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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슬의 만만한 리뷰] (11) 너무 사실적이어서 다소 충격적인, 영화 ‘죽여주는 여자’

중앙일보

입력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소영(윤여정 분)이 공원에서 노인을 상대하고 있다.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소영(윤여정 분)이 공원에서 노인을 상대하고 있다.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죽여준다’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말 그대로 ‘죽여준다’는 의미? 아니면 사람들이 좋은 장면이나 물건을 보고 감탄할 때 ‘야~ 죽인다’라는 의미?

65세 '박카스 할머니' 소영의 이야기 #윤여정, 연기 인생 50년 중 가장 파격적인 변신 #우리가 봐야하지만 외면했던 그들의 삶 #너무 사실적이여서 충격적인 현실

동사 '죽여주다'의 사전적 의미로는 1) 몹시 고통을 당하여 못 견디게 하다는 것과 2) 몹시 만족스럽거나 흡족하게 하다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죠. 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이 두 가지의 의미를 중의적인 표현으로 사용한듯싶습니다.

소재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한때 아니 지금도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박카스 할머니’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죠. ‘박카스 할머니’는 본래 1990년대 서울 남산 일대에서 택시기사들에게 박카스를 팔겠다고 접근하여 차 안에서 성행위 또는 유사 성행위를 해주던 ‘박카스 아줌마’로 부터 유래한 단어입니다. 요즘은 주로 종묘공원같이 중노년층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성을 파는 장년층 여성을 '박카스 할머니'라 말합니다.

소영(윤여정 분)은 코피노 아이 민호(최현준 분)를 집으로 데려온다.

소영(윤여정 분)은 코피노 아이 민호(최현준 분)를 집으로 데려온다.

65세 소영(윤여정 분)도 박카스 할머니로 서울 종로 일대에서 일명 ‘죽여주는 여자’로 불립니다. 업계에선 그녀가 ‘죽여주게’ 잘한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어느 날 임질에 걸려 병원을 찾은 그녀는 병원장과 필리핀 여성이 다투는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그 필리핀 여성은 잡혀가게 되고, 그 사건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코피노(Kopino: 한국인(Korean)과 필리핀인(F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혼혈아) 아이 민호(최현준 분)를 집으로 데려오죠.

그녀의 집에는 트랜스젠더 집주인 티나(안아주 분),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진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 분)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노인,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들여다 봅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재우(전무송 분)와 소영(윤여정 분)이 대화하고 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재우(전무송 분)와 소영(윤여정 분)이 대화하고 있다.

병 때문에 하루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버스안에서 소영은 우연히 그녀의 고객이었던 재우(전무송 분)를 만나게 됩니다. 그를 통해 한때 그녀에게 잘 해주던 세비로송(박규채 분)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죠.

세비로송은 멋진 정장차림에 연금도 많이 받아 소영에게 두둑히 챙겨주던 노인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중풍 때문에 쓰러져 요양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요양 병원으로 찾아갑니다.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에 갈수도 없고, 가족들은 더이상 그를 돌봐주지 않는 현실. 죽고싶어도 혼자 죽을 수도 없던 그는 마지막으로 소영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데요.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과 소영 역의 배우 윤여정.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과 소영 역의 배우 윤여정.

영화를 이끌어간건 무엇보다도 배우 윤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여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크린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소영'을 연기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심한듯 당당하죠.

극 중 감독 지망생과의 인터뷰에서 소영의 대사를 보면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들 손가락질 하지만, 나같이 늙은 여자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많은줄 알아? 꼴에 빈병이나 폐지 주우면서 살긴 죽기보다 싫더라고." 이어 "돈 되는거 해. 늙어서 나처럼 개고생하지 말고"라는 대사에서 내세울건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는 않다는 소영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배우 윤여정은 이 영화를 통해 제20회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할머니 소영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은 제20회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할머니 소영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은 제20회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7년 7월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14%(자료:통계청)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접어든 상황에서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갖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그저 영화로만 생각 되었다면 영화를 천천히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다가올 노년이 다소 무서워졌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은 취업이 어려워 아직 구직중인 친구들도 있고, 취업했다 하더라도 월세에 학자금에 각종 공과금까지 내면 월급은 그냥 남의 돈이지 라고 한숨을 쉬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에 대한 준비는 사치죠. 여러분의 노후는 준비되었습니까?

영화의 결말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말을 낼 수 있나 생각이 들다가 어쩌면 지금 현실에 부합하는 결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것 처럼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살다간 소영의 인생과 닮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죽여주는' 여자가 정말 '죽여주는' 여자가 됐을진 영화에서 확인해보세요.

죽여주는 여자

영화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영화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각본·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안아주, 최현준
촬영: 김영노
음악: 장영규, 김선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11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일: 2016년 10월 6일

현예슬 멀티미디어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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