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뒤 국정감사가 파행될 때까지 언급을 삼갔던 헌법재판소가 16일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내놨다. 헌재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 “헌법재판관 전원(8명)이 모여 소장 공백 사태 장기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8인 재판관' 소장 공석 장기화 우려 표명 #박한철 전 소장 퇴임 후 9개월째 수장 공백 #'8인 체제' 장기화로 심판 업무 차질도 #"헌재 정쟁 도구로 삼는 정치권 대결 끝내야"
헌재에 따르면 김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은 “소장과 재판관 공석 장기화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은 물론 헌법기관으로서 위상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조속히 임명절차가 진행되어 헌재가 온전한 구성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인식을 같이한다”며 소장과 재판관 임명절차를 조속히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11일 김 권한대행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부결했다. 일주일 뒤(18일) 헌법재판관들은 간담회를 열고 김 권한대행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도 헌법재판관들의 뜻을 존중해 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소장 임기 문제를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할 때까지 새 소장 후보를 지명하지 않기로 방침을 굳혔다.
이런 청와대 발표는 야당의 반발을 불렀다.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재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김 권한대행의 자격 문제와 청와대 발표를 문제 삼아 감사를 거부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김 권한대행에게 재판관직 자진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90분간 여‧야 의원들 사이에 고성과 논쟁이 오간 끝에 국감은 파행됐다. 여야는 아직 헌재 국감을 위한 새 일정을 잡지 못한 상태다. 국감이 파행된 뒤에도 문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권한대행을 두둔하고 야당을 비판하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헌재가 정쟁의 중심에 선 것에 대해 헌재 내부에선 문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과 야당의 정치공세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재의 한 연구관은 “헌법기관의 수장 공백이 9개월째에 이르는데도 후임 소장을 임명하지 못한 것은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부당한 이유로 김 권한대행의 인준안을 부결시킨 국회 책임이 크지만 임명권자(대통령)도 헌재 정상화를 최우선에 두고 정치적 타협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새 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헌재를 청와대가 지나치게 홀대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헌재의 상징적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권한대행 체제의 장기화와 재판관 공백 때문에 헌재가 심판 과정에서 좀 더 확고한 결정을 내리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며 “헌재를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를 버리고 9인 체제 정상화를 위해 청와대와 국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신중하게 공식 입장을 정리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