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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경제라인은 왜 TK가 장악했을까…장하성 실장, 대구시장에게 "경제는 TK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하하하! 청와대 경제라인은 저만 빼고 다 TK 사람들이에요.”

지난 7월 대구시청을 찾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의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던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건넨 말이다.

'호남 약진' 속 유독 경제라인만 'TK'가 장악 #정책실 산하 수석보좌관 전원이 TK출신 인사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5일 대구를 방문해 새 정부 경제정책과 추가경정예산에 관해 설명하고 지역 현안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대구시청 접견실에서 장(왼쪽) 실장과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야기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5일 대구를 방문해 새 정부 경제정책과 추가경정예산에 관해 설명하고 지역 현안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대구시청 접견실에서 장(왼쪽) 실장과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야기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두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정권교체에 따라 대구는 ‘정부의 핵심지’에서 ‘야권의 핵심지’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상태였다. 지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영남 홀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권 시장도 이 때문에 장 실장에게 “수도권의 사람과 돈과 일자리가 ‘추풍령 이남’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말부터 꺼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선 호남 인맥이 약진했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63명과 장ㆍ차관급 78명, 4대 권력기관 고위직 26명, 군 8명 등 175명 중 호남 출신은 45명(25.7%)에 달한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만 따로 분류해도 23.8%가 호남 출신이다.

그런데 유독 정책실 등 청와대 경제라인만은 예외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하성 정책실장, 주영훈 경호처장, 조국 민정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홍장표, 반장식, 김수현 수석 등 정책실 소속 수석보좌관 3명은 모두 TK출신 인사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월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하성 정책실장, 주영훈 경호처장, 조국 민정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홍장표, 반장식, 김수현 수석 등 정책실 소속 수석보좌관 3명은 모두 TK출신 인사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광주 출신인 장하성 실장을 제외하고, 정책실 산하의 수석비서관 전원이 TK(대구ㆍ경북) 출신이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대구(달성고), 반장식 일자리수석은 경북 상주(덕수상고), 김수현 사회수석은 경북 영덕(경북고) 출신이다. 이밖에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직접 보좌하는 김현철 경제보좌관 역시 경북 김천 출신으로 대구 심인고를 나왔다.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은 경남 산청 출신이지만 경북에 있는 포항공대에서 박사 과정까지 마쳐 ‘반(半) TK’에 가깝다.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왼쪽)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첫 참석하며 김현철 경제보좌관의 안내를 받고 있다. 문 보좌관은 경남, 김 보좌관은 경북 출신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왼쪽)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첫 참석하며 김현철 경제보좌관의 안내를 받고 있다. 문 보좌관은 경남, 김 보좌관은 경북 출신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들의 역할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제1 과제로 내세운 일자리를 비롯해 혁신성장 등 소위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책임자라는 점이다. 결국 장 실장이 권 시장에게 건넨 말에는 ‘영남에 대한 경제적 역차별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장 실장의 말에 권 시장의 표정부터 밝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비공개 회동이 끝난 뒤 장 실장은 “대구가 추진하는 전기차 기반 자율주행차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권 시장은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말로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장병규 위원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대구과학고를 졸업한 TK인사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장병규 위원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대구과학고를 졸업한 TK인사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경제라인에서의 ‘TK 약진’은 지난 10일 공식 임명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으로 정점을 찍었다. 장 위원장은 대구과학고를 나온 대구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4차산업혁명위원회 첫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위원회가 4차산업혁명의 컨트롤타워”라며 “민간과 정부의 범국가적 역량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4명의 장관이 참여한다. 공교롭게 이들도 ‘영남색’이 강하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부산,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남 마산 출신이다. 낙마하긴 했지만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역시 부산 출신이다. 박 전 후보자가 낙마하지 않았다면 서울생인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제외한 4명 중 3명이 영남출신으로 채워졌을 거란 뜻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3일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경제라인의 구성과 관련된 의도를 참모가 설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먹고 사는 문제를 담당하는 요직에 영남권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점은 '국민통합 정부'를 공약한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정적 요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상황판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상황판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정책실의 영남 인사 비율과 관련해 “정책실에는 선거 공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상대적으로 적고 부처 출신 전문가인 ‘늘공(늘상 공무원)’의 비율이 높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며 “과거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을 맡았던 오중기 선임행정관 등 TK출신 어공들은 오히려 ‘늘공ㆍ어공’이라는 말보다는 ‘출신과 무관한 준공(준비된 공무원) 또는 참공(참된 공무원)이 되자’며 혹시 모를 치우침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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