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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잊혀진 나라 ‘대한제국’ 120년전 오늘 선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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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157호로 지정된 환구단 터에 위치한 황궁우(오른쪽).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즉위식을 가졌던 환구단은 사라지고, 황궁우,석고,삼문,정문 만이 남아있다.최승식 기자

사적 157호로 지정된 환구단 터에 위치한 황궁우(오른쪽).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즉위식을 가졌던 환구단은 사라지고, 황궁우,석고,삼문,정문 만이 남아있다.최승식 기자

지난 2007년 복원된 환구단 정문. 본래 위치는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쪽이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울광장 옆(소공동 97-3)에 쓸쓸하게 자리를 잡았다. 최승식 기자

지난 2007년 복원된 환구단 정문. 본래 위치는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쪽이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울광장 옆(소공동 97-3)에 쓸쓸하게 자리를 잡았다. 최승식 기자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7년 10월 12일 오전 4시. 조선의 수도 한양의 ‘환구단(圜丘壇)’
고종은 이른 새벽 환구단으로 서둘러 행차했다. 이날은 국운이 기운 조선을 이어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날! 고종은 동이 터 오르기 전 제사를 올리고 이른 아침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식을 마친 후 환구단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황제는 오후 왕태자 순종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다음날 고종황제는 외국공사들을 경운궁으로 초청해 대한제국 선포를 주재국에 알렸다. 같은 해 12월 러시아가 처음으로 대한제국을 승인하고 다음 해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도 연이어 대한제국을 승인했다.
(현재 덕수궁으로 불리는 경운궁은 고종황제가 순종황제에게 1907년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이름이 덕수궁(德壽宮)으로 바뀌었다. 덕수궁은 고종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다)

제국의 시작! 사라진 환구단...

오른쪽 건물이 환구단이다. 왼쪽으로 현재 남아있는 3층 8각 건물인 황궁우가 보인다.

오른쪽 건물이 환구단이다. 왼쪽으로 현재 남아있는 3층 8각 건물인 황궁우가 보인다.

황궁우가 위치한 환구단 터는 사적 157호로 지정됐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외부가 공개된다.

황궁우가 위치한 환구단 터는 사적 157호로 지정됐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외부가 공개된다.

황궁우는 외부에선 3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통 건물로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황궁우는 외부에선 3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통 건물로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지금은 사라진 3층 원형제단의 환구단 모형.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실물형태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3층 원형제단의 환구단 모형.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실물형태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환구단은 원래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을 말한다. 환구단은 고종이 1897년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내기 위해 중국 사신이 머물던 남별궁터에 3층의 원형제단 형태로 만들어 조성했다. 당시 최고 도편수였던 심의석이 설계, 1000여명의 인력이 동원돼 10일 만에 완공했다. 환구단과 함께 화강암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의 황궁우(皇穹宇)도 1899년 축조하고 하늘과 땅의 신령을 모신 신위판을 봉안했다. 황궁우는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내부는 통 건물로 천장에는 황금색 용무늬 등 황제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세개의 석고가 황궁우 옆에 놓여 있다. 1903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최승식 기자

세개의 석고가 황궁우 옆에 놓여 있다. 1903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최승식 기자

이후 1903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석고(돌북) 세 개가 황궁우 옆에 세워졌다. 석고는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체에 용무늬가 새겨져 있다.

2007년 서울 우이동에서 발견된 환구단 정문. 지난 1960년대 조선경성철도호텔 화재로 건물이 훼손되면서 당시까지 남아있던 정문이 철거된 후 10년 전 발견돼 다시 복원됐다. 최승식 기자

2007년 서울 우이동에서 발견된 환구단 정문. 지난 1960년대 조선경성철도호텔 화재로 건물이 훼손되면서 당시까지 남아있던 정문이 철거된 후 10년 전 발견돼 다시 복원됐다. 최승식 기자

환구단과 황궁우를 잇던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모습. 삼문은 환구단 제단과 황궁우를 연결했다.

환구단과 황궁우를 잇던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모습. 삼문은 환구단 제단과 황궁우를 연결했다.

환구단으로 가던 삼문과 계단 흔적. 환구단의 자취를 볼 수 있는 마지막 흔적이다. 최승식 기자

환구단으로 가던 삼문과 계단 흔적. 환구단의 자취를 볼 수 있는 마지막 흔적이다. 최승식 기자

현재 서울광장 옆 소공동 87-1에 위치한 환구단 터(사적 157호)에는 정작 고종황제가 제국을 선포하고 즉위식을 가졌던 환구단 건물은 찾아 볼 수 없다. 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철거하고 총독부 산하의 철도국의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지금은 황궁우,석고,삼문과 2007년 서울광장 옆(소공동 97-3)에 복원된 정문만이 쓸쓸히 남아있다. 복원된 정문의 원래 위치는 웨스틴조선호텔 입구가 있는 소공로쪽이다. 하지만 1960년 철거 후 소재를 알지못하다가 2007년 서울 우이동 그린파크 호텔 재개발 과정에서 이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던 문이 환구단 정문임이 확인돼 이전,복원됐다. 환구단을 관리하는 서울시 중구청은 작년 환구단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해 중·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환구단 사적 복원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중이다.

고종황제(왼쪽)과 순종황제.

고종황제(왼쪽)과 순종황제.

환구단 삼문을 지나면 환구단 대신 호텔 연못과 식당이 마주한다.

환구단 삼문을 지나면 환구단 대신 호텔 연못과 식당이 마주한다.

환구단 사적에 남아있는 석재난간. 일제시대를 거치며 변형과 훼손으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환구단 사적에 남아있는 석재난간. 일제시대를 거치며 변형과 훼손으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고종황제는 기울어져 가던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칭하며 근대국가로 부활을 시도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뒤 늦게 출발한 대한제국이 서있을 자리는 너무나 비좁았다. 대한제국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를 마지막으로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에 의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안타까운 역사지만 잊지는 말아야 한다.

고층건물에 파묻혀 있는 환구단 사적. 서울도심의 빌딩 숲에서 가려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고층건물에 파묻혀 있는 환구단 사적. 서울도심의 빌딩 숲에서 가려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한제국 선포 120년을 맞아 오는 13~14일에는 중구 정동야행 행사를 통해 환구단을 밤 늦게까지 개방하고, 14일엔 서울광장에서 고종황제의 즉위식과 대한제국 선포 재현행사가 거행된다.

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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