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대범한 부모가 환영받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

추석 연휴 기간 ‘괌 뉴스’는 꽤 화제였다. 미국령 괌으로 가족 여행을 간 한국인 판사·변호사 부부가 아이들을 차 안에 방치한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된 사건 말이다. 부부의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이 미국에서 공개되면서 신상털이가 이어졌고 야유도 쏟아졌다. 공개적 망신을 당한 엘리트 법조인 부부에 대해 ‘거참 쌤통’이라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 비난들을 지켜보다 ‘그런데 어쩌면 나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온 가족이 번갈아 당번을 하며 애들을 키우지만 빈틈이 없을 수 없다. 집 앞 가게에 나가면서 ‘애 둘을 줄줄이 데리고 가느니 혼자 얼른 다녀오지 뭐’ 하고 나선 적, 차에 애들만 두고 약국에 다녀온 적, 아이의 어두운 표정을 짐짓 모른 체하고 야근한 적…. 아동 방임을 적극 처벌하는 나라에 살았다면 우리도 머그샷을 찍게 되었을지 모른다. 방임 원인이 관광지에서의 쇼핑은 아니었더라도 아이가 처한 물리적·심리적 상황은 다르지 않다. 비슷한 반성에서인지 ‘괌 뉴스’ 이후 아동의 안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잠깐,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안전에 대한 낮은 기준이나 아동을 방임해도 처벌이 가벼운 사법 체계만 탓할 일은 아니다. 현실에선 맞벌이 부부들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대범함’이 더 문제다. 회사에 조퇴한다는 말 꺼내기가 어려워 아픈 아이를 기다리게 하는 워킹맘들의 선택, 교육열 때문이 아니라 안전하게 맡길 곳이 없어서 아이를 ‘학원 순례’에 내보내는 선택은 사회적인 아동학대다. 아이만 집에 두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부모들의 선택은 종종 안타까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이런 ‘대범한 결정’이 우리 주변에 다반사다. 하지만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별일 아닌, 맞벌이의 애환 정도로 취급된다. 쇼핑이나 게임이 아닌, 일 때문이라면 정말 다 괜찮은 건가.

세계에서 가장 긴 한국의 노동 시간(2015년 기준 연간 2113시간)은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나눴어야 할 시간과 맞바꾼 기록이다. 지난 5월 대통령선거 기간 ‘칼퇴근법’이니, ‘수퍼우먼 방지법’ 이니 시끌벅적했지만 그새 조용해졌다. 역시 선거 캠페인용 구호 였나.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우리의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를 찾지 않을 만큼 자라 있을 것이다. 굳이 애를 낳아서 이런 고민을 사서 할 부부들도 줄어들 것이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