨는 다시 목이 멨다.

그는 ”혹시 기적이 일어나서 오늘 밤에라도 중필이가 돌아올까 봐, 혹시 그러면 아들이 ‘우리 집 이사 갔네’ 하고 서운해할까 봐 평생 이사는 꿈도 꾸지 않고 살았다“고 말했다.

 “손해배상과 함께 추가로 원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우리는 아직 국가로부터 사과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과를 꼭 받고 싶다”고 답했다.

소송 전망은

유족측 주장은 검찰이 범인을 잘못 특정해 결과적으로 20년간 고통을 받았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국가측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정부 법무공단은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가 연장되지 않아 그가 1999년 8월 미국으로 달아난 사건과 관련해 유족이 그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6000만원(부모, 형제 포함)을 받았다”며 “이미 당시에 정부는 배상을 했기에, 같은 이유로 제기한 이번 소송은 각하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의견도 갈린다. 부장판사 출신 신일수 변호사는 “과거 청구원인은 패터슨 도망에 따른 피해보상(절차적 흠결)이었지만, 이번엔 검찰의 늦은 진실 규명에 따른 피해보상으로 소송 청구의 원인이 다르다”며 유족측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최진녕 변호사는 “설령 검찰 수사가 잘못돼 피해를 보더라도 그게 고의나 중과실일 경우가 아니면 피해보상을 받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