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박모(25·여·서울 성북구)씨는 일주일에 4~5일 야식을 먹는다. 주로 치킨·족발 같은 배달 음식이다. 박씨는 “배가 안 고파도 야식을 먹지 않으면 허전한 느낌이 들어 번호를 누른다”고 말했다. 박씨는 “야식을 먹으면 새벽 5~6시까지 잠을 못 이룬다”며 “먹고 난 뒤 기분이 우울하기도 하고, 왜 먹었나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야식은 습관 아닌 건강 해치는 질병 #생체시계 고장 내고 신체리듬 파괴 #수면장애· 식도염·우울증 불러 #세끼 꼬박 챙기고 일찍 자도록
야식은 저녁 식사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먹는 음식을 말한다. 출출할 때 먹는 간식 정도로 여기지만 자주 먹거나 먹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라면 일종의 병으로 볼 수도 있다. 의학적으로 ‘야식증(야식증후군)’은 폭식증(신경성 대식증)·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과 같은 섭식장애의 일종이다. 박씨처럼 ▶아침에 식욕이 없고 ▶야식으로 하루 섭취 칼로리의 25% 이상을 먹으며 ▶수면장애·우울증 등을 경험한다면 야식증에 해당한다.
야식증은 폭식증·거식증과 같은 섭식장애
야식증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낮에 일하고, 밤에 쉬게끔 ‘생체 시계’가 내장돼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 인간의 행동과 잠·체온·신진대사 등에 영향을 미치는 생체시계 기능을 증명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생체시계에 맞춰 체온·호르몬 분비 등이 조절된다. 예컨대 어두운 밤에는 체온이 떨어지고, 수면 호르몬(멜라토닌)이 분비돼 잠에 빠진다. 반대로 아침이 되면 수면 호르몬이 줄고 체온이 올라가 몸이 활동하기 좋게 바뀐다.
하지만 야식을 먹으면 이런 생체시계가 고장 나 신체 리듬이 깨지게 된다. 도미노처럼 건강도 무너진다. 첫째, 수면장애다. 야식을 먹으면 음식을 소화하려 위·대장 등 소화기관이 쉬지 못하고 일한다. 뇌에서 분비되는 수면 호르몬도 줄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중간에 깨기 쉽다.
둘째, 비만이다. 치킨·패스트푸드 등 야식 메뉴는 칼로리가 높다. 2013년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야식으로 하루 전체 칼로리의 25% 이상을 먹는 남성은 안 먹는 쪽보다 총 섭취량이 1000칼로리, 여성은 300칼로리 많았다.
야식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해 다시 식욕이 촉진된다. 수면 중에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식욕 억제 호르몬(렙틴)이 분비된다. 잠을 못 이루면 이게 줄고 식욕 촉진 호르몬(그렐린)이 높게 유지된다. 김양현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야식을 먹을수록 밤에 식욕을 더 많이 느끼고, 반대로 포만감은 덜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모(28·경기도 성남시)씨는 1m65㎝ 키에 체중 97㎏으로 고도비만이다. 연극 배우로 일하는 그는 생활이 불규칙한 편이라 야식을 즐겨 먹는다. 편의점에서 파는 샌드위치·삼각김밥이나 햄버거를 즐긴다. 그는 “야식을 먹다 보니 습관이 돼 더 많은 양을 먹게 됐다. 한 번에 햄버거를 2~3개 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올해 초 고혈압과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은 뒤 야식을 자제하고 있다. 그 뒤 체중이 8㎏ 줄었고 수면장애가 많이 개선됐다.
야식은 소화장애를 야기한다. 야간에는 위산 분비가 줄어드는데, 이때 음식을 먹으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 위염·위궤양이 생기기 쉽다. 음식이 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위산이 거꾸로 올라오는 역류성 식도염 위험이 커진다. 대학생 45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야식을 먹는 5명 중 1명은 속쓰림·불편 등 소화장애를 경험했다(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2011년).
밤 11시 전후 식욕 촉진 호르몬의 유혹이…
야식을 끊으려면 우선 식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공복감을 없애기 위해 하루 세끼를 규칙적으로 먹는 게 바람직하다. 저녁 식사는 되도록 잠들기 세 시간 전에 가볍게 먹는 것이 좋다. 만일 공복감이 심해 잠들기 어렵다면 기름진 음식 대신 과일·야채·저지방 우유 등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택한다. 김양현 교수는 “일주일 치 식단을 미리 계획해 재료를 구입해 두면 불필요한 야식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도 야식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이다. 식욕 촉진 호르몬은 밤 11시 전후로 분비되기 때문에 그 전에 잠드는 게 좋다. 스트레칭·요가 등 저강도 운동은 숙면에 도움을 준다. 운동은 야식증의 주요 원인인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생체시계는 스마트폰·TV에서 나오는 빛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늘수록 공복감을 잘 느끼게 된다. 잠자리에서 되도록 이런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