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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만에 ‘간첩’ 누명 벗은 70대 납북어부…“상처 너무 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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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일평생 ‘철창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았던 한 70대 납북어부가 49년 만에 완전히 누명을 벗었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전주지법 형사1부(장찬 부장판사)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던 박춘환(71)씨를 비롯한 납북어부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5살부터 배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선의 꿈을 안고 탄 배가 1968년 5월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북되면서 그의 악몽은 시작됐다. 4개월간 억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남은 건 ‘간첩’이란 꼬리표뿐이었다.

박씨는 반공법 혐의로 기소돼 9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뒤 출소했다. 숨 막히는 감시는 계속됐다. 결국 1972년 군산경찰서에 끌려가 고문 끝에 ‘납북 당시 북한에 포섭된 간첩’으로 조작돼 다시 징역 7년을 살았다.

당시 밤낮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뤄진 고문을 견디지 못한 박씨는 끝내 친구까지 끌어들였다. 친구는 ‘북에서 가져온 책을 건넸고 북한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박씨의 허위증언 때문에 모진 고문 끝에 8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박씨는 ‘빨갱이’란 냉대와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출소 후 고향을 떠났다. 고문 후유증으로 엉덩이뼈와 어깨뼈가 모두 부러지면서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됐다. 연고가 전혀 없던 충청도에서 일용직과 공장 야간경비 등 궂은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박씨가 1972년 ‘간첩’ 혐의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한 사건에 대해선 이미 2011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에 무죄를 받은 혐의는 8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다.

재판부는 “유죄 증거들이 수사단계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 행위로 만들어져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 사이 그를 고문하고 간첩으로 몰았던 경찰관 10여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완전히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렇게 나이먹은 게 억울하다”면서 “정부가 너무 야속하고 상처가 너무 커 다시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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