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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주인 할머니 별세 후에도 계속되는 1000원 식당의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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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000원을 내면 세 가지 반찬에 된장국이 나오는 백반 식사를 할 수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단돈 1000원을 내면 세 가지 반찬에 된장국이 나오는 백반 식사를 할 수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 오전 11시30분이 되자 60~70대 남녀 손님 3명이 기다렸다는 듯 식당에 들어왔다. 점심을 마친 이들이 각자 낸 돈은 단돈 1000원이었다.

광주광역시 대인시장 '해 뜨는 식당' 딸이 대 이어 운영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점심 때에는 식당에서 음식 준비 #감동한 손님들과 주변 상인들은 정기적으로 식재료 후원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 느껴 앞으로도 계속 운영"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식당 영업이 끝나는 오후 2시 무렵까지 이어졌다. 식당 한 쪽에 놓인 투명 금고에는 어느새 1000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였다. 식사 후 식당을 나서던 정금순(71ㆍ여)씨는 “요즘 어디 가서 1000원짜리 밥을 먹을 수 있겠냐”며 환하게 웃었다.

해 뜨는 식당의 원래 주인으로 2015년 3월 별세한 김선자(당시 73세) 할머니의 딸 김윤경(44)씨가 음식을 나르고 있다. 김씨는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 중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 뜨는 식당의 원래 주인으로 2015년 3월 별세한 김선자(당시 73세) 할머니의 딸 김윤경(44)씨가 음식을 나르고 있다. 김씨는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 중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1000원 식당’으로 유명한 이 식당은 현재 김윤경(44ㆍ여)씨가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원래 이 식당의 주인으로 암 투병 중 2015년 3월 별세한 김선자(당시 73세) 할머니의 딸이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하는김숙희(65)씨가 김씨와 함께 손님들을 위한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

김선자 할머니는 2010년 8월 이 식당의 문을 열었다. 된장국에 김치 등 세 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을 1000원에 제공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주민과 상인들을 위해서다. 식당은 늘 적자였다. ‘장사’가 아닌 ‘봉사’였다.

해 뜨는 식당에는 개인과 단체가 수시로 식재료를 후원하고 있다. 가게 앞에 붙은 후원인 명단. 프리랜서 장정필

해 뜨는 식당에는 개인과 단체가 수시로 식재료를 후원하고 있다. 가게 앞에 붙은 후원인 명단. 프리랜서 장정필

김 할머니의 작고 이후 한동안 시장 동료 상인들이 식당 영업을 이어갔다. 미혼으로 당시만 하더라도 요리에 익숙지 않았던 딸 김씨는 설거지를 하며 도왔다. 이후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어머니가 고인이 된 뒤 한 달 만에 식당 운영에 뛰어들었다.

생전 김 할머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식당을 이끌어갈 사람을 찾았다. 독거노인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계속 1000원만 내고 눈치보지 않고 식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결국 딸 김씨가 대를 이어주길 바랐다고 한다.

해 뜨는 식당의 반찬. 소박하지만 모두 국산 재료로 직접 만든 것들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 뜨는 식당의 반찬. 소박하지만 모두 국산 재료로 직접 만든 것들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중국 등 해외에서 생활해온 온 김씨도 처음에는 식당을 맡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다른 사람에게 영원히 식당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식당 운영에 뛰어들었다.

1000원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원래 하던 무역 관련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정착했다. 대신 식당 인근 보험회사에 취직해 보험설계사 활동과 식당 영업을 병행 중이다. 식당 수입만으로는 식재료비 충당하기도 버거워서다.

해 뜨는 식당의 주요 손님층은 주머니가 가벼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식사를 하는 손님들. 프리랜서 장정필

해 뜨는 식당의 주요 손님층은 주머니가 가벼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식사를 하는 손님들. 프리랜서 장정필

김씨는 매일 오전 9시에 보험회사로 출근한 뒤 근무 후 오전 10시30분에 식당으로 향한다. 평일 오전 11시30분~오후 2시인 식당 영업시간에 맞춰 요리를 하는 등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오후 3시쯤 설거지와 뒷정리가 끝나면 다시 보험회사로 돌아가 근무한다. 식당은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주변 이웃을 위해 어머니처럼 자신의 삶을 바치는 김씨의 모습에 감동한 개인과 단체가 식당을 지원하고 있다. 시장 등 주변 상인들은 참기름과 고기를 정기적으로 보내오고, 개인들은 쌀과 용품 등을 기부한다. 이들 식재료로 하루 70~80여 명의 이웃이 식당에서 단돈 1000원에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손님들도 정을 나눈다. 일부 단골 손님들은 김씨에게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를 선물하고 간다. 홀로 외롭게 식당을 찾았다가 같은 테이블에 합석하게 된 낯선 손님과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식당이 음식은 물론 정까지 나누는 공간이 된 셈이다.

해 뜨는 식당으로 누군가 보내온 쌀 포대들. 프리랜서 장정필

해 뜨는 식당으로 누군가 보내온 쌀 포대들. 프리랜서 장정필

1000원 식당과 비슷한 방식으로 보답한 손님도 있다. 광주 서구 광천동 선한병원 측은 지난 7월 급성장염 증세로 병원을 찾아와 입원 치료를 받은 식당 주인 김씨에게 진료비로 1000원만 받았다. 이 병원 원장이 김씨의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을 계기로 나눔 활동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한 일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식당을 맡기려고 했던 이유가 아닐까요. 형편이 허락하는 한 해 뜨는 식당은 계속 1000원에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할 겁니다.” 김씨의 말이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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