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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아이디어 도용 당해도 손 못써” 중소기업들 한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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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법정 싸움에 동종업계 중소기업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국내 2위 게임사인 넷마블게임즈와 게임업계 얘기다.

모바일게임 ‘부루마불’ 제작업체 #넷마블 유사 제품 고소했지만 패소 #30%만 달라도 현행법상 문제 없어 #넷마블 “일부 업체서 일방적 주장”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11월 아이피플스라는 중소 게임사가 넷마블을 상대로 저작권 위반·부정경쟁 행위 소송을 걸었다. 넷마블이 이 회사 모바일게임 ‘부루마불’을 도용했다는 이유다. 문제가 된 게임은 넷마블이 2013년 출시해 단일 누적 1조원 매출을 달성한 모바일게임 ‘모두의마블’로, 넷마블이 빠르게 업계 2위로 도약하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

부루마불은 씨앗사가 1982년 출시한 동명의 보드게임이 원작이다. 아이피플스는 씨앗사와 부루마불 지식재산권(IP) 사용 독점 계약을 맺고 2008년 모바일게임으로 출시했다. 그런데도 넷마블이 이를 베꼈으니 IP 침해라는 입장이다. 1심에서 법원은 넷마블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29일 재판부는 “두 게임 간 게임판 조합에서 82.5%, 작중 지명(地名) 선택에서 50% 안팎의 유사성이 발견됐다”면서도 “전체 저작권 침해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아이피플스 측은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소송전으로까지 번진 이 표절 논란을 계기로, 몇몇 중소 게임사들은 익명을 전제로 중앙일보에 제보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비슷하게 아이디어 도용 문제를 겪었다고 하소연한다. 현 상황을 ‘동병상련’이라고 표현한 서울 강남의 A사 대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마케팅 파워와 물량 공세로 시장을 선점하면 경쟁할 엄두가 안 난다”며 “거의 유일한 활로가 IP인데 국내 저작권법은 60~70%에서 유사성이 인정돼도 30~40%만 다르게 보이면 베낀 게임이 아니라고 보는 등 IP 침해에 관대해 사실상 ‘대기업 보호법’과 같다”고 했다.

현행법이 저작권 침해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 제한적으로만 적용하다 보니 피해를 입어도 법적으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최소 수천만 원에 달하는 소송비용이 부담스러운 중소기업들로선 소송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다.

통상 사법부가 신중한 이유는 현행법상 저작권 규정이 모호한 데다, 자칫 기업들 사이 ‘자유 경쟁’ 속에 성장하는 시장 원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심해서다. 실제 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IP 권리자의 독점권과 자유 경쟁은 적정 조화돼야 하므로 경쟁을 제한할 수 있는 법 해석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중소기업만 뒤처지게 하는 논리로 와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넷마블의 퍼블리싱(타사 개발 게임의 유통) 관행도 일부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넷마블은 게임 개발 외에 퍼블리싱에 강점이 있어 많은 중소 게임사들이 개발한 게임을 출시해달라고 문의하는데, 넷마블이 정당한 보상 대신 이들의 아이디어로 계열사 이익을 늘리는데에만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앙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넷마블은 2012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퍼블리싱 계약된 중소 규모 서드파티 업체(비계열사) 게임 140여개 중 27개만 출시했다. 그중 81.5%인 22개 게임은 아예 서비스가 종료됐다. 같은 기간 넷마블 자회사(계열사) 평균 매출은 서드파티 업체의 8배 이상이었다.

과거 넷마블과 3건의 게임 인큐베이팅 계약을 했던 서울 구로의 B사 대표는 “이른바 ‘3N(업계 상위 3사)’ 중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계약할 때 일처리가 깔끔한데 넷마블은 유독 잡음이 많다”며 “국가 차원에서 기업들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제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넷마블 관계자는 “일부 업체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아이디어 도용이 아니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게 우리 측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IP 전문가인 신피터경섭 숭실대 법대 교수는 “돈이 좀 들더라도 사전에 전문가 자문을 받아 계약서를 작성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또 부정경쟁방지법(부경법) 중 2014년 신설돼 시행 중인 일부 조항을 참고해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경법 제2조 제1호 차목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상당한 노고를 차용해서 이득을 얻은 경우 부정경쟁 행위로 간주, 손해 배상 의무가 생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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