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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 '나의 엔젤'

중앙일보

입력

'나의 엔젤' 해리 클레븐 감독 & 줄리엣 반 도마엘 촬영감독 인터뷰

'나의 엔젤'

'나의 엔젤'

[매거진M] 온몸이 투명한 소년과 앞 못 보는 소녀가 사랑에 빠진다. 벨기에 영화 ‘나의 엔젤’(원제 Mon Ange, 10월 12일 개봉, 해리 클레븐 감독)은 이 신비한 사랑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것도 아름다운 멜로영화로 완성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해리 클레븐(61) 감독과, 줄리엣 반 도마엘(27) 촬영감독에게 서면으로 그 비결을 물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믿으면 진짜가 된다" 해리 클레븐 감독

'나의 엔젤' 해리 클레븐 감독

'나의 엔젤' 해리 클레븐 감독

━영화는 루이즈(엘리나 로웬슨)가 투명한 아기를 낳고, 그에게 마술사인 그의 아버지(프랑수아 빈센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가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마술사 이야기 혹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될 거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투명 인간이 진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수록 사람들은 더 쉽게 믿는다. 특히나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면, 관객은 그 ‘거짓말’을 기꺼이 믿고자 한다. 난 그것이 영화가 그릴 수 있는 ‘진짜’라고 생각한다.”

━투명 인간의 모습을 끝까지 하나의 형체로 드러내지 않는데.
“토마 귄지그와 함께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투명 인간 이야기는 많지만, 그 존재가 처음부터 투명하게 태어나는 이야기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이 투명 인간으로 변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 우리는 투명 인간이 앞 못 보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 새로운 도전에 매료됐다.
결국 우리는 투명 인간의 주관적인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로, 또 그의 형체를 완전하게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관객 각자 원하는 대로 투명 인간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관객이 투명 인간이 되는 기분으로 영화에 빠져들고, 이야기를 믿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투명 인간의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제로, 엔젤의 시점에 너무 강하게 빠진 나머지 마들렌의 향을 맡았다고 하는 관객도 있었다.”

━투명 인간 캐릭터의 이름을 ‘나의 엔젤’(Mon Ange)로 정한 이유는.
“비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특정한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불어에서 ‘Mon Ange’는 영어의 ‘스윗하트(Sweetheart)’와 비슷하게, 누군가를 애정을 담아 부르는 말이다.”

'나의 엔젤'

'나의 엔젤'

━어머니 루이즈를 빼고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엔젤의 존재를, 앞 못 보는 소녀 마들렌(한나 부드로)은 알아챈다. 하지만 마들렌이 성인(플뢰르 제프리어)이 되어 시력을 되찾자 다시 엔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엔젤의 존재를 느끼는 특별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앞을 보지 못할 때 마들렌은 세상을 느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 앞을 보게 되면서 그 능력을 잃고 평범해진다. 어느 누가 상상과 꿈이 객관적인 현실보다 덜 현실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사랑에 눈이 멀다’는 표현도 있지 않나. 사랑에 눈이 멀었을 때 우리는 온갖 감각에 민감해지고, 연약한 동시에 강인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열게 된다.”

━엔젤과 마들렌의 사랑으로 두 사람은 하나의 완벽한 존재를 이루는 것 같다.
“사랑할 때만큼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은 없다. 엔젤 역시 마들렌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존재함을 느낀다.”

'나의 엔젤'

'나의 엔젤'

━엔젤과 마들렌, 루이즈를 제외하면 다른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다시피 하는데.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만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기분 혹은 동화 속, 꿈속을 거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객관적인 현실이 아닌, 주관적인 시점으로 보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숲속에서 그린 이유는.
“시나리오를 처음 썼을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도시에 가까운 배경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듬을수록 루이즈가 머무는 정신 병원과 마들렌의 집, 엔젤의 오두막 말고는 다른 공간이 필요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 세 공간을 연결할 수 있는 건 숲뿐이었다.
숲이 주요 공간이 되면서 영화의 몽환적이고 동화 같은 느낌이 진해졌다. 숲의 초록색은 자유를 의미한다. 정신 병원을 대표하는 푸른색은 엔젤의 어머니인 루이즈를 나타내는 색이다. 마들렌은 주로 붉은색으로 나타난다. 머리칼·옷·침대 모두 붉은색이다. 이는 영화에 나타나는 ‘마법’의 요소와 연결된다.”

'나의 엔젤'

'나의 엔젤'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감독으로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비이성적고 감각을 자극하는 이야기, 무의식, 꿈, 감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런 것들이 잘려 나간,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잘려 나간 부분을 되살리는 건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도전일수록 더욱 흥미로운 것 아니겠나.”

"카메라가 엔젤이 돼야 했다" 줄리엣 반 도마엘 촬영감독

'나의 엔젤' 줄리엣 반 도마엘 촬영감독

'나의 엔젤' 줄리엣 반 도마엘 촬영감독

━영화 전체가 마치 꿈속을 걷는 듯 비밀스럽고 아늑한 느낌이다.
“투명 인간 엔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이 영화의 기본적인 콘셉트였다. 엔젤이 마들렌을 보고 느끼듯, 관객 역시 마들렌과 사랑에 빠지게 하고 싶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조명 속에서 마들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 했다.”

━끝까지 그 형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투명 인간 엔젤의 존재를 어떻게 그릴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을 것 같은데.
“카메라를 잡은 나 자신이 엔젤이 되어 그의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엔젤의 감정에 따라 어떤 장면을 흐릿하게 혹은 어둡게, 아니면 일렁거리는 느낌으로 촬영할 건지 정했다. 또한 엔젤이 루이즈나 마들렌과 어떤 동작을 함께하는 장면, 예를 들어 루이즈가 엔젤에게 밥을 먹이거나, 엔젤이 마들렌을 안는 장면 등도 촬영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의 엔젤'

'나의 엔젤'

━촬영 준비를 꼼꼼히 했을 것 같은데.
“촬영 전 한 달 반 정도는 해리 클레븐 감독과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스토리보드를 작업했다. 엔젤의 눈에 보일 만한 것들을 사진으로 찍으며 방향을 잡아 나갔다. 연인이기도 한, 피에르 드 부스템베르거 조명감독과도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우리 아파트가 작은 연구실이 될 정도였다. 특히 엔젤의 투명한 눈으로 보는 풍경을 구현하기 위해, 그 눈꺼풀의 ‘투명함’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카메라 렌즈에 글리세린을 발라 보기도 했다. 그 장면은 여러 특수효과를 더해 완성했다.”

━숲에서 촬영한 장면이 정말 근사하다. 자연의 녹색과 부드러운 햇빛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현실 세계를 초월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 위해 대부분의 장면을 자연광으로 찍어 부드러운 느낌을 냈다. 초록·빨강·파랑 등 영화의 주를 이루는 세 색감의 장면을 구상하기 위해, 사울 라이터와 사라 문의, 다채로운 색과 몽환적인 느낌의 사진들을 참고했다.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나의 엔젤'

'나의 엔젤'

━마들렌과 루이즈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는 장면이 많은데.
“카메라가 엔젤이 되어, 마들렌과 루이즈 역의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 느낌으로 촬영했다. 배우들과 서로를 돌보고 함께 호흡하는 기분이 특별했다.”

━첫 장편 촬영작이다.
“20대에 그 기회를 얻어 기쁘다. 해리 클레븐 감독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다. 여러 세대가 머리를 맞대는 분위기였다. 작품 하나하나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영화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딸이다. 그가 영화에 대해 준 가르침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미스터 노바디’(2009)를 찍을 때, 크리스토프 보칸 촬영감독이 작업하는 걸 보고 촬영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 역시 촬영에 관심이 많다. 취향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를 때도 있지만, 아버지는 훌륭한 영화 동료이자 멘토다. 아버지는 늘 직감을 믿으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긍정의 힘을 주는 것 같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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