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고 백남기씨 외인사 결론 … 정권 따라 흔들리는 검·경이 안타깝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책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어제 나왔다. 2년 전 민중총궐기 집회 때 백씨가 숨진 것은 경찰의 시위 진압용 살수차(일명 물대포) 직사살수 때문으로 결론 내렸다. 외인사로 인정한 것이다. 검찰은 이날 유가족들이 고소장을 접수한 지 1년11개월 만에 살수차 운용지침을 위반한 최모 경장,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 4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공권력 남용에 경종을 울린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과정을 복기해 보면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검찰과 경찰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백씨가 10개월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검찰 수사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사람이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변했다. 법률적 책임과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입장이었다. 그랬기에 백씨가 숨지자 경찰과 검찰은 시신 부검을 시도했다. 하지만 유족 측의 완강한 거부로 부검 없이 장례가 치러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6월 백씨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최 경장 등은 백씨 유족이 제기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담당 재판부에 ‘청구인낙서(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인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인낙서에 “저희가 속한 조직이 야속했다”고까지 썼다고 한다. 경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과연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최종 결론이 지금처럼 나왔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부검없이 명백한 진실이 가려졌는지도 의문이다. 앞으로 경찰이 불법시위에 의연하게 맞설지도 걱정스럽다. 어쩌다 우리 검찰과 경찰이 이 지경이 됐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