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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의 직격 인터뷰

소년범에겐 ‘가출’이 아니라 ‘탈출’ … 가정 회복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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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소년범들에게 ‘호통 판사’로 통하는 천종호 부장판사는 11일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소년범의 죄는 엄벌하되 ‘가정식 교화’를 통해 인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소년범들에게 ‘호통 판사’로 통하는 천종호 부장판사는 11일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소년범의 죄는 엄벌하되 ‘가정식 교화’를 통해 인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부산의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의 꿈은 판사였다. 7남매 중 넷째(장남). 지방대 법대에 진학해 5전6기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언젠가 변호사로 개업해 돈을 많이 벌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진로는 소년 재판을 담당하며 확 바뀌었다. 자청해 소년 재판을 8년째 전담하며 청소년회복센터(일명 ‘사법형 그룹홈’) 제도를 국내에 정착시켰다. 지금은 ‘소년범의 아버지’로 불린다. 영화 ‘슬럼독 밀리네어’의 주인공 ‘자말 말릭’을 연상케 하는 천종호(52)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를 11일 판사실에서 만났다. 인천 8세 초등학생 살해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등 냉혹해지는 10대 범죄의 원인과 대책을 들었다.

부산 여중생 폭행은 2017년형 사건 #학교 내 폭력 엄벌하자 풍선효과 #소년원 송치 기간 다양화해야 #2011년부터 청소년회복센터 도입 #추석 때 귀가 170여 명 전원 복귀 #영화 친구 등장 인물, 중학 동창

청소년 범죄가 날로 흉포화하는 원인이 뭔가.
“몇 년 전부터 경고했던 일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학교폭력이 이슈화된 건 2011년 12월 권모군 자살사건 때다. 이듬해 대구·경북 등에서 학생 10여 명이 연쇄 자살하며 커졌다. 학교 내에서 친구 간 괴롭힘, 강요·모욕 행위가 특징이다. 소위 ‘2012년형 학폭사건’이다. 반면에 부산 여중생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안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다. 피해자도 학교에 두 달가량 결석했다. 사소한 괴롭힘이 아니라 잔인한 폭력이 동반됐다. 가정은 해체되고 학교엔 보살필 시스템이 없다. 지나가던 어른들도 폭행을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학교 밖 폭력이 문제다. 가정·학교·사회가 간접적으로 개입돼 있다. 특히 아이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드러내는 무감각 시대가 됐다는 건 심각한 위험 징후다. 2017년형 사건이다.”
왜 학교 밖 폭력으로 번졌나.
“2012년 이후 학교 내 폭력을 엄단하니 자퇴하거나 대안학교로 간 친구들의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학교 내 폭력은 줄었으나 학교 밖 폭력이 급증해 대처가 시급하다.”
가장 큰 요인은.
“가정의 해체다. 집 나가는 아이들은 ‘가출’이라고 하지 않는다. ‘탈출’이라고 한다. 학대당하는 아동은 맞아 죽거나 탈출하는 외에 다른 수가 없다. 초등학생까지는 자신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울산 계모 학대사건이 터지고 당국에서 사라진 아이들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조사했다. 그러면 아동학대가 조금 수그러든다. 그러나 일과성에 그친다.”
현장에서 바라본 실태는 어떤가.
“이번 추석 때 청소년회복센터에 소속된 여학생 5명과 금정산에 올라갔다. 한 여학생이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니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 지나갔다.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화장지를 한 롤 다 풀어서 변기를 막는 아이도 있다. 마음이 맺힌 것도 있지만 교육이 안 된 탓도 있다. 인성교육진흥법도 만들어졌지만 학교가 할 수 없다.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학교 교육은 돈 낭비밖에 안 된다.”
천종호 부장판사 사무실 탁자 풍경. 소년범 부모와 지인 등으로부터 선물받은 찻잔들이 놓여있다. 조강수 기자

천종호 부장판사 사무실 탁자 풍경. 소년범 부모와 지인 등으로부터 선물받은 찻잔들이 놓여있다. 조강수 기자

왜 자꾸 반복되나.
“내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아동친화사법’ 자문단장을 맡고 있다. 최근 한국 판사님이 괌에서 아이를 차에 두고 내렸다가 머그샷까지 찍힌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동에 대한 관점과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다. 부부가 법조인으로서 아동친화적인 사법에 앞장서야 하는데 그 정도다. 일상적인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에 좀 더 예민해져야 한다. 엽기적인 사건보다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이 더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죄는 엄벌하되 죗값을 치르고 나면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아가 세금 축내지(?) 않고 어엿하게 살아갈 수 있게 가정·학교·사회가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
이번에 소년법 폐지 주장까지 나왔다. 시기상조라고 보나.
“그렇다. 부작용이 너무 많다. 폐지보다는 흉포한 범죄라면 일본이 20년 전에 했듯이 14세 미만이라도 처벌 형량을 높이는 쪽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다. 엽기적 사건은 전체의 5% 안팎이다. 이들을 엄벌하기 위해 소년법을 폐지하면 나머지 95% 사건도 형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 전과자가 양산될 소지가 크다. 초등학교 6학년생도 법정에 세워야 하고 그 친구들도 증인으로 불러 심문해야 한다. 선거법, 민법, 청소년보호법상 미성년 규정 등도 다 고쳐야 한다. 전체적인 법 체계에서 다뤄야 할 문제다. 현재 14세 미만의 경우 최장기 소년보호처분이 소년원에 2년 보내는 것이다. 소년보호처분이 2년, 6개월, 1개월의 세 가지뿐이다. 판사들의 재량이 거의 없다. 일본은 소년원 송치 기간의 제한이 없다.”
왜 소년원 송치 기간이 그렇게 됐나.
“우리도 2008년 이전에는 기한 제한이 없었는데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개악됐다. 소년원 과밀화가 문제다. 최소 20~30개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전국에 10개소뿐이다. 일본은 50개소다. 그마저 정원이 120% 초과 상태다. 정원의 70%가 교정의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소년범을 엄벌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다.”
소년범들의 대안가정으로 설립한 ‘청소년회복센터’의 성과는.
“창원지법에 근무할 때 통계를 파악해 보니 소년 사건 70%가 저소득층 결손가정에서 나왔다. 가정에 뿌리가 없고 학교에서 마찰을 일으키면 학교 밖으로 밀려간다. 이런 친구들의 95%는 일시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 건질 수 있는 아이가 많다. 다만 강제로 가정을 재결합시킬 수는 없으니 인성교육과 가정·사회 관계의 회복을 경험하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2011년 11월 청소년회복센터를 개소했다. 지금 전국에 19개로 늘어났다. 수용 인원이 적은 소년원 두 개 규모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절감된다. 이번 추석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국 19개 센터가 위탁 아동 170여 명을 연휴 10일간 전부 귀가시켰는데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돌아왔다. 여기서 6개월 지낸 아이들은 재범률이 ‘0’이다.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있다. 소년원에 수용된 아이들보다 취업 시 전직률도 낮다.”
어려운 점은 없나.
“해군에서 정년퇴직하신 부부가 적극 나서 독채나 상가건물을 개조해 거의 자비로 운영해 왔다. 사법부가 지원하는 건 위탁 아동 1인당 교육비로 월 50만원과 일부 후원금이 전부다. 독일의 지원센터인 ‘HEIM’은 연간 7800만~9600만원을 지원받고 일본도 평균 760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러다 1년 전에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돼 지원센터가 공식 시설이 됐다. 공식 예산만 지원해 주면 전국적으로 할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부가 예산을 주지 않고 있다.”
지난 8년간 소년범 1만2000여 명을 재판했다.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2012년 창원지법 근무 때 임신한 여고 1년생이 성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여고생이 거짓말을 했다. ‘어떤 아저씨와 성매매를 했는데 돈을 안 줬다. 그때 임신해 낙태해야 하니 석방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조사해 보니 배 속의 아이는 남자 친구의 애였다. 소년원에 2년 보내는 10호 처분을 하게 되면 거기서 출산해야 했다. 내 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 달 정도 고민하다 비행 내용이 중하고 나가면 낙태할 게 뻔해 10호 처분을 했다. 소년원은 아기를 보살필 여건이 안 됐다. 다시 여고생을 법정으로 불러 배냇저고리 하나를 사서 주고 잘 키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아기를 낳은 뒤 입양시켰다. 엄벌과 교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10호 처분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해 별명이 ‘천10호’다.”
천종호 부장판사 사무실 한 켠에 중학생이 그린 천 부장판사 초상화, 대학생이 성경 구절을 새겨 건넨 부채, 유치원 아이들이 만들어 선물한 앨범과 꽃다발이 나란히 놓여 있다.(사진 왼쪽부터) 조강수 기자

천종호 부장판사 사무실 한 켠에 중학생이 그린 천 부장판사 초상화, 대학생이 성경 구절을 새겨 건넨 부채, 유치원 아이들이 만들어 선물한 앨범과 꽃다발이 나란히 놓여 있다.(사진 왼쪽부터) 조강수 기자

소년 재판 전담을 자청했다던데.
“내가 강력하게 원했다. 8년째 전담하는 전례가 없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인사위원회까지 열어서 허락해 줬다.”
어린 시절 어떤 소년이었나.
“부산의 아미동 까치고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 판자촌이 들어섰던 빈민가다. 7남매 중 장남이다.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지금도 살던 집이 산비탈에 있다. 형제 중 나 혼자 대학을 나왔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공부였다. 적록색약이라 이과는 못 가고 문과밖에 갈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판사를 꿈꿨다.”
그러면 사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겠다.
“특정 계층이 특정 지위나 직업을 차지하게 되면 사회가 전체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계층 사다리도 있어야 다양해지고 원만하게 조직이 돌아가지 않을까 본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 나오는 조폭 중에 친구가 있다는데.
“곽 감독과 유오성씨가 연기한 칠성파 간부가 중학교 친구다. 그 간부는 중2 때 자퇴했다. 장동건씨가 연기한 친구는 영도 사람이다. 건너 건너 다 아는 소싯적 친구들이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부인의 내조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중·고교가 같이 있는 사립학교의 교사다. 최근 내가 낸 책 인세 수입 7000만원과 출판기념회 때 들어온 2000만원,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상금 1000만원 등을 전부 아이들을 위한 사업에 기부했다. 아내가 ‘아이들 얘기 갖고 쓴 책 인세를 허투루 쓰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손아래 동생에게 일부 주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옳은 말을 하니 들을 수밖에 없다.”
소년범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 사회를 자연의 숲에 비유한다. 자연의 숲은 한 나무를 거목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의 못난 나무들을 가차없이 벌목한다. 인간의 숲은 간벌이 안 된다. 사형 집행도 20년간 안 하고 있지 않나. 결국 어느 한 귀퉁이에서 공존해야 한다.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 주위에 좋은 이웃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소년범들은 내 아이의 이웃이고 우리의 미래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

경남 산청이 고향이다. 1997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해 올해로 21년째 판사 생활을 하고 있다. 2010년 2월 창원지법에 부임하면서 소년재판을 시작했다. 청소년회복센터 ‘사법형 그룹홈’ 제도를 제안해 이듬해 11월부터 문을 열게 했다. 여기엔 보호자 감호위탁(소년법상 보호처분 1호)을 받은 19세 미만 소년범 중 일부가 6개월 동안 생활한다. 소년 재판 이야기를 담은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등을 냈으며 세 번째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