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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장 “서울대, 이제 다양해져야 할 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대가 지난 12일 ‘다양성보고서’를 국내 대학 최초로 발간했다. 185쪽짜리 보고서에는 서울대의 교수ㆍ학생ㆍ직원에 대한 다양한 통계들이 담겼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다양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위원회가 지적한 부분들이다. 2016년 기준 학부생 중 여성의 비율은 40.5%였지만, 전임 교원 중 여성의 비율은 15%였다. 전임 교원 중 서울대 학부 출신은 80.4%로, 10명 중 8명이 자교 출신이었다. 전임 교원의 47.7%는 최종 학위를 미국 대학에서 취득했다. 외국인 학생의 비율은 학부생 중 1.3%, 대학원생 중 9.4%였다.

위원장을 맡은 노정혜(60·여) 생명과학부 교수에게 서울대 다양성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직접 물었다. 노 위원장은 국립 서울대 법인의 이사를 맡고 있다. 서울대 연구처장과 여교수회 회장을 지냈다.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장이 1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우영 기자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장이 1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우영 기자

다양성위원회가 무엇인가.

“서울대가 지난해 3월 처음으로 만들었다. 학내 다양성을 위한 정책 개발과 교육 등을 하는 서울대 최초의 총장 직속의 자문 기구다. 당연직인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등 교수들과 직원 대표 1명, 학생 대표 1명, 외부 인사 2명 등 15명이 위원을 맡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매년 인종ㆍ성별 등 다양한 다양성 관련 지표를 조사해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학내 기구들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에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대가 발전하기 위해서다. 서울대의 모토는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공동체’다. 창의성을 갖고 세계를 선도하려면 내부 조직과 구성원들이 다양해야 한다. 국내 다른 대학들도 점차 다양성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관련 강의를 부탁해 온 대학도 있다.”

다양성위원회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나.

“2015년 서울대 여교수회가 여교수의 숫자가 적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교수의 성비 불균형에 국한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에서 학내 다양성을 늘리려는 노력을 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서 총장께 건의했더니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여러 행정 절차를 거치고 학칙을 개정해 총장 직속 자문 기구로 설립하는 데 딱 6개월이 걸렸다. 우리 학교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일 것이다. 그만큼 구성원들이 당위성에 공감한 것이다. 총장께 정책을 건의하고 학내 기관들에 개선을 권고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서울대에서 다양성이 가장 시급한 부분이 무엇인가.

“여성 전임 교수의 비율이 해외 유수 대학들에 비해 크게 적다. 2016년 기준 하버드대의 전임교수는 약 1500명인데, 그 중 29%가 여성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경우 31%다. 서울대는 15%에 불과하다. 희소한 집단에 속한 사람은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어울려 생활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기 힘든 비율이다.”

여성 전임 교원의 수가 이렇게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가.

“신임 정교수를 채용할 때 작용하는 여러 편견들이 원인으로 꼽힌다. 어떤 학과는 매년 여교수 채용이 없어 본부에서 ‘이번에는 여교수를 뽑으면 어떠냐’고 물으면 “뽑을 여성 인재가 없다”는 대답을 한다고 한다. 시간 강사나 박사급 연구원 등 비전임 교원 중에선 여성이 오히려 남성보다 많고, 학부생 중 여성의 비율도 40%가 넘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성위의 현실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여성 전임 교원의 비율이 30% 이상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외국인 학생 수, 다른 대학 출신 교수 숫자도 더 늘어나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지금 소수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여성, 외국인, 타대학 출신 등)이 전체의 절반 정도로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신규 교원 채용시 여성과 다른 대학 출신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작업에도 우리 위원회가 참여 중이다.”

노 위원장은 서울대 미생물학과 75학번이다. 1979년에 자연과학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86년 29세의 나이로 서울대 미생물학과 교수가 됐다. 노 위원장은 자신이 서울대 교수로 임용될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여성 교수가 더 드물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임명됐는데.

“86년 교수로 임명될 당시 내가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역대 네번 째 여교수였다. 당시 젊은 여성을 정교수로 뽑는 것이 교수들 사이에서 상당한 문화 충격이었다는 것을 선배 교수들로부터 나중에 전해들었다. 한 선배 교수는 ‘교수들이 너 들어온다고 너보다 나이 많은 대학원생들 다 졸업시켰어. 덕분에 학위 빨리 받고 취업 빨리 해서 좋다고 농담하는 애들도 있었어’라고 하시더라.”

여성이라 차별받은 일화도 있나.

“서울대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논문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한 선배 교수가 내 발표가 끝난 뒤 “이 친구는 여자인데도 연구를 참 잘한다”고 말해서 현장에 있던 외국인 교수들이 경악한 일이 있었다. 나중에 따로 찾아와 “저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여기에서 교수로 지낼 수 있냐”며 걱정해 준 사람도 있었다.”

노 위원장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책 한 권을 권했다. 스콧 페이지 프린스턴대 교수가 쓴 ‘다양성의 힘’이라는 책이다. 집단 내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노 위원장은 “집단 지성과 연결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단순히 인식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조직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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