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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7)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 무조건 발코니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동생이 전화 해 B사에서 출시한 신형 세단에 대해 열심히 칭송했다.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여동생이 전화 해 B사에서 출시한 신형 세단에 대해 열심히 칭송했다.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어느 날 망원동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협상 테이블서 감정은 방해물이자 자산 #본인·상대 감정 파악해 활용하는 게 중요

“오빠, 혹시 B사에서 이번에 신형 세단 출시한 사실 알아?”
“응, 요즘 보니까 이런저런 홍보 많이 하던데. 왜? 차 사게?”
“응, 지금 생각 중인데, 좀 알아보니까 B사에서 이번에 나온 신형 세단이 디자인도 이쁜 데다가, 안전성이랑 연비가 동급 최고 수준이고, 잔 고장이 전혀 없다고 그러네. 지금 3년째 타고 다니는 중고차가 잔 고장이 많아서 스트레스 진짜 많이 받았는데 이번 기회에 그걸로 바꿀까 봐. 프로모션도 꽤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신형 차 칭찬하는 여동생의 숨은 의도 

그녀는 내게 B사의 신형 세단에 관해 열심히 칭송을 늘어놓고 있지만, 나는 그녀의 숨은 욕구가 ‘차를 바꿔야 하는데 돈을 좀 보태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명시적으로 맞장구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근데 얘가 왜 뜬금없이 B사의 신형세단을 이야기하나?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나는 숨은 이해관계인이 누구인지 알아내 공략하기로 했다. 바로 그녀의 남자친구. 나는 그에게 카카오톡을 보내 갑자기 동생이 왜 차를 바꾸려고 하는지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제공했다.

동생의 절친한 친구가 SNS에 올린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pixabay]

동생의 절친한 친구가 SNS에 올린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pixabay]

알고 보니 한두 달쯤 전에 동생의 절친한 친구가 B사의 신형세단을 뽑아 드라이브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동생은 그게 그렇게 부럽고 질투가 났던 것이다. 그 사진을 보고 나서부터 동생은 틈만 나면 B사의 신형 세단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적인 이유로 결정하고 논리적인 이유를 댄다.’ 최근 협상학계에서는 감정이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하버드협상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다니엘 샤피로(Daniel Shapiro)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Beyond Reason)’를 통해 “감정은 종종 협상에 방해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위대한 자산이 될 수 있다”며, 협상테이블에서 본인과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협상 유리하게 이끌 네가지 팁 

협상 테이블에서 감정을 적절히 활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네가지 팁을 소개한다.

하나, 협상 시작 전 15분을 공략하라.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15분 전 협상테이블에 먼저 도착해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긴장을 풀고, 기회가 된다면 상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협상 시작 전 상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협상 시작 전 상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미팅 전 보내주신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세심하게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따님이랑 찍은 사진이 너무 보기 좋던데요. 따님이 몇 살인가요?” 이 같이 친근함을 표시하는 대화를 통해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상대방 능력을 인정하거나 정서적 친밀감을 표시하면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협상을 시작할 수 있고, 이것이 협상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 상대방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게 만들라. 
협상에 임하는 당사자는 자신이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감정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반대로 자신이 일방적으로 끌려간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감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감정적 불편함은 설득의 커다란 방해요소가 된다. 이를 위해 협상 시 기본적으로 경청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협상학자들이 주장하는 대화의 황금비율은 60 대 40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60만큼 들어주고, 본인이 40만큼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은 본인이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고 느끼며, 심지어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또한 사소한 의사결정이라도먼저 상대에게 미리 정보를 제공하고 상의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상대와 정보를 나누고 상의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는 자신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자신이 협상과정에서 인정받고 배려받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상대에게 협상과정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어라. [사진 Freepik]

상대에게 협상과정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어라. [사진 Freepik]

셋, 어떠한 경우에도 격렬한 논쟁으로 치닫지 마라.
서로의 입장 차이가 팽팽하게 맞설 때, 많은 사람들이 논리를 앞세워 상대를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논쟁이 계속될수록 감정은 격해진다. 그리고 격해진 감정 속에서 논리가 파고들 틈은 점차 줄어든다. 급기야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고 싶지 않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다. 협상과 설득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라, 나와 상대가 서로 최적의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다. 이를 망각해서는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기 힘들다.

넷, 감정이 격해질 때 활용하는 '발코니로 가기' 전략.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가 강하게 압박해오거나, 본인의 감정이 쉽게 컨트롤되지 않을 때, 생각지도 못한 쟁점이 튀어나와 당황하거나, 팀 내부적으로 의견 조율이 힘들 때, 이럴 때 우리는 '발코니로 가기(Go the Balcony)'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여기서 발코니는 협상테이블에서 잠시 벗어나 감정을 추스르고 재정비를 할 수 있는 분리된 공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땐 잠시 협상테이블에서 벗어나 보자. 프리랜서 공정식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땐 잠시 협상테이블에서 벗어나 보자. 프리랜서 공정식

발코니로 가기 전략을 활용해 본인에게 불리한 흐름을 끊고 분위기 전환을 꾀할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 필요한 준비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비즈니스 협상 또는 외교 협상 테이블에서도 발코니로 가기 전략은 자주 활용된다. 상대에게 정중히 휴식시간을 요청한다면 상대방이 이를 두고 무례하다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류재언 글로벌협상연구소장(변호사) yoolbonlaw@gmail.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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