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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스스로 “부패했다” 고백한 기상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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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날씨 예보가 자주 빗나가 ‘오보청’이란 비아냥을 들어 온 기상청이 이번엔 ‘부패청’이란 별명까지 덧붙이게 생겼다. 그것도 외부 비판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가 그렇게 평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16일 국회에 제출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상청의 종합 청렴도는 최하위인 5등급을 받았다. 문제는 2012~2014년 3등급이었다가 2015년 4등급, 지난해 5등급으로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외부 인사 상대의 조사에서는 3등급이었으나 기상청 직원 상대의 내부 청렴도 조사에서 5등급으로 더 나쁘게 평가됐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옆 기상청사. 장비 도입 관련 비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강찬수 기자]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옆 기상청사. 장비 도입 관련 비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강찬수 기자]

그동안 기상청 주변에서는 라이다(LIDAR)나 다목적 기상 항공기 등 장비 도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라이다는 난기류로 인한 항공기 사고 예방 장비로 공항에 설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성능이 제대로 됐는지를 둘러싸고 2011년부터 기상청과 기상업체 간 논쟁이 일어 급기야 소송전으로 번졌고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현직 기상청장이 피의자로 경찰에 출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2억원짜리 다목적 기상 항공기도 2015년 11월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말에야 겨우 국내 등록을 마쳤다. 게다가 21인승에서 13인승으로 바뀌면서 관측 장비를 다 싣지 못한다는 비판을 샀다.

인허가 업무가 별로 없는 기상청에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건 고가의 기상장비 시장을 상대하는 가운데 학연 등으로 밀어주는 풍토가 뿌리 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상청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내부 고발을 해도 잘 고쳐지지 않고, 자칫 그런 일로 찍히면 백령도나 울릉도로 좌천될 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같은 익명 설문조사에서나 간신히 비판적인 응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상청의 정해정 대변인은 “청 안팎의 부패 신고를 하면 비공개 처리하는 식으로 감시기능 활성화 노력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불안이 직원들 사이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장비 도입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러도 처벌 수위가 견책·경고 등 솜방망이라는 점이다. 비리와 오보로 기상청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시민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신임 남재철 청장이 취임 석 달 되도록 조직 쇄신에 관한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는 이유도 궁금하다. 뼈를 깎는 아픔으로 거듭나려는 각오 없이는 기상청의 추락하는 이미지를 되살리기 힘들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