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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올라탔더니 알아서 안전벨트 채워주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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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8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경찰이 청각장애 운전자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속도위반을 이유로 차를 세우라고 했지만, 소리를 들을 수 없던 운전자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경찰은 13㎞를 더 달리다 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온 운전자에게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을 쐈다.

현대·기아차 아이디어 페스티벌 #로봇 팔 이용해 심부름 해주는 차량 #자동으로 세차하는 시스템 선보여 #수화 인식하는 내비게이션도 등장

청각장애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적을 듣지 못해 위험을 재빨리 감지하기 어렵고, 경찰차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듣지 못해 오해를 사기도 한다.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차임을 알리는 표지를 부착하도록 하고 있지만, 부착률이 떨어진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현대·기아자동차 연구원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올해 8회째를 맞은 ‘2017 R&D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한 ‘심포니’ 팀이 주인공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촌 형이 운전 중에 겪는 어려움을 지켜본 이성현(29) 연구원의 고민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차량 외부 소리를 시각화·진동화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운전석 앞에 설치된 LED 전등이 불을 번쩍이고, 동시에 운전자 손목에 착용한 밴드가 ‘찌르르’ 진동을 보낸다. 외부 소리를 주파수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알려줄 수도 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차량 앞에 빨간색 불이 켜졌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초록색 불이 켜지는 것이다. 또 내비게이션 화면과 모션 인식 센서를 통해 수화를 음성·텍스트로, 음성을 수화로 바꿔줘 청각장애 운전자와 가족들이 차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시연장에선 참가자가 모션 인식 센서에 수화를 하자 내비게이션이 ‘커피 한잔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각장애 운전자도 차에 앉아 ‘드라이빙 쓰루(driving-thru)’ 코너에서 커피를 시킬 수 있다.

대상을 차지한 ‘심포니’. 모션 인식 센서가 수화를 인식해 음성과 텍스트로 바꿔준다. [사진 현대·기아차]

대상을 차지한 ‘심포니’. 모션 인식 센서가 수화를 인식해 음성과 텍스트로 바꿔준다. [사진 현대·기아차]

12일 현대·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진행된 ‘2017 R&D 아이디어 페스티벌’ 본선에서는 심포니팀을 포함해 8개 팀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뽐냈다. 자동차만이 아닌, 차세대 ‘이동수단(Mobility)’ 전반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로모’ 팀은 생활보조 로봇과 1인용 모빌리티를 결합한 제품을 제작해 선보였다. 의자와 바퀴를 단 전동카트 모양의 모빌리티에 로봇 팔을 장착했다. 완성도를 높여 제작하면 사람이 직접 타거나 무거운 짐을 싣고 이동할 수 있고 로봇 팔을 이용해 간단한 심부름도 수행할 수 있다.

‘더스트 버스터’의 로봇 청소기를 이용한 자동 세차 기술. [사진 현대·기아차]

‘더스트 버스터’의 로봇 청소기를 이용한 자동 세차 기술. [사진 현대·기아차]

‘더스트 버스터’ 팀도 로봇을 활용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차량 전면부에 탑재된 로봇 청소기가 주차 중인 차 표면을 따라 이동하며 자동으로 세차를 해주는 시스템이다. 더스트 버스터팀은 대회에서 차량에 흰 가루를 뿌리고 청소기가 스스로 가루를 닦아내며 차체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시연했다. 시제품이라 로봇 청소기의 움직임이 매끄럽진 않았지만, 아이디어가 실제 구현된다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주차해 둔 차가 다음날 깔끔한 모습으로 주인을 반겨주는 꿈같은 일이 실현될 수도 있다.

‘팅커벨트’의 안전벨트 자동 착용 시스템. [사진 현대·기아차]

‘팅커벨트’의 안전벨트 자동 착용 시스템. [사진 현대·기아차]

‘팅커벨트’ 팀이 선보인 안전벨트 자동 착용 시스템은 편리함과 함께 안전성까지 높여주는 아이디어다. 탑승자가 차에 앉으면 ‘가이드’라는 장치가 안전벨트를 끌고 나와 자동으로 몸을 감싸고 버클까지 채워준다. 몸이 불편해 혼자서 안전벨트를 채우기 힘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안전벨트를 잘 착용하지 않는 뒷좌석 탑승자나 아이들의 착용률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또 ‘자동 착용’이라는 점 자체로 하나의 고급 옵션이 될 수도 있다.

자전거·휠체어 등에 부착하면 전동 모빌리티로 변신시켜주는 다재다능한 공유형 모빌리티 ‘모토노프’도 호평을 받았다. 자판기 모양의 대여소에서 전동 휠 모양의 모토노프를 빌려 직접 타고 다닐 수도 있고, 자신의 자전거나 휠체어에 부착하기만 하면 페달을 밝거나 손으로 바퀴를 굴리지 않아도 전기로 이동하는 ‘전동 모빌리티’로 쓸 수도 있다. 누구나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만큼 쓰고 반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유 서비스인 것이다.

‘1인용 모빌리티’와 로봇 팔을 결합한 ‘로모’. [사진 현대·기아차]

‘1인용 모빌리티’와 로봇 팔을 결합한 ‘로모’. [사진 현대·기아차]

높낮이를 조절해주는 작은 봉 모양의 ‘리니어 엑츄에이터’로 차량 바닥을 채워 내부 공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플루이딕 스페이스’, 눈·비·황사 등 외부 오염이나 ‘문콕 테러’로부터 주차 중인 차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자동식 전동차고 ‘쉘터’도 눈길을 끌었다. 또한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홀로그램 이미지로 안전운전을 도와주고, 주행 기록에 따라 코인을 적립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생각해 낸 ‘착한자동차’ 팀은 대회 청중 평가단에게 최고 점수를 받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양웅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장애인 편의와 안전 관련 기술은 다 적용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아이디어들도 발전시켜서 양산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원들이 협력을 통해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라고 대회를 본 소감을 밝혔다.

화성=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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