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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대행 찬성→소장 임명' 선회에 靑 당혹…'대행체제' 결정 근거 약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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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6일 “헌법재판소장을 조속히 임명해 달라”고 밝힌 헌법재판관 8명의 집단대응에 대해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 8명의 공식 요구를 담은 입장문이 나오자 “당장 청와대의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며 "신중한 고민을 통해 공식 입장을 정리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고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자리에 앉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자리에 앉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당혹해하는 이유는 헌법재판관들의 이날 성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근거를 흔드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4일 페이스북에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는다. 헌재는 지난 정부 때인 2017년 3월 14일 재판관 회의에서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선출했다”며 “헌법재판소법에 의해 선출된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대해 위헌이니 위법이니 하며 부정하고, 업무보고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 만든 국법질서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적었다. 13일 야당이 김 권한대행의 자격 문제를 이유로 국회 국정감사를 보이콧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사진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사진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그러나 김 권한대행을 비롯한 8명의 재판관들이 이날 ‘권한대행 체제 지지’를 사실상 전면 철회하고 ‘조속한 소장 임명’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이 헌재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해 법에 따라 권한대행 체제를 결정했는데, 이제와서 스스로의 합의를 뒤집는 요구를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청와대로서도 할 말은 많지만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유나 배경이 뭐가 됐든지 권한대행 체제를 결정했던 근거가 흔들린 상황이 됐기 때문에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대통령이 지적했던 입법 미비 사항을 당장 개선하지 못할 경우 신임 재판관을 뽑고 그분을 소장으로 동시에 지명하는 현실적 대안이 없지는 않지만 현 시점에서 구체적 방안을 언급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회 법사위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정감사가 13일 열렸으나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직 유지를 두고 여야의 대립 끝에 파행됐다. 야당 의원들은 김 대행의 자격을 문제 삼아 인사말 듣기를 거부했다. 김 대행이 국감장 대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강정현 기자

국회 법사위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정감사가 13일 열렸으나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직 유지를 두고 여야의 대립 끝에 파행됐다. 야당 의원들은 김 대행의 자격을 문제 삼아 인사말 듣기를 거부했다. 김 대행이 국감장 대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강정현 기자

문 대통령도 14일 글에서 “국회 또는 야당은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니 조속히 헌재소장 후보자를 지명하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회에서 먼저 헌재소장의 임기를 명확히 하는 입법을 마치면 대통령은 헌재소장을 바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현재 헌법재판관 중에 임명되는 헌재소장의 임기를 재판관의 잔여임기로 할지, 새로운 6년으로 할지에 대한 입법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국회에는 헌재소장 취임일부터 6년 임기를 시작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여야의 대치 상황 속에 계속 계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한 다소간의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입법미비를 해소하자는 데는 여야 모두 동의하고 있다”며 “현재의 논란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조만간 문 대통령이 국회에 대해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방식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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