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소위 '베탕쿠르 사건'으로 불리는 불법 정치자금 재판 과정에서 판사 매수에 나서고, 이를 위해 대포폰을 사용하는 등 '사법 방해' 혐의로 검찰의 기소를 앞두고 있다. 기소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사상 처음으로 부패혐의로 공판에 나서는 전직 대통령이 된다.
사르코지 前 대통령, 불법 정치자금 재판 과정에서 '사법 방해' 혐의 #檢 기소시 프랑스 사상 첫 '부패혐의 재판' 전직 대통령 오명
'베탕쿠르 사건'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세계 여성 최고 부호'로 불렸던 릴리안 베탕쿠르 로레알 상속녀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비롯된 사건으로, 당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프랑스 검찰은 당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재판부의 '증거 불충분' 결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판사를 매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5일(현지시간) 프랑스경제범죄전담검찰(PNF)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이자 친구인 티에리 에르조그, 질베르 아지베르 전 프랑스 파기법원 판사에 대한 공소장을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르몽드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PNF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파기법원(우리나라의 대법원 격)의 불법 정치자금 재판과 관련해 판사에게 고위직을 보장한 사실을 확인했다. 대선 당선시 고위직을 주겠다며 판사를 매수해 적극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경찰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수첩을 압수하면서, 이 수첩이 유죄 선고의 '스모킹 건'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사르코지 측은 수첩의 증거능력이 없음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고, 결국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판사를 대상으로 이같이 매수에 나서는 데엔 대포폰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PNF는 공소장을 통해 "(사르코지와 헤르조그가)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피해 몇 달간 차명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며 "두 전화기는 2014년 '폴 비스무스'라는 가명으로 개통됐는데 이런 방식들은 노련한 범죄자들이나 쓰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헤르조그가 갖고 있던 대포폰에 사르코지의 전화번호는 '스핑크스'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4년 2월 개시된 수사는 2016년 10월에 끝낼 것으로 생각됐으나 수사에 32개월이 걸렸다"면서 "절반인 18개월 정도는 사르코지 측의 집요한 지연전략으로 수사가 마비됐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올해 대선에서 공화당 경선에 나서면서 '최대 약점'으로 손꼽힌 범죄 혐의를 무마시키려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대선 경선을 준비하며 기소 지연에는 성공했지만, 기소 자체를 막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기소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르몽드는 "사르코지가 기소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상 처음으로 전 대통령이 부패혐의로 공개 재판에 설 것 같다"고 전했다.
검찰의 공소장 작업이 마무리된 만큼 검찰 수사에 이어 예심 판사들이 사건을 보강 수사하면, 한 달의 이의신청 기간을 거친 뒤 늦어도 연말까지는 사르코지와 두 공범에 대한 기소명령서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