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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자격시비 헌재 국감 파행…“헌재 없애야” 막말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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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하는 거예요. 빨리 나가세요.”(김진태 의원)
“앉아있겠다는데 왜 그래요!”(박범계 의원)
“조용히 하세요!”(권성동 법사위원장)
“왜 나한테만 그래!”(박범계 의원)

 13일 오전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말싸움을 하고 있다. 김이수 권한대행의 업무보고 인정 여부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으로 국감은 열리지 못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말싸움을 하고 있다. 김이수 권한대행의 업무보고 인정 여부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으로 국감은 열리지 못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장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 사이에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야당 의원들이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인사말 듣기를 거부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김 소장대행 인사말 하려 하자 야당 거부 #사퇴 요구·탄핵 으름장, 막말 난무해 #여야 충돌 끝에 1시간30분만에 중단

양쪽의 공방이 오가는 동안 김 대행은 발언대 옆 자리에 앉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공방이 오래 걸릴 듯하니 잠시 방에 가셨다가 정상 진행될 때 들어오시는 게 좋겠다”며 회의장에서 나가주길 요구했지만 김 대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가라는 야당 위원들과 김 대행을 두둔하는 여당 위원들 사이에서 김 대행은 1시간30분 동안 계속된 공방을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재판관직 사퇴 요구 등 자신을 향한 비난에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13일 헌법재판소에 열린 국정감사장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여야간 공방에 눈을 감은 채 침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13일 헌법재판소에 열린 국정감사장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여야간 공방에 눈을 감은 채 침묵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파행은 예고돼 있었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0일 당분간 새 소장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고 김이수 대행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게 빌미였다. 청와대는 국회가 소장 임기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해 줄 때까지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청와대가 김 대행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을 인정하지 않고 김 대행이 내년 9월 임기를 마칠 때까지 대행직을 유지하도록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상 소장으로 임명한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었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헌법기관 구성의 의무' 위반이란 비판도 나왔다. 헌재 안팎에선 “청와대가 헌재를 하부기관처럼 다룬다”는 불만도 나왔다. 새 소장 임명을 일부러 늦춰 헌재의 비정상 체제를 장기화한다는 불만이었다.

국감 전날(12일) 국민의당 법사위 간사인 이용주 의원은 헌재 국감을 보이콧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김이수 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청와대 발표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다른 야당들의 동참을 끌어내지 못했다.

"김이수 대행체제 유지" 청와대 발표가 발단

이날 공방의 불을 당긴 것도 이 의원이었다. 관례상 위원들의 질의가 시작되기 전 헌재소장이 나와 인사말을 하는데 이 의원은 김 대행이 인사말을 하기 직전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그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헌재소장 대행체제 유지 방침은 위법적인 소장 체제”라며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소장이 인사말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이날 예정된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이날 예정된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법사위원들도 김 대행의 자격 문제와 함께 청와대의 부적절한 발표를 문제 삼았다.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 “청와대 발표는 국회를 무시하고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며 “청와대가 헌재의 대행체제를 언급할 이유도 없고, 대변인이 발표하는 것 자체가 헌재를 하수인으로 본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대행을 누가 하느냐는 헌법재판관들의 권한”이라며 “박수현 대변인의 발언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다만 “김 대행은 재판관회의에서 대행으로 선출돼 지금까지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인사말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김 대행은 제가 민주당 원내대표로 있을 때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했던 분”이라며 “김 대행이 소장 후보로 지명된 뒤 여당과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이념적 오해가 문제될 수 있으니 대국민 설득에 나서라고 했지만 ‘대통령 지지도가 이렇게 높고, 호남 출신인데 국민의당이 반대하겠느냐’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소장 대행을 하는 건 문제될 게 없지만 (대행 체제 유지에 대한) 청와대 발표가 오해를 불러왔으니 청와대가 해명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13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정감사가 여야 공방으로 중단된 뒤 박지원 의원이 김이수 권한대행(오른쪽)에게 악수를 청하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정감사가 여야 공방으로 중단된 뒤 박지원 의원이 김이수 권한대행(오른쪽)에게 악수를 청하며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 없애겠다" "재판관 탄핵" 막말까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더욱 격앙된 말을 쏟아냈다. 한국당 의원들은 김 대행을 ‘대행’이 아닌 ‘재판관’으로 호칭했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윤상직 한국당 의원은 “국회에서 임명동의안 부결된 분이 국감에 나오셔서 대행으로 인사말을 하시겠다는 건 정말 거북하다”고 말했다.

김 대행을 향한 사퇴 요구와 더불어 헌재를 없애겠다는 막말까지 쏟아졌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개헌 논의 이뤄질 때 헌법재판소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행과 서울지법 판사로 함께 근무했던 여상규 한국당 의원은 “왜 정권이 벌이는 굿판에 장단을 맞추려 하느냐”며 “이제는 김 재판관께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사퇴하시라”고 말했다.

오신환 의원은 “헌법 65조에는 헌법재판관도 국회에서 탄핵소추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헌법재판관은 과반 이상이면 탄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행을 탄핵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김이수 헌재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장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김이수 헌재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장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 발표가 일부 부적절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김 대행의 자격 문제에 대해 “문제될 게 없다”며 반박에 나섰다.

정성호 의원은 “청와대에서 불필요하게 대변인이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헌재 대행체제에 관해 말한 건 바람직하지 못한 감은 있다”면서 “헌재를 없애겠다는 둥 급기야 헌법재판관 탄핵까지 거론하는 건 헌재를 모독하고 위상을 깎아내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응천 의원은 “김 대행의 소장 후보 인사청문회를 하고도 석 달 넘게 동의안 처리를 안하다가 부결시킨 것은 과연 국회가 언재를 헌법수호의 보루로 인정하는 태도였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 권능이자 의무인 국정감사는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국감은 권성동 위원장이 개회한 지 1시간 30분만에 정회를 선언한 뒤 더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권 위원장은 "여야 4당 간사 협의 결과 오늘 감사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조만간 기일을 다시 지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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