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을 진경은 단풍만 있는 게 아니다. 산등성이나 논밭 가장자리에 핀 억새꽃도 눈부시다. 단풍은 삽시간에 물들었다가 금세 져버리기 때문에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지만 억새꽃의 장관은 ‘상영 시기’가 길다. 9월 말 시작하는 전국의 억새 축제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이유다.
가장 먼저 억새 축제가 시작된 곳은 강원도 정선 민둥산(1118m)이다. 9월29일부터 10월29일까지 이어진다. 축제장을 아랑곳않고 산행을 즐겨도 좋다. 증산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정상을 찍고 발구덕으로 내려오는 여정이 일반적이다. 2~3시간 걸린다.
영남알프스에는 국내 최대 억새 군락지가 있다. 영남알프스는 경북 경주시·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양산시,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걸쳐 있는 산악지대를 일컫는 말인데 사자평과 간월재가 최대 군락지다. 표충사~흑룡폭포~재약산~사자평 코스, 간월재∼신불산∼영축산 코스가 가장 인기다.
호남 5대 명산에 드는 전남 장흥 천관산(723m)은 금빛 억새와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풍광이 매력적이다. 10월15일 억새제가 열린다. 오전 11시 산 정상인 연대봉에서 억새 제례가 열리고, 오후 1~3시에는 장천재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수도권에서는 포천 명성산(922m)의 명성이 높다. 단풍이 아름다운 산정호수가 가까워 억새와 단풍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산정호수 상동주차장에서 출발해 비선폭포~등룡폭포를 지나는 길이 일반적이다. 10월13~15일 축제가 열린다.
산행을 하지 않고도 억새 군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하늘공원이다. 10월13~19 서울억새축제가 진행되는데 12월 초까지도 억새꽃이 반짝인다. 단 축제기간에는 평소와 달리 야간에도 하늘공원을 개방한다. 낙조가 내려올 무렵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억새 군락을 본 뒤 색색 조명으로 물든 공원을 산책해보길 권한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