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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군림 않는 조직’ … 신속한 경영 판단 ‘미전실’ 장점만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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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재용. [뉴스1]

이재용. [뉴스1]

이재용(사진) 부회장의 그룹 컨트롤타워 신설 구상은 ‘미래전략실처럼, 그러나 미래전략실과는 다르게’로 요약된다. 미래전략실(미전실)의 장점은 이어받되 과거의 구태가 반복되도록 하진 않겠다는 얘기다.

계열사 CEO 협의체 형식 유력 #외부와 유착고리 비난 받은 #대관업무는 없애거나 최소화 #권오현 부회장 용퇴로 인사 물꼬 #사장단 인사 평소보다 빨라질 듯

삼성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담 조직은 필요하다. 미전실은 계열사 간 업무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미래사업 전략과 실행방안을 결정해 왔다. 신규 수종사업을 발굴하고 전략적 인수합병(M&A)의 결정도 미전실을 통해 이뤄져 왔다.

삼성은 현재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상태를 겪고 있으면서 경영 전담 조직도 없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의사 결정을 뒷받침할 조직과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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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상태를 돌파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변화가 빠른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의 특성상 경영 판단과 실행력이 떨어져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금세 뒤처지기 십상”이라며 “이 부회장이 이 대목을 염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영을 이끌 조직의 형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과거의 미전실 같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만큼 일부 기능은 제외될 전망이다. 외부와의 유착 고리가 됐다는 비난을 받는 대관업무는 포함되지 않거나 최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군림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해 그룹 전반의 경영 현안을 함께 고민하는 협의체의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SK그룹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위원회’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된다.

미전실이 주요 의사를 결정하던 시절, 삼성 내에선 ‘내정됐다’는 표현이 자주 통용됐다. 계열사 사장 같은 주요 임원 인사에 대해 미전실이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쓴 표현이다. 내정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각 계열사의 이사회도 내정된 결과를 통과시키는 역할에 그쳤다. 미전실을 두고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 공식 경영 조직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경영 전담 조직이 생겨나도 이 같은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이 부회장의 구상이다.

경영 전담 조직의 필요성은 삼성 안팎에서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지난 2월 28일 삼성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자 경제개혁연대가 ‘미래전략실 해체가 정답이 아니다’는 제목의 논평을 낼 정도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저격수’로 불리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소장을 맡고 있던 조직이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적 생산활동 주체는 개별 독립 기업이 아니라 다수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기업집단”이라며 “그룹(기업집단)이 존재하는 한 컨트롤타워(그룹 사령탑) 기능은 필수불가결하다”고 논평했다. 이어 “컨트롤타워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미전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미전실이 낳는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다.

이병태 교수는 “삼성이 글로벌 톱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경영 현안에 대해 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리더십과 이 판단에 대해 전사적으로 합심해 실행에 나서는 팔로십의 조화가 가장 큰 무기였다”며 “이는 미래전략실이라는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후속 인사가 조직 개편과 맞물릴지도 관심이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을 전자·생명·물산의 3개 소그룹으로 나눠 소그룹별 경영협의체를 두는 방안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여러 대안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나 계열사마다 주주들이 있어 쉽게 진행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소규모 그룹을 지휘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경영에 개입하는 것을 용인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분위기도 무르익어야 한다는 의미다.

인사 시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의 사장단 인사는 통상 12월 초에 이뤄졌지만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의 용퇴로 인사 논의에 물꼬가 트이면서 예년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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