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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외면하지 말아주세요"…눈물바다 된 복지부 국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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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국회에서 열린 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학대 피해 아동 어머니 이모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국회에서 열린 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학대 피해 아동 어머니 이모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매일매일 고통의 나날입니다. 창살 없는 감옥이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아이와 너무 힘들게 살고 있어요."

13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도중 한 여성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전 남편에게 학대받은 5살 딸을 언급하면서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부른 '아동학대' 피해자 가족 이모씨와 김모씨다.

아동학대 현실 밝히러 나온 어머니들 '눈물' #"매일매일 고통의 나날, 경제 활동도 못 해" #어린이집 학대 겪은 어머니, 경찰 수사 지적 #"피해 가족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지원 없어" #눈물 섞인 호소에 국감장엔 무거운 침묵만 #피해가족 대표 "예산 부족한데 내년 더 줄어"

  이씨는 '강원 동해시 친부 아동 학대 사건의 피해자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정상으로 태어났던 아이가 아동학대로 인해 뇌 병변 1급 장애를 얻게 됐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누워있고 모든 걸 제가 다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아동학대 피해자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아동학대 피해자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와 함께 재활치료를 하다 보니 경제활동을 못 하고 있다. 겨우 보험금을 받게 됐는데 그것조차 기초수급자 재산으로 묶여서 탈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인 의원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라'고 말하자 목이 메어 겨우 말을 이어갔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을 위한 법은 하나도 마련이 안 돼 있어요.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스스로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아동 학대 피해자 보호법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혜정 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 대표(왼쪽)가 13일 열린 복지부 국감에 나와서 학대 피해 가족 지원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정종훈 기자

서혜정 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 대표(왼쪽)가 13일 열린 복지부 국감에 나와서 학대 피해 가족 지원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정종훈 기자

  강원 원주시 어린이집에서 학대 피해를 겪었다는 김 씨도 말하는 내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지원과 경찰 수사가 부실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아이는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데 진정시켜주거나 진술하도록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영상만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소되고 재판이 진행됐어요. CCTV 영상을 확인해보니 5명인가 피해자가 더 있었는데 경찰은 조사도 안 했고 피해 부모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김씨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가족은 어떤 지원 절차가 있는지 알지 못 하고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면서 "그런 부분을 좀 더 체계적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발언을 듣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제 역할 충분히 하지 못 하는 현실을 알게 됐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아동학대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앙포토]

아동학대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앙포토]

  눈물의 호소가 이어지자 의원들과 복지부 공무원들로 가득 찬 국감장엔 침묵만 흘렀다. 학대 피해 가족들의 발언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의원 질의도 연장됐다. 이날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서혜정 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 역시 학대 피해 아동의 어머니다.

  서 대표는 "4년 전 저희 아이는 한쪽눈이 실명됐다. 아이를 지키지 못 한 걸 다른 피해 가족을 도우면서 용서받고자 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올해 아동학대 예방 예산이 266억원이다. 이 작은 예산 가지고는 (피해 아동) 쉼터도 더 이상 늘릴 수 없다. 내년 예산은 되려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언 말미에 마지막 호소를 했다.

"저출산 대책 좋습니다. 그런데 낳아놓은 아이도 지키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한 해 평균 2만명의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받습니다.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장관님."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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