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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얼굴 ‘어금니 아빠’…이중생활 사례에 단골로 등장하는 性문제

중앙일보

입력

국민 딸바보가 썼던 복면 뒤에는…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사흘째 조사 받는 '어금니 아빠' 이모(35)씨. [연합뉴스]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사흘째 조사 받는 '어금니 아빠' 이모(35)씨. [연합뉴스]

불쌍하고 착한 희귀병 환자의 가면 뒤에 ‘야누스의 얼굴’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는 ‘거대 백악종’을 앓는 중에도 딸(14)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각종 활동을 하며 ‘어금니 아빠’, ‘천사 아빠’로 알려진 이모(35)씨가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가 짙어지면서 그의 이중생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씨가 처음 사회에서 주목 받은 건 지난 2006년 한 지상파 방송에서 그의 사연을 다루면서다. ‘70만 천사의 1000원의 기적’이라는 팻말을 단 딸의 후원 카페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70만명이 1000원씩만 후원해주면 딸의 수술에 필요한 돈 7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는 이를 위해 자전거 전국 일주, 길거리 모금 활동을 벌였다. 카페 운영자였던 그의 아이디는 딸을 뜻하는 ‘아기천사’였다.

이씨는 지난 2008년 스스로 제작한 영상에서도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있다. 딸을 보지 못할까 두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모씨 카페 캡처]

이씨는 지난 2008년 스스로 제작한 영상에서도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있다. 딸을 보지 못할까 두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모씨 카페 캡처]

이듬해인 2007년에는 『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라는 책을 냈다. 2008년에는 미국 대사관에서 발급이 까다로운 10년짜리 비자를 받은 사연이 언론에 소개됐다. 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는 그에게 시민들은 “같은 부모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힘내라. 꼭 살려야 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지난 8일 이씨가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뒤 그의 이중생활이 폭로됐다. 빈곤층 행세를 하며 후원을 호소했던 그가 고급 승용차 몰며 호화 생활을 했다는 의혹 역시 제기됐다. 이씨의 집에서는 기괴한 성인용품도 다수 발견됐다. 부인 최모(32)씨는 “의붓 아버지에게 지난 8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지난 1일 고소장을 내고 닷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이씨에게 자살을 방조한 혐의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야누스 범죄, 성범죄가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이씨처럼 ‘야누스의 얼굴’이 드러나며 대중을 경악하게 하는 사례는 국내외에서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사건이다. 특히 두 얼굴의 범죄자들이 벌인 범행 중 알려진 사례 가운데는 성범죄가 많다. 최근 사례는 ‘시네마 천국’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등 인기 영화 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하비 와인스타인(65)이 있다. 그는 지난 30년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뉴욕타임스의 폭로에 따라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해고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어려운 청소년을 돕는 선도활동가로 행세하며 20년에 걸쳐 아동과 청소년을 성추행한 유명 종교인 김모(61)씨가 구속됐다. 그는 아동지원단체 서울지부장과 교회장로를 맡으며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조사결과 3형제 모두가 김씨에게 추행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은 유치원생 때부터 9년에 걸쳐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두 얼굴의 범죄 가운데 성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건 가장 은밀한 사적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쉽게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다보니 범행을 저지르고도 이중 생활을 하기 좋다는 거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중생활자를 민낯으로 보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쉬운게 성범죄다.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고 공개하지 못할 이유도 가장 많다보니 악용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담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볼 수 있듯 권력 관계를 악용하기도 비교적 쉽다. 지난해 8월 호주에서는 50년 동안 21명의 소년을 추행한 빅터 그린어웨이(85)가 21년형을 받았다. 교회의 일요일 학교 교사, 어린이집 성경 교사 등을 맡으며 자원봉사를 하며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이중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내적으로 성범죄 욕구를 갖고 있는 이들이 과도하게 도덕 윤리를 겉으로 강조하는 건 자신의 부도덕한 면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영익·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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