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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애끓는 피해자 부모 마음 외면한 경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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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규진 사회2부 기자

최규진 사회2부 기자

“실종신고 다음 날에야 피해자 부모로부터 ‘딸이 친구(이영학의 딸)를 만나러 갔다’고 들었다.”(경찰)

“신고하면서 이영학 딸을 만났다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듣지 않았다.”(피해자 부모)

“신고 당시 지구대가 너무 시끄러워 잘 들을 수 없었다. 사다리차까지 동원해 나름 성실히 조사했다.”(경찰)

“사다리차는 애 아빠의 지인으로부터 우리가 빌려서 갖고 온 것이다.”(피해자 부모)

‘어금니 아빠’라고 불린 여중생 살인범 이영학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또 다른 진실 규명이 진행 중이다. “피해자 측 사정을 감안해 달라”며 보도에 신중해 달라고 했던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 부모와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집주소를 조회하면 이영학이 산다는 게 파악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찰 권한엔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건 초기 피해자 부모들에게 경찰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사망한 피해 여중생의 실종 초기, 경찰에 대한 기대를 접은 부모와 가족은 애타게 딸을 찾아 헤맸다. SNS에 “너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잠을 못 이룹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며 딸의 행적을 수소문했다. 이영학 집 근처의 CCTV를 확인했고, 집 앞에 사다리차를 동원했다.

그 사이 경찰은 내부 공조도 원활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 이영학의 부인 자살 방조사건에 대한 내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경찰서 내에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 경찰이 지키지 못한 또 다른 규칙들이 뒤늦게 확인되고 있다. ‘실종 아동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에 따르면 ‘관할 경찰서장은 즉시 현장 출동 경찰관을 지정해 탐문·수색하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사건 당시는 경찰이 이른바 ‘추석 명절 특별 치안활동기간’으로 지정해 대대적인 방범활동을 벌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랑경찰서장이 사건을 처음 보고받은 것은 사건 발생 후 나흘이 지나서였다.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경찰 관계자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고개를 숙였고, 서울지방경찰청도 감찰에 나섰다. 15일이 돼서야 이영학에게 쏟아진 성매매, 기부금 유용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 체계가 꾸려지고 있다. 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엄마는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경찰은 이영학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밤샘 근무를 했지만 주저앉은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최규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