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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박근혜만 내보내면 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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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욕설이 터져 나온다. 이른 아침 식당 구석에 앉은 두 젊은이가 연신 불만을 주고받는다. 식당 벽 TV는 아침 뉴스를 전하고 있다. 정치권 뉴스가 시작된 이후 두 사람은 줄곧 비난을 쏟아낸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당시 집권당 아무도 책임 없나 #절실한 반성과 개혁 없이 #대통령만 내보내면 달라지나 #상대 공격으로 지지율 회복 #당장은 손쉬워도 미래가 없다

촛불 민심으로 나라를 뒤집어 놨다. 하지만 아직 불만이 가득하다. 특정 정치인의 집권을 위해 촛불을 든 건 아니다. 먹고살기 힘들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었다. ‘금수저’와 ‘흙수저’ 차별은 더욱 서러웠다.

그런데 달라졌나. ‘금수저’를 든 사람만 바뀐 건 아닌가. 사람을 바꾸고, 뒤지고, 망신 주고….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건가. 일방적인 권력의 독주, 측근들의 장막, 캠프 내에서 맴도는 인재난, 보상 인사에 따른 황당 인선, 군중 동원에 의한 여론 조작, 소통 없는 일방적 홍보…. 과거 무수하게 반복된 실패들이 이제 사라진 걸까.

특히 자유한국당의 행보는 불안하다. 이게 끝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으로 마무리할 조짐이다. 혁신위에서 요구한 대로 서청원·최경환 의원까지 출당할지도 불투명하다. 그것으로 모두 없던 일이 될까. 박 전 대통령이 실정의 핵심이고,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한 이 엄청난 사태에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다 내보내고 나 혼자 당 대표 하느냐”고 말했다. 굳이 인적 청산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반성하고, 고치려는 자세가 먼저다. 보수 재건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의 단절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출당만 한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단절은 절실한 반성의 결과여야 의미가 있다. 그래야 또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왜 출당하나. 뭘 잘못했다는 건가. 반성 없는 출당은 ‘쇼’에 불과하다.

출당을 위해 1심 판결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제 구속 연장에 맞춘다고 한다. 법원이 판단해 주기 전엔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인가. 심지어 홍 대표와 한국당 의원 상당수는 그동안 박 전 대통령 탄핵과 분열에 앞장섰던 사람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탄핵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반성과 혁신을 기대할 수 있겠나.

김진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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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사정이 급하다는 건 알겠다. 문재인 정부가 일방 독주한다. 보수정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들의 연속이다. 견제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설 수 있다. 국정감사도 시작됐다. 공격의 날을 세워야 한다. 더군다나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바로 선거체제로 들어간다. 보수 표 분산은 치명적이다. 시간에 쫓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초 높은 지지도에 대해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취임 2~3분기에 80%대의 지지율을 보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마지막 해에 아들이 구속된 뒤 6%까지 떨어졌다(한국갤럽 자료).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다른 대통령들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다를까.

경제사정이 매우 안 좋다. 3% 경제성장률을 지키기가 버겁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청년층을 비롯한 실업률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중소기업을 압박한다. 중국의 보복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변수로 등장했다. 북핵 위기는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가 오래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드러날 수 있다. 그 2년 뒤 치러질 21대 총선 때쯤은 정말 여론의 풍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당이 잘하지 않아도 여야 지지도가 탄핵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도 변하지 않아도, 가진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아도….

결국 탄핵이라는 참담한 사태를 겪고도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여야 지지도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갈증을 채워 줄 혁신은커녕 ‘누가 더 못된 놈인가’ 하는 나쁜 놈 경쟁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장은 그렇게 국회의원으로서 기득권을 유지할지 모른다. 야당으로 즐기는 것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 그곳에 국민은 없다. 태극기집회가 전부는 아니다. 탄핵을 비판하는 쪽에 서려면 상식적인 보수를 포기해야 한다. 정권 교체는 없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