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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김정은 ‘남매 정치’ … 내조형 김경희, 권력형 김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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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은 지난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열어 60명의 인사를 실시했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28)이다. 이번 회의에서 김여정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기구인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김경희, 64세에 정치국 위원 올라 #노출 자제하다 60대에야 공개 활동 #부패 캐내며 오빠 힘들 때 원군으로 #김여정, 28세에 정치국 후보위원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오빠 챙겨 #실무 경험 없이 권력 중심서 활동

2014년 만 25세에 당 부부장(선전선동부)에 들어간 지 3년 만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 시대에 가장 수직 상승한 인물이 김여정”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이번 회의에서 빨치산인 최현의 아들 최용해에게 조직지도부장을 맡긴 것으로 정부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양대 축인 조직지도부는 빨치산에, 다른 한 축은 김여정에게 맡긴 셈이다. 김여정은 북한에서 1호 행사로 불리는 김정은의 참석 행사를 주관하고 챙기는 책임자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2011년 숨진 김정일은 중앙당 고위 간부에 친인척을 기용하는 건 꺼렸다고 한다. 김평일 등 이복동생들을 해외로 내보낸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동생인 김경희 부부만큼은 예외였다. 믿고 의지할 구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정일이나 김정은 모두 ‘남매정치’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부자(父子)는 여동생을 곁에 두고 ‘남매 정치’를 펼쳤다. 김경희는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공개적으로 오빠 챙기기에 나섰다. 김경희는 2011년 1월 조선중앙TV 에 잡힌 김정일의 정방산종합식료공장 현지지도에 동행하기도 했다. [노동신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부자(父子)는 여동생을 곁에 두고 ‘남매 정치’를 펼쳤다. 김경희는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공개적으로 오빠 챙기기에 나섰다. 김경희는 2011년 1월 조선중앙TV 에 잡힌 김정일의 정방산종합식료공장 현지지도에 동행하기도 했다. [노동신문]

① 힘들어할 때 나선 김경희=김정일과 네 살 터울인 김경희는 1960년대 말 모스크바 유학 후 당 국제부 부부장을 거쳐 경공업부장을 맡으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보좌했지만 오랫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과 기념사진 촬영 이후 6년 만인 2009년 6월 김정일의 동봉협동농장 현지지도 때 오빠 손을 잡고 사진을 찍으며 본격적인 공개활동에 나섰다.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김정일이 쓰러진 이후다. 통일부가 파악하고 있는 김경희의 공개활동 92회 중 90회가 2009년 이후다. 2010년 9월엔 인민군 대장 직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부터 ‘믿는 언덕’이었다. 97~98년 북한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시절 암행어사를 자처하며 지방 당 위원장의 사무실과 사택을 ‘급습’하며 부정부패를 캐냈다. 이 과정에서 연형묵 당시 자강도당 책임비서(도 책임자)가 가장 검소하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부하 직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파악했다. 연형묵은 이후 국방위 부위원장까지 올랐다. 김경희는 또 2009년에는 북한이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혼란을 겪을 때 나서 박남기 당 재정경리부장을 처형하며 수습하기도 했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김경희는 조용히 있다가도 오빠가 힘들어할 땐 항상 지원군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2015년 3월 동해안 신도방어대를 찾은 김정은을 수행한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 [노동신문]

2015년 3월 동해안 신도방어대를 찾은 김정은을 수행한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 [노동신문]

② 같은 듯 다른 남매정치=통일부 인명록에 따르면 김경희가 국제부 부부장에 오른 건 30세 때였다. 당시 당 부부장을 40~50대가 맡는 것에 비하면 빨랐다. 김경희는 하지만 중앙위 위원과 국회의원 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각각 42세, 44세에 됐다. 특히 당 정치국 위원은 김정일이 쓰러진 뒤인 2010년 64세가 돼서야 들어갔다.

이에 비해 김여정은 25세에 부부장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7세에 중앙위 위원, 28세에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체제연구실장은 “김정일 사망으로 27세의 나이에 오빠가 권력을 잡자 자연히 가장 믿는 김여정도 실무경험 없이 곧바로 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희가 암행지도처럼 잠행했다면, 김여정은 북한 관영 언론 등에 드러내놓고 모습을 보인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 때 참석자들의 자리를 안내하거나, 지난 13일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받아 챙기는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고모인 김경희가 조용히 실무적인 부분을 챙겼다면 김여정은 공개적으로, 그것도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김경희는 2013년 12월 남편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처형 이후 활동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정치적 책임에다 건강 악화까지 맞물리면서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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