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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고 작은 공연장에서 열리는 국악 음악극

중앙일보

입력

서울 율곡로의 돈화문국악당에서 다음 달부터 공연하는 국악 음악극 '적로'. [사진 세종문화회관]

서울 율곡로의 돈화문국악당에서 다음 달부터 공연하는 국악 음악극 '적로'. [사진 세종문화회관]

서울 율곡로의 서울돈화문국악당은 객석이 140개인 작은 극장으로 지난해 개관했다. 작은 극장 치고는 울림이 좋다. 잔향 시간 0.6~0.7초다. 때문에 이 곳은 마이크를 쓰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자연음향’ 국악 전문 공연장으로 꼽힌다. 무대도 66㎥로 작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적로' 내달 공연 #작은 무대, 적은 객석, 자연음향을 가지고 만든 새로운 악극 #한국 전통 창법, 재즈, 대중음악 과감하게 섞어

정통 국악 공연에는 좋아도 드라마가 있는 극을 올리기에는 제약이 크다. 16일 연출가 정영두는 “극 연출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극장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음악극 ‘적로’의 제작 발표회에서다. 하지만 그는 “거꾸로 보면 흔한 연출법 대신 새로운 방법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무대의 협소함을 이점으로 이용해 연기자의 섬세한 움직임을 표현하거나 큰 무대에서 쓸 수 없는 작은 도구들을 활용할 생각이다.

‘적로’는 19세기 말에 출생한 대금 명인 두 명이 등장하는 국악 음악극이다. 실존했던 주인공은 박종기(1879~1941), 김계선(1891~1943)이다. 공연장이 위치한 돈화문 일대에서 대금 연주로 이름을 날렸던 연주자들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예술감독 김정승은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각각 진도아리랑과 대금 정악의 명곡들을 남긴 인물들”이라며 “이들의 삶과 음악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하지만 정영두의 말처럼 제약이 큰 공연장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아늑하지만 제작자들에게는 고민을 안기는 조건이다. 건축 자재로만 소리를 울리는 음향 시스템 또한 음악극에는 도움이 될 리 없다. ‘적로’의 작곡을 맡은 최우정은 “출연하는 소리꾼들의 소리가 들리게 하기 위해 악기들이 음향을 줄이는 것은 원치 않았다. 배우들이 악기와 싸워서 소리가 뚫고 나오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실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신디사이저로만 음향 증폭 장치를 쓰고 클라리넷, 대금ㆍ아쟁 등을 혼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만들어 음악극에 배치했다. 20세기 전반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재즈와 전통적 창, 대중적인 가요가 과감하게 섞여있는 음악 18개 곡이 극을 끌고 나간다. 최우정은 “특히 한국의 여창가곡을 보면 서양 클래식의 예술가곡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많다. 이를 이번 작품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국악 음악극’도 새로운 형식이다. 김정승 예술감독은 “창극ㆍ소리극 등의 전통적인 네이밍도 고민했지만 그런 공연이 열리는 곳과 물리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했다”며 “전통적인 장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공연”이라고 했다. 두 대금 명인과 허구의 기생 산월이 등장해 이야기와 노래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공연은 진행된다. 음악 명인들의 삶을 재현하고 기리는 전기적 이야기는 아니다. 극작을 맡은 배삼식은 “빼어난 업적을 가진 예술가들 대신 모든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병, 즉 삶의 덧없음을 마주하는 이야기”라며 “그 중에서도 소리라는 가장 덧없는 방법으로 불멸의 것을 붙잡으려는 인간을 그렸다”고 소개했다.

공연은 다음 달 3~24일 열린다. 소리꾼 안이호(박종기 역), 정윤형(김계선 역), 하윤주(산월 역)이 출연해 소리와 연기를 맡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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