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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에 시달리는 소방관들… 직업병 1순위 '난청'

중앙일보

입력

충북의 한 소방서에 근무하는 A소방관. 30여년간 각종 재난현장에서 화재진압대원과 지휘조사팀장 등으로 일하면서 장시간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지난 2013년 귀에서 멍한 증상을 느낀 A방관은 일상생활에서도 귀가 먹먹하고 매미 소리와 같은 이명증상도 호소했다.

지난 11일 충남 천안시 중앙소방학교에서 열린 전국 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한 소방관이 소방호스를 메고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충남 천안시 중앙소방학교에서 열린 전국 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한 소방관이 소방호스를 메고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2014년 초 증상이 심해지자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소음성난청이었지만 공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 결과 절반이 소음성난청 앓아 #공무원연금공단, 난청으로 공상 신청 9명 중 2명만 승인 #소음성난청과 업무상 연관성 증명할 객관적 자료 없어 #박남춘 의원 "소방청이 공상입증 개인에게 떠넘겨" 비판

업무 특성상 소방차 사이렌과 구조·진압 장비 등 크고 작은 소음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이 ‘난청’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남춘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남동갑)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수건강진단 결과, 직업병 판명을 받은 1만9290명 중 절반에 가까운 48.9%(9430명)가 소음성난청을 앓고 있었다.

소방공무원 소음성난청 공상처리 결과. [박남춘 의원실]

소방공무원 소음성난청 공상처리 결과. [박남춘 의원실]

지난해 직업병 판명을 받은 소방공무원 6343명 가운데는 50.0%(3170명)가 소음청난청으로 집계됐다. 난청 등 귀 질환도 10.4%(658명)나 됐다.

최근 10년간(2007년~2017년 6월) 소음성난청으로 공무상 요양(공상)을 신청한 소방공무원 9명 중 승인은 2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2008년 훈련에 사용할 폭음탄을 정비하던 중 사고를 당해 소음성난청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공상을 승인하는 공무원연금공단이 폭음탄이 청력에 직접적인 손상을 줬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구조·구급·화재 등 현장에서 소방활동을 하면서 소음에 지속해서 노출된 소방공무원에 대해서는 공상이 단 한 건도 인정되지 않았다. 특수건강진단에서 직업병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음성난청을 공무원연금공단이 직업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 1일 대전시 유성구 한 차고지에서 화재조사반이 불에 탄 탱크로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대전시 유성구 한 차고지에서 화재조사반이 불에 탄 탱크로리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연금공단은 공상을 신청한 소방공무원의 소음성난청과 업무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소방관이 일하는 소방서에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방업무환경측정은 의무조항이 아닌 임의조항이라 관련 예산이 배정되거나 실제로 현장에서 측정이 이뤄진 적이 없다.

소음성난청과 업무상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게 현실이다. 소방청이 소방공무원 개인에게 공상 입증의 책임을 떠넘기는 비판이 나온다고 박남춘 의원은 설명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2016년 국민안전처 장관과 시·도지사에게 소방공무원의 안전과 건강보호를 위한 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소방공무원의 업무 특성상 소음성난청 등의 증상은 특별히 고려하고 청력보호기를 신속히 보급하라고도 했다. 하지만 소방청은 인권위 권고를 받은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청력보호기 실효성에 대한 검토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강원도 춘천소방서 대원들이 춘천역 앞 도색 작업 차량의 적재함에서 난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강원도 춘천소방서 대원들이 춘천역 앞 도색 작업 차량의 적재함에서 난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박남춘 의원은 “소방관들이 소음성난청 위험에 노출되고 공상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소방청의 방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소방업무 환경측정에 대한 전문연구를 진행하고 청력보호기 보급 등에도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세종=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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